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말씀

by 최선화

우연히 어느 잘 알려진 분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이분에 대한 명성은 이미 들어왔었지만 직접 강의랄지 법문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연을 듣고 그분을 직접 느껴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우선 종교인이기에 가사는 입었지만, 소박하고 겸손하며 지극히 평범한 자세로 종교적 허세나 포장 없이 법문을 본인의 체험담 형식의 이야기로 풀어나갔다. 그러면서 법문을 지금 여기에서 당사자의 경험과 연결 지어서 전하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수 천 년 전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우리 일상에 맞닿는 현실로 변환됨으로써 대중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바로 이점이 그분의 큰 재능이자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말씀이나 박제된 진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살아있는 말씀으로 전하기에 피부에 와닿고 호소력이 큰 것 같았다. 진리의 말씀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활자로 새겨져 묶여버림으로써 생명력을 잃고 껍데기로 남아 공감과 공명을 가져오기 어렵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말씀이 공감을 낳기 위해서는 죽은 말씀을 살려내서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마술 같은 힘과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마력은 그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자신 속에서 이미 말씀이 살아있는 진리로 되살아날 때만 가능하며 그렇게 실천해온 사람만이 가능한 능력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좋은 이야기 또는 위대한 잔소리로 미라와 같이 박제된 지식으로만 남아 고이 보관될지언정 살아 움직이는 말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2000년 전 어느 사람의 행적과 그림자를 밟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이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그런 발자취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작동하는 진리와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비는 살아서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며 향기를 전할 때 나비지, 포르말린에 적셔서 말린 나비는 나비가 아니라 나비의 시체일 뿐이다. 얼마나 많은 진리의 말씀이 이렇게 그림자 내지는 시체로 남아있어 그 생기를 잃어버렸는지 모른다.


이분은 분명 나름의 도를 따라서 말씀으로 살아오고 실천해옴으로써 당신의 삶과 말을 통해서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진리를 죽은 말씀이 아닌 살아있는 삶으로 되살려내었기에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모범은 진리를 따르며 알고자 하는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를 부여한다. 그것은 아는 만큼 실천하고 그런 말씀대로 살라고, 그러면 진리로 정화되고 익어져서 신체화된 만큼 에너지와 생기를 얻게 될 것이며 어느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빛으로 드러날 것이다.


지금 세상이 다른 시기와 차이 나는 점 중 하나는 지식과 말씀이 보편화되고 일상적 언어로 상용화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이 머리와 지식으로는 알지만, 실체를 알지 못하여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남아있다. 헛소리 같은 잔소리와 공명과 반향을 일으키는 말씀은 구분된다. 진리를 빙자한 장사 아치와 진정한 구도자와 사문이 스스로 판가름 나는 것과 같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호흡처럼 가깝다. 그러니 말씀을 머리로 아는 것에서 나아가서 호흡하고 숨 쉬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 시대의 요청이며 사명이다. 더는 고상한 말과 몸짓으로 가릴 수 없으며, 현란한 말과 인공조명으로 가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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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집 근처 산에 각시붓꽃과 화란 붓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산속 깊숙이 피어난 꽃이지만 그 향기는 멀리까지 날아가서 벌과 나비가 모여든다. 살아있는 말씀의 향기와 생기를 예민한 후각을 가진 존재들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살아있는 생명과 삶의 향기도 빛을 발한다. 진정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말씀을 입으로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과 삶으로 전하며 말씀과 진리에 생기를 불어넣어 되살려내는 진솔한 범인들이다. 거창한 말과 행동은 아니라도 일상 속에서 진실한 태도로 순수한 빛을 전하는 사람다운 사람이 진정한 이 시대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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