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에 가득 찬 대표 vs 걱정 많은 대표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유형의 대표를 만난다. 강한 자기 확신으로 조직을 카리스마 있게 이끄는 대표가 있는가 하면, 돌다리를 하루 종일 두들기는 대표도 있다. 대표의 자기 확신은 대체로 조직에 긍정적이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태도는 일을 꼬이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대표의 불안감은 대체로 조직에 부정적이지만,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또 분명 안정감 있고 든든한 대표였는데 회사가 어려워지면 급변하거나, 잘되면 내 덕 안되면 니 탓 같은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대표란 참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이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찾아 헤매는 대표의 마음이 궁금하다면 이 글을 읽어도 좋다.
세상에 성공이 보장된 사업은 없다. 사업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회사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한 미래에 놓여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큰 성과를 올리기도 하고, 회사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로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마치 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회사라는 작은 돛단배로 항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인과성을 찾고 확실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새로운 도전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확실성의 징표는 월급이다. 회사의 성과는 시장 상황에 따라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지만, 그 변동을 모든 구성원이 마주하지 않는다. 월급쟁이로서 직원은 회사 실적이 크게 올라도 정해진 월급을 받아 배가 아프지만, 회사 실적이 크게 내려가도 정해진 월급을 보장받는 셈이다. 즉, 불확실한 성과가 확실한 월급으로 변환되는 마법이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대표는 그 마법의 한가운데에 놓인 사람이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대표를 통해 내부 구성원에게 전달되는 방식(불확실이 확실로 바뀌는 마법이 어디서 일어나는지)에 따라 크게 네 가지 유형의 대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자기기만적 낙관주의자
첫 번째 유형은 스스로조차 속여버린 낙관주의자 대표이다.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자기 확신이 매우 강하여,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했거나 알지 못하는 대표이다. 타인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자기 확신은 매우 중요하다. 반짝이는 눈과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논리와 이성으로는 설정 불가능한 높은 목표(화성 갈 거니까~)를 제시하고, 팀에 끊임없이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엄청난 성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회사가 잘 될수록 목표가 높을수록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일이 꼬이기 시작하면 종종 돌변하기도 한다. 본인이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 심지어 잘 못한 게 없어도 그냥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패할 수 없는 내가 실패한 이유를 찾아야 하며, 대체로 그 화살은 내가 아닌 남에게 향한다. 잘되면 내 덕, 잘 못되면 니 탓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 어떤 유형보다 행복한 대표이다. 항상 행복만 꿈꾸기 때문이다.
모든 짐을 떠안은 순교자
두 번째 유형은 회사의 모든 짐을 떠안은 순교자형 대표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철저하게 본인 내면에 숨기고, 회사에는 확신에 가득 찬 대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회사가 잘 될 때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유형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첫 번째 유형으로 보이는 대표의 대부분도 사실은 두 번째 유형인 경우가 많다.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과 통제에서 벗어난 걱정들에 짓눌려 있지만, 터놓을 곳도 없이 언제나 안정감 있고 든든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대표의 마음이 단단하다면 이상적인 리더가 될 수 있지만, 그 어떤 유형보다 스트레스가 많고 번아웃에 취약하다. 대표는 원래 외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지나친 외로움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망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는 성공할 수 없다.
핵심인력 집단의 부족장
세 번째 유형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대표 혼자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끈끈한 유대감과 신뢰를 가진 공동체로서 소화하는 유형이다. 핵심인력은 일반 직원과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들은 사업이란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고, 대표를 포함하여 누구도 정답을 알지 못하며 아무리 노력하고 좋은 판단을 내려도 결과가 안 좋을 수 있고, 때로는 멍청한 판단이 좋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 즉 불확실성의 속성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부족한 정보 속에서 선택을 내려야 하며 의견이 갈리면 대표의 결단을 존중하지만 그 결과는 함께 (동등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책임질 수 있는 동료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조건을 모두 달성하기 어렵고, 자칫 대표와 가까운 핵심인력과 그렇지 않은 직원들 사이의 사일로가 생기거나 불필요하게 복잡해진 의사결정 과정은 회사를 잘 못 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많은 대표들이 세 번째를 거쳐 역시 대표는 외로운 자리이고,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두 번째 유형으로 변화한다. 그럼에도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대표의 유형은 세 번째이다.
불안을 조장하는 지도자
마지막 유형은 무거운 어깨를 견디지 못하고 조직 전체에 불안감을 퍼트리는 대표이다. 이 유형을 추구하는 대표는 당연히 없겠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 이렇게 흑화 한다. 매출은 원하는 만큼 올라오지 않고, 자금 압박은 심해지고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인 상황에 오후에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는 직원들을 보면 화가 날 수 있다. 언성을 높일 수도 있고, 물건을 집어던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대표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대표의 불안감은 조직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증폭된다. 그리고 조직 전체를 망가뜨린다. 대표도 이겨내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대신 소화 해 줄 구성원은 없다. (참고: 리더의 불안감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
확실성은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 누구도 불확실성을 아무런 대가 없이 감내하지 않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는 확실성에 비용을 지불한다. 해고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무원이 되고,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보험에 가입을 한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확정적인 손실을 감수하는, 일종의 Bias-variance tradeoff 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업이 성공하면 대표는 누구보다 큰 보상을 얻는다. 그 보상의 원천은 대표가 이겨낸 높은 불확실성에 있다. 확실성을 원하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확정적으로 감수는 손실들의 합, 그게 불확실성을 감내한 사람이 받는 보상이다. 그렇기에 대표가 더 많은 짐을 질수록 보상은 대표에게 집중되어야 하며, 반대로 책임을 나눌수록 보상 역시 더 배분되어야 한다. 핵심인력을 월급쟁이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대표를 자주 만난다.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대단하기도 하고, 범인은 꿈꾸지 못할 일을 해낼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 첫 번째 유형이 대표적이다. 스스로조차 속여버린 대표의 추진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이 유형의 대표는 정신적으로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높다. 첫 사업이 망했을 때, 다른 유형의 대표보다 재창업에 뛰어들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들 모두가 정말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앞서 얘기한 대로 첫 번째 유형과 두 번째 유형을 구분하는 건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는 때로 자신이 없어도 자신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대표는 외로운 자리이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맞서 한 치 앞도 모르는 항해길을 선두에서 지위하는 일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그렇기에 눈앞에 파도를 못 본 척 눈을 감기도 하고, 선원들에게 떠넘기기도 하고, 앞에서 강한 척도 하고 뒤에서 울기도 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식인 셈이다. 그럼에도 가장 멀리 내다볼 수 있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가장 큰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러니 이겨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