저신뢰사회

by 최석원

꽤 오래전 고 노무현 대통령이 저신뢰사회에 대해 얘기한 연설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신뢰가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 신뢰가 먼저입니다. (중량) 상대방이 나와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별의별 장치를 다 해야됩니다. 상대방이 선의를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없으면 속지 않기 위해서 준비해야 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중량) 말한 내용을 말 비슷하게 하긴 하는데, 또 다르게 해석해 가지고 그 본뜻을 어떻게든 왜곡시켜 보려는 노력, 선의가 없이 맺은 계약은 그 방향으로 갑니다.”


일을 시작하고 이 말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회사는 사회계약이 가장 고도화된 공동체 중 하나로, 돈이라는 매개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거대한 공동체이다. 이는 산업혁명 이전의 가내수공업식 사회와 현대 사회를 구분하는 중요한 변화 중 하나이다. 노동력 확보를 위한 근로계약, 외부 자원을 도달하기 위한 위탁/판매 계약,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출 계약, 회사의 소유권과 관련된 투자 계약 등 인간적인 선의만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일들 투성이다.


계약서를 작성하다보면 결국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수 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최악이 아니면 계약서 세부 조항은 의미가 없다. 많이들 계약서를 쓸 때나 읽어보지, 세부 조항을 하나하나 외우고 있지는 않는다. 다만, 상황이 최악으로 다다를 가능성이 보이면 꽁쳐둔 계약서를 주섬주섬 꺼내게 된다. 계약은 나와 타인으로 이루어지기에, 최악의 상황은 일이 잘 못 되었을 때 ‘저쪽이 어디까지 드러누울까’ 라는 예상에서 시작된다. 결국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영역이라는 뜻이다.


명백한 사실은 계약서를 아무리 잘 써도 미래의 모든 상황을 가정하여 대응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계약서 조항을 오래 핑퐁하다보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다. 계약 이전에 신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서로의 신뢰가 확인되면 조항의 수정이 없더라도 넘어갈 때가 많다. 이는 더 큰 역할을 맡기고자 할 때 극대화된다. 더 큰 역할이란 더 큰 불확실성을 같이 이겨내기 위한 계약이기에, 더더욱 긴 계약서로 풀 수 없다. 역설적으로 더 짧은 계약서가 답일 떄도 있다.


물론 인간사에서 처음부터 계약서가 길진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신뢰로 계약을 맺었으나 몇 차례 그 신뢰가 깨지는 경험이 쌓이면 계약서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된다. 업력이 긴 투자사의 계약서가 더 빡센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내 삶의 길이만큼 계약서가 계속 길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에,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점점 줄어드는 여생을 살고 싶지 않기에, 신뢰의 마음이 닳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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