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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Dec 18. 2022

인생의 정점을 지나 보내는 순간

나는 농구를 좋아한다. 중학교 때 시작한 취미를 벌써 15년 넘도록 이어오고 있다. 20살에 처음 대학교에서 농구를 배우면서 신세계를 경험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건 농구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고 모든 게 새로웠다. 하나씩 기초를 익히다 보니 실력도 빠르게 느는 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농구가 가장 재밌던 시기였다. 그때는 정말 잘하는 선배를 보면 "나도 혹시..."라는 생각을 했다. 매주 5회 새벽 훈련을 했다는 선배들의 라때 얘기를 들으면서, 나도 저렇게 연습하면 저 선배만큼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번 생에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농구를 좋아하고, 나보다 더 노력하고, 나보다 타고난 신체 능력이 좋고 재능은 더 많았다. 내가 다른 삶을 포기하고 농구에 매진하더라도 식스맨 정도가 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욕이 많이 떨어졌지만 다행히 농구를 그만 두진 않았다.


그렇게 꾸준히 운동을 더 하다보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내 신체 능력과 그 한계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할 수 있는 영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잘하는 건 관심 없어진지 오래지만 신체 능력을 탓하기에는 아직도 할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훨씬 느리고 때로는 실력이 뒤로 가는 것 같지만 전에는 보지 못하는 각을 보고 하지 못했던 플레이를 할 때면 여전히 재밌다.


30살을 앞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5년 뒤에 나는 지금보다 농구를 잘할까? 10년 뒤에 나는 지금보다 농구를 잘할까? 쉬운 질문이지만 한 번도 던져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생애주기를 생각했을 때 어쩌면 지금이 내 인생의 정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성장할 수 없고, 심지어 과거의 나 자신보다도 성장할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목표로 계속 농구를 할까? 명확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지금 기분으로는 농구를 관둘 것 같지는 않다. 코트의 공 튀기는 소리, 농구화 끌리는 소리,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 공이 골대에 감기는 감각 등이 좋기 때문이다.


농구를 떠나 내 삶은 아직 1단계에 머물러 있다. 모든 게 새롭고 매년 성장하는 걸 느낀다. 아직은 어떤 사람이든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러나 조만간 내 역량을 더 깊게 이해하는 동시에 한계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뒤로는 이전보단 느리지만 성숙에 집중하는 시기가 올 테고, 또 인생의 정점을 지나 보내는 순간이 올 것이다. 치열한 노력,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방법, 인생을 바꿔줄 시크릿 뭐 이런 지루한 것들은 뒤로 하고, 모두의 삶에는 기승전결이 있기 마련이다. 20대의 나는 이 사실을 잊은 것처럼 살아왔다. 마치 내 삶에는 성장과 도전과 기회만 있는 것처럼, 좋은 의미에서 여유로운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친한 지인의 남은 삶에서 쏠 수 있는 총알이 몇 발 남지 않았다는 얘기에 새삼 공감이 된다. 정점 이후의 삶은 아직 경험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마치 농구처럼 인생의 정점을 지나 보낸 뒤에도 내 삶을 사랑하려면 성장으로 충분하진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성취가 아니라 정점 이후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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