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도시 고속 앞에는 철길, 뒤에는 고층아파트로 둘러친 좁은 땅에 숨은 듯 살아가는 주민들, 독거노인 아니면 노인 부부가 주를 이루는 도심 속 가려진 동네에도 정겨움과 웃음꽃이 피어난다. 문 잠그고 각자 살던 주민들이 이들을 돕기 위한 마을 만들기 사업이 진행되면서부터 젊은이들이 드나들며 함께 골목을 청소하고 가꾸며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할머니들이 가장 잘하는 일은 평생 해 온 살림살이와 반찬 만들기다. 김 할머니표 밑반찬과 이 할머니표 경상도식 추어탕 등으로 반찬 가게를 열어, 재룟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나눔에 의미를 두며 팔고 있었다. 평생 한 번도 내 이름을 내세우며 산 적 없던 할머니도, 자신이 만든 상품 앞에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얼굴엔 자부심이 넘쳤다. ‘내가 이래 보여도 솥뚜껑 운전 경력이 얼마인데...’ 좁은 땅이지만 꽃도 가꾸고 채소도 심어 가꾸다 보니 정겨운 골목길이 되었고 사람 냄새 풍기는 이웃이 되었다.
갑자기 며칠 보이지 않는 분은 찾아가서 안부도 묻고, 죽도 끓여주고 필요한 심부름도 해주며 서로를 돌보고, 편찮은 분은 서로 돌아가며 보살피고 있다. 모두가 처한 위치와 입장이 비슷하다 보니 남의 일만이 아니기에... 그 옛날 반세기 전 고향 집성촌에서의 삶의 방식이 여기서 재현되고 있어 반갑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사는 것은 함께 하는 일이다,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삶이 고되고 어려울수록 이런 사람 간의 관계가 더 중요해지며 서로에게 울이 되고 버팀목이 된다. 혼자라면 못 할 일도, 함께 라면 가능하다. 그래서 가까운 길은 혼자 가도 되지만 먼 길은 친구와 함께 가라고 한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면 번거롭고 힘든 일도 많이 생기지만 함께라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있다. 지금 같은 시대는 전 지구가 이웃으로 어느 누구도 배제할 수 없다. 지구라는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가 된 지 오래되었다. 코로나 사태는 이런 교훈을 절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이런 외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는 각자의 마음 안에 많은 경계와 철조망 같은 장애물들이 가로막고 있다. 무기로 무장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다. 이제는 이런 내적인 경계를 해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람 간의 경계와 선은 필요하다. 그것을 예의 또는 상호존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적인 것에 대한 존중을 넘어선 고립과 배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도를 닦기 위해 토굴에 들어 간 사람도 공간적으로는 고립되었지만 득도해서 세상을 구원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기에 심리적인 고립이 아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매일 만나고 모이지만 각자의 계산이 다르고 제로섬 게임을 하기에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살벌하고 냉혹한 관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극단적인 경우보다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한다. 로마의 황제도 드부르니크에서 평온한 삶을 살 때 로마로 돌아오라고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누리는 평화와 행복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황제라는 권력과 자리보다 일상의 평온이 더 중요함을 알았던가 보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건 스스로 평화를 누리며 행복감을 가지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만족감을 느끼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황제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필요한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조건에 끌려다니는 한, 마음의 평화와 행복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 어떤 조건이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금 만족하고 마음의 평화와 고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그저 주어진 것인데 왜 조건이 그리 많아야 하는지...
최소한의 생존조건은 필요하지만, 그 이상을 원하며 더더더 하며 배를 불리다 마침내 터지게 된다. 지금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원하는 조건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라. 그것으로 끝나는지를, 아니면 또 다른 것이 더 요구되는지를.
지금 시대에 절실히 요구되는 태도 중 하나는 절제라 할 수 있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고 과잉생산의 시대도 이미 저 물어서 그 부산물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외적인 절제만이 아니라 내 삶의 절제와 겸양을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