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향기의 계절이다. 집을 나서면 바로 기다렸다는 듯이 훅 들이닥치는 찔레꽃 향을 시작으로 산책길 곳곳에는 준비된 향 내음이 기다린다. 올해는 유난히도 아카시아꽃이 지천으로 피어나 눈길을 사로잡고 향기에 취하게 했다. 이팝과 산딸나무 꽃과 함께 온 산을 뒤덮은 순백색이 마치 첫눈이 쌓인 것 같고 서리가 내린 듯한 데다 향까지 더해지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카시아꽃 향은 얼마나 우아한지 그 유명한 프랑스제 향수를 능가한다. 아카시아꽃은 어릴 적 꿀을 빨아먹기도 하고 튀김 해서 먹으면 이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고급 요리가 된다. 벌들이 윙윙거리며 우리의 접근을 막아 야속했는데, 그 많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카시아 꿀을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한 숟가락 퍼먹던 달콤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 계곡물소리에 이끌려 살펴보니 산비둘기 두 마리가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도 비가 오길 기다리며 물이 그리웠을 것이다. 물소리에 취한 사이 갑자기 찾아든 고고한 향기에 이끌려 고개를 들어보니 고광나무 꽃이 한창이다. 이렇게 진한 향기를 하얀 작은 꽃 속에 다 담기가 너무 버거웠나 보다. 그래서 저렇게 토해내고 있으니... 단순한 모양새와 색깔에 비해 고급스럽고 진한 향기에 취해 주변 암자까지 올랐지만, 스님은 출타 중인지 만발한 영산홍과 이팝 만이 우리를 맞아준다.
속세에서 다 버리고 떠나니 산속에서 저렇게 풍성한 꽃과 향기에 취해서 살아가게 되는구나. 텅 빈 절 마당과 법당을 채우고 있는 꽃과 법문의 향기가 이렇게 살아 자비로우신 미소로 우리를 맞아준다. 꽃 보시 향 보시와 더불어 미소로 전해진 법 보시로 영혼이 다시 맑아지고 씻어진다.
거의 매일 다니다시피 하는 산책길, 어디에 무슨 꽃이 피는지 다 안다고 여겼는데, 길바닥에 별 모양의 하얀 꽃이 떨어져 있어 이상히 여기며 다가가다 어디서 친숙한 향이 코를 찌른다. 고개를 들어보니 큰 때죽나무에 총총히 매달려 있는 하얀 꽃이 손짓하며 맞는다.
개울가에 피어나 아이들이 송사리나 피라미 잡을 때 한 움큼 물에 넣으면 떼죽음으로 올라오게 만들던 그 꽃, 그래서 때죽으로 이름 붙였나 보다. 좀 살벌한 이름에 비하면 꽃과 향기는 톡 쏘지만 산뜻하다. 머리 무거운 날 학교 뒷산을 오르다 만난 때죽 향기는 나를 진정시키고 세상의 때를 벗겨주었던 청량제 같은 향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이 철에 피어나는 최고의 향은 역시 찔레꽃 향기다. 친숙함과 가지가지 사연들이 서려 있는 찔레꽃은 아리랑만큼이나 이 땅에서 살아온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꽃이다. 아침마다 이맘때쯤이면 창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드는 찔레꽃 향이 내 하루를 축복 속에서 열어준다. 옆자리를 차지한 아카시아도 머리를 흔들며 손짓한다. 오월은 이렇게 넘치는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모두에게 환호성과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생명의 계절이며 축복의 계절이다.
이렇게 피어나는 꽃처럼 생명처럼 나도 이 땅에 축복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월은 유난히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날이 많은가 보다. 우리 삶이 모두 오월 같고 모두가 오월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인간의 향기로 세상이 채워지지 않을까?
오월은 유난히 여성성이 넘치는 계절이다. 삼월이 사월이가 자라서 오월의 신부가 되는 축복받는 시기다. 서양에서는 유월의 신부(june bride)라지만 우리는 오월이 더 걸맞다.
순결한 면사포 같은 새하얀 꽃과 연초록의 보드라운 손길 같은 이파리로 산천 곳곳에서 다시 살아나서 삶이라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계절, 그 모두의 앞날에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긴 여행길에 비바람도 몰아치고 폭우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강인해지고 더 깊이 뿌리내리는 나무들같이.
신록예찬을 노래한 분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모두의 가슴에 보드라운 꿈과 순박한 소망을 한 줌 품어보게 하며 삶이라는 가깝고도 먼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생명과 환희의 계절...
벌써 저 멀리서 밤꽃 향이 날아들고 바닷가에는 해당화의 향기가 전해지는 설렘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