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석원 May 09. 2023

조직 내 이질적인 존재를 대하는 태도

토머스 쿤의 정상과학과 패러다임 전환

조직에 있다 보면 크고 작은 이질적인 존재들을 마주한다. 사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다. 조직은 개별성을 띤 개인의 집합이기에 완전히 동일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정도에 따라 리더의 고민이 깊어지기도 한다. 마치 매년 재생산되는 정치권의 코드 인사 논란 마냥, 사사건건 생각이 다른데 어떻게 같이 일하냐 라는 주장과 친한 사람들이 모여 끼리끼리 해 먹는다 라는 주장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렵다. 회사는 놀이터가 아니기에 친한 사람보다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회사는 성과를 내야 하기에 유능한 사람들끼리 치고받고 싸울 시간에 합심해서 목표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언제나 그렇듯 정답은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한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이론에 빗대어 조직 내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고자 한다. 


토머스 쿤의 정상과학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본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정상과학의 개념을 주장했다. 정상과학이란 해당 분야의 구성원들이 일반적으로 합의하는 이론, 법칙, 지식 등 공통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적 탐구를 의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통된 토대 자체에는 아무도 챌린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 토대 위에서 치열한 논증을 거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즉 과학이 여타 학문과 구분되는 것은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 옳고 그름의 증명, 가설 제안과 검증 등이 아닌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공통된 토대(패러다임)의 존재에서 온다는 사실이다.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자. 반대로 공통된 토대 없이 토론이 가능할까?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가치 하에 발전해 온 민주주의에 대해,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어떤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십중팔구 각자의 세계관의 근간을 지적하다 감정다툼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에 비춰봤을 때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가치를 더 잘 실현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학문의 체계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고 기존의 토대 위에 새로운 조각을 쌓아 올리는 형태로 발전한다. 논리와 이성은 조각과 조각을 더 견고하게 붙이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본질은 아닐 수 있다.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

조직 역시 마찬가지이다.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 모였을 때 효과가 극대화된다. 조직 내 다양성은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이 난무하는 조직이 좋은 조직은 아니다. 일정 이상 생각이 다르면 건설적인 대화와 토론 대신 서로의 생각 다름만 확인하고 끝나기 쉽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생각이 더 멀어지기도 한다. 또 이 핵심 가치란 증명의 영역이 아닐 때가 많다. 쉬운 예로 아무도 네이버에게 왜 반도체 사업을 하지 않는지, 토스에게 왜 워라밸을 챙기지 않는지 묻지 않는다. 조직의 핵심 가치는 마치 종교의 교리처럼 증명이 아닌 믿음, 공감의 영역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조직 내 치열한 토론은 필요 없는 걸까. 물론 그렇지 않다. 추상적인 가치를 구체화시켜 조직의 의사결정에 반영시키는 과정에서 대화와 토론은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우선순위를 나누고, 대안을 제시하고, 생각지 못한 위험을 검토하는 등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또한, 당장의 의사결정을 넘어 조직을 건강하게 유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참고: 치열한 토론보다 중요한 것) 다만, 매번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토론이 항상 생산적일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패러다임의 전환

증명할 필요도 부정할 이유도 없는 공통된 토대 위에 쌓은 공든 탑도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토머스 쿤은 이를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 불렀다.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상 현상(anomaly)이 점점 많이 보고 됨에 따라 정상 과학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고, 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받아들여질 여지를 제공한다. 그 뒤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양립하는 과도기를 거쳐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확립되는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또 다른 정상과학을 낳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과학은 발전한다. 


이때 기존 패러다임이 몰락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재정립되는 과정은 우리 생각만큼 이성적이지 않다. 토머스 쿤은 이 과정을 개종(기존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의 전향)에 비유할 정도로, 한 개인의 세계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이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 패러다임을 믿는 사람들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죽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세대교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조직의 핵심 가치를 바꿔야 하는 순간

조직 역시도 핵심 가치를 바꿔야 하는 순간이 있다.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에서 변화하지 않는 조직은 영속할 수 없다. 마치 과학의 패러다임이 수명(혹은 역할)을 다하면 대체되는 것과 같이 조직도 생존 혹은 성장을 위해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 봐라"로 유명한 삼성전자의 신경영 선언이나, CEO 교체와 함께 이루어지는 대규모 인사이동, 회사의 주요 사업 모델과 비전이 바뀌는 시기 등이 그렇다. 이는 조직이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가장 취약한 순간이다. 변화는 필연적으로 위험을 동반한다. 변화가 항상 성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며 언제나 가장 무난한 선택지는 지금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않는 조직은 필연적으로 망한다. 최적의 순간에 최적의 방향으로의 전환만이 기업을 성장시킨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조직의 변화 역시 대화와 토론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장 조사와 경쟁사 분석보다 앞서는 건 리더의 결단과 구성원의 공감이다.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세 가지 판단

조직 내 이질적인 존재를 다루는 건 리더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느 조직이나 잘 어울릴 법한 사람은 어쩌면 그저 그런 인재일 수 있고, 대체로 유능할수록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조직의 논리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다. 두 스타일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만약 조직의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다면 이런 이질적인 존재는 가급적 배척하는 게 현명하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조직을 질적으로 성장시키고 싶다면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하고 이 이질성을 조직에 녹여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질성을 소화하는 방식 역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생존 혹은 성장을 위해 조직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면 개종에 가까운 수준의 강한 지지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존 멤버들이 반발하고 일부 인원들이 퇴사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고 그 질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조직을 떠나는 게 옳다. 마지막은 조직의 토대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며 치열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은 이때 빛을 발한다. 단, 서로 다른 세계관이 난립하지 않도록 조직의 핵심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 이외 영역을 토론의 전장으로 삼아야 한다. 


1.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싶다면, 이질적인 존재를 배척한다.
2. 조직의 체질을 바꾸고 싶다면, 설득이 아닌 결단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한다.
3. 조직 내 다양성을 높이고 싶다면,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하고 그 이외 영역에서 치열하게 논쟁한다.


마치며

이 모든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 위대한 과학조차 패러다임의 변화는 논리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수백, 수천 가지 성공 방식이 존재하는 회사는 어떠할까. 그저 공유하는 생각의 토양이 다를 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많지 않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조직에 붙잡고 있는 것이 모두에게 좋지 않은 상황도 존재하며, 때로는 (애초에 틀리지 않았기에) 상대의 틀림을 지적하거나 설득할 필요조차 없을 수 있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핵심 가치도 사실은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구성원들을 어떻게든 끌고 가기 위해 잡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리더는 조금 이상한 선택을 내리는 사람이다. 반대로 리더는 조직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완벽하든 완벽하지 않든 앞으로 가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트업에서 시니어의 역할과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