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의 길

by 최선화

오랫동안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누군가 가까이서 부정하고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혼자서 속으로 나쁜 사람이라 욕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 결국은 그런 사람과는 단절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고 나서도 속이 그리 편치만은 않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이런 일이 주변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이 목격된다. 당사자들은 그렇게 나쁘다고 여기지도 않는 것 같고 미꾸라지같이 잘만 빠져나가며 도리어 승승장구하고, 이런 속내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정받는 것을 보며 나만 속이 상했다. 그러면서 가끔 생각날 때마다 내 속만 끓였다.

성경에는 판단하지 말라고 했고 부처님도 중도를 말했고 공자님도 중용을 말했다.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거나 끌리지 말며 저항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도 내 속에서는 정의감 내지는 양심 등의 이유를 들며 여러 가지 생각 속에서 혼자서 복잡하고 착잡해진다.


좋다는 말씀은 다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고 내가 더 옳다고 여겼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나쁜 짓을 하는 그들의 문제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다 알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내가 문제였다. 그들이 어떻게 살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며 내가 관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굳이 그들이 선택한 일이라면 나로서는 별도리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을 보며 갈등하는 나 자신을 바로잡는 것은 내가 책임질 일이다.



사회정의라는 것도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은, 특히 그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내가 더 옳다고 여긴다. 부처님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라고 했고 예수님은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고 했는데... 잘못된 일에는 할 만큼 하다 안되면 마음을 접고 넉넉한 공간을 허락하며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아상과 아집의 문제라는 것이 자명해진다.


내가 그들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다면, 그것밖에 안 되는 그들의 됨됨이를 그대로 수용했다면,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는 세상의 법칙을 믿고 기다릴 인내심과 자비심을 가졌다면, 구태여 내가 단죄해야 한다고 여기며 스스로 상처받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만든 생각의 감옥에 스스로 갇혀 고통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했다고 여기지도 않지만 내가 할 일은 저항도 끌림도 비판도 아닌 중도의 법칙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만약 내가 그냥 중도의 길을 지키며 비난하거나 저항이나 거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고통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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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했기에 그들과의 관계가 힘들었고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내가 먼저 지쳤다. 이렇게 다 따지고 보면 함께 할 사람이 없고 모두가 각각의 이유로 다 멀어지고 싫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중요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럼 나는 온전한 사람인가? 타인의 눈에 과연 어떤 사람으로 비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도와 중용이 설파되고 강조되는 것을 보면 이런 바른 자세가 세상에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생과 어린양들에게 필요한 진리와 길을 전하기 위해서 오래전부터 말씀이 주어졌다. 그런데도 2000년 전부터 내려온 말씀을 지금도 실천하지 못하다 이제야 겨우 깨달았다. 괴로움을 충분히 당해 보고서야 겨우 살길을 찾아 스스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성현들의 말과 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중도의 길은 도덕적인 충고가 아니라 진정한 삶을 위한 길이다.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지키기를 권장하는 덕목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한 삶의 길이며 생명의 길이고 내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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