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공포

by 최선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혹시 병이 들지도 모르고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에서부터 죽음의 공포, 핵전쟁이나 대기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이나 가설적인 두려움까지 다양하다. 이런 두려움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관찰을 통해서 아니면 읽거나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갖게 되며, 언제 나에게 그런 비극적인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다.

이런 두려움과 공포감이 가끔 들어도 잊어버리고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공포와 두려움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이 땅에서 인류가 살아온 기억들이 축적된 집단 무의식이 모두에게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두려움과 공포심을 가지면서도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가 문제다. 순간순간 그런 공포감과 두려움을 재 기억시키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지만 그래도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며 믿고 지금을 살아가며, 때로는 마음 챙김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떨쳐버리기도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믿고 지금에 충실할 뿐이다. 만약 두려움을 느끼는 일이 닥쳐온다고 해도 그것은 그때 가서 처리할 수 있으며 그때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미리 두려움을 느끼며 지금을 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지금의 삶을 놓치는 일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리 걱정하는 일의 80% 이상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미리 걱정하는 것은 문제를 예방하는 약간의 순기능도 있지만, 대부분은 쓸데없는 잡념에 불과하다.


구도의 길을 걷기 위해서 입산해도 처음 3-4 년은 공양간에서 일하거나 살림을 돌보는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심을 기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잡념을 떨쳐버리고 현재 주어진 일에 충실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바쁘게 사는 사람은 세월이 언제 갔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순간순간에 충실하다 보면 하루가 언제 지났는지 모른다.


미래는 누구도 지금 알 수 없기에 궁금증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이런 알 수 없음이 삶의 한 부분이며 어느 정도의 불안도 피할 수 없다. 그러기에 믿음과 신앙 그리고 종교가 생겨났고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종교나 신앙이 없는 사람도 삶 자체에 대한 믿음으로 믿고 맡기며 자연의 순리와 질서에 의탁하려는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가지게 된다.

지금도 핵전쟁에 대한 위협과 기후 위기, 전염병 등 온갖 위기감과 공포감이 우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런 가운데 누군가는 중심을 유지하며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서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정치가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얽혀있고 과학자라는 사람들조차 사실만을 말하는지 의심스럽다.


이럴 때 긴 세월을 살아온 어른다운 어른들의 말씀이 더 지혜로운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다 살아갈 방도가 있는 법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니 그러니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고 지금 할 일을 하라’는 말씀은 위엄을 지닌다. 왜냐하면 이분들은 그런 고비들을 직접 경험하고 넘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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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모호한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다면, 어느 것도 공포감을 주지 않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결국은 개인 각자가 갖는 태도와 마음 상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여기는 적이나 위협보다 더 직접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모호한 위협보다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다스리는 것이 먼저 해야 할 것인 것 같다. 따라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믿음과 여유로움이 지금 주어진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라는 것도 지금 주어진 순간에 충실함으로써 극복되고 예방될 수 있는 길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나, 지금에 충실하고 지금 주어진 축복을 받아들이며 충실이 내 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할 일이다. 인간 모두는 이 세상에 우연히 생겨난 하루살이가 아니며, 사람을 통해서 사랑과 빛을 전하고 이 땅에 축복을 나누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다. 그런 사람의 사명과 축복은 거창하고 위대한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루하루 순간순간 주어진 작은 일과 마주치는 이웃과의 상호작용이나 혼자만의 생각을 통해서도 드러나며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두려움에 떨고 공포감을 느낀다면 그들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믿음 속에서 각자의 삶을 충실히 이어갈 수 있도록 손잡아 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 맞잡은 손의 온기는 우리의 마음에 위로와 휴식을 주며 합해진 마음의 근력으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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