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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원 Nov 04. 2023

중요한 건 때로는 꺾이는 마음

꺾이지 않는 마음과 과냉각의 차이

2023년 10월 31일부로 회사의 초기 멤버 한 명이 퇴사를 했다. 5명이 안되던 시절에 입사를 결정해 4년 반을 함께한 동료이다. 긴 시간 동안 회사는 60명 가까이 성장했고, 많은 일들을 함께 했다. 아무것도 없는 날 믿고 합류해 줬다는 고마움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분과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오늘은 그때에 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캠퍼스:달

지금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사이드프로젝트 중독자였다. 대학생 때의 나는 일 벌이는 걸 너무 좋아해  스터디, 외주 개발, 커뮤니티 운영 등 항상 뭔가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학교를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진행했지만, 종종 일이 커지면 파트타임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운 순간을 맞닥뜨리곤 했다. 캠퍼스:달(참고 : 수수료 없는 착한 캠퍼스 배달 앱 ‘샤달’과 ‘캠퍼스:달’)은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였다. 나 포함 총 세 명의 멤버(당시 21살, 21살, 23살이었다)가 모였고, 사무실 없이 마루180에 인당 월 15만 원 정기권을 결제하고 일을 시작했다.


시작은 패기로웠다. 우리 셋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제품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주 100시간을 일할 각오도 되어 있었으며, 힘든 시간이 있더라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명확한 성과 없이, 성장에 대한 피드백 없이, 확신을 유지한다는 건 상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는 훨씬 더 빠르게 지쳐갔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다. 사업과 제품에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차마 먼저 꺼낼 수 없었다. 그건 서로의 신뢰를 깨는 일이었고, 시작할 때 했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부정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고, 아무도 힘든 티를 내지는 않지만 묘한 침묵이 우리를 에워싸던 그런 시기였다.


그 오랜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나였다. 그 시기에 나는 다른 사업 제안을 받았고, 지금 아이템과 그 제안을 놓고 여러 고민을 하고 있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팀원들에게 얘기를 꺼냈다. '내가 흥미로운 사업 제안을 받았는데 셋 모두 만장일치로 이 제안을 수락하면 다 같이 이 일을 하고, 만약 한 명이라도 거절하면 없었던 얘기로 하자'. 얘기를 들은 한 팀원의 첫 반응은 '난 별로..'였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아 그래? 그럼 없었던 일로 하고, 하던 일 열심히 하자'가 되어야 했겠지만, 그 순간 뭔가가 끊어져버린 느낌을 받았다. 우리 셋을 아슬아슬하게 묶고 있던 끈이 툭하고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그날이 우리 팀의 마지막 날이었다.



과냉각 상태

돌이켜보면 이건 일종의 과냉각 상태이었다. 물질은 온도가 내려가면 액체에서 고체로 변한다. 과냉각이란 어는점 이하로 냉각되었음에도, 액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로, 외부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액체가 순식간에 고체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의 우리 팀 상황이 딱 그랬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모두가 불안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상태. 내 한 마디로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 얘기하는 순간 그게 현실이 되어버릴 것 같은 걱정에 애써 외면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업을 고민해 보자는 내 말로 인해 아슬아슬 유지되던 균형은 깨졌고, 팀은 깨져버렸다.


그 일을 겪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 2020년에 가까운 친구가 창업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래 만난 여자친구와 둘이 시작한 회사였고, 2년 가까이 PMF를 찾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시기였다.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만나서 다양한 얘기를 나눴었다.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큰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대답이, 왜 큰 회사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내가 못할 것 같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가족 모두 해외에 있지만 남자친구 하나 보고 한국으로 들어온 여자친구, 잘할 거라고 큰소리쳤지만 포기하기엔 이미 흘러버린 2년이라는 긴 시간. 그럼에도 헤어질 수 없는 둘의 사적 관계로 유지되고 있는 팀이었다.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면 혹은 내가 조금 더 사회성이 좋았더라면 그냥 응원해 주고 넘어갔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고, 나는 매우 강하게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과냉각 상태를 깨 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나는 그 친구랑 조금 멀어졌다. 오지랖이 너무 과했던 탓이다.



버텨야 하는 광야와 벗어나야 하는 과냉각

성공한 회사들도 모두 광야의 시간이 있었다. 세상이 날 핍박해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성공하는 스타트업의 스토리는 많은 창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러나 때로는 정말 안 되는 일을 붙들고, 세상이 날 억까한다며 고집부리면서 인생을 낭비하기도 한다. 버텨야 하는 광야의 시기와 빨리 벗어나야 하는 과냉각의 시기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혹자는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준다고 하겠지만, 나는 정답은 세상이 아닌 내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설사 내가 틀렸을지언정 스스로를 속이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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