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매 순간 나의 삶으로 표현하는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깨어있고 인식하고 있는 때는 드물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의식적인 민감성이 높아진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개인적인 영향력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이 땅에 평화와 상호존중 그리고 화해가 요구되는 때가 없었기에, 서로에 대한 존중과 화해하려는 열린 태도 없이 평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모래 위에 쌓는 성과 같다.
말로 머리를 굴리며 주장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스스로 평화를 누려야 하고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만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나의 책임을 이루는 길이다. 스스로 평화를 누리고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평화를 강요할 수 없다. 그 모두에 앞서 내가 먼저 평온할 때 평화의 진정한 가치가 나를 통해서 빛을 발하며 그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갈 것이다.
지금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축소해 보면 마치 사춘기의 반항과 일탈로 치닫는 철부지 중학교 2학년 교실 같다. 그래서 온갖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보란 듯이 버젓이 벌어지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학생들과 수업을 해야 하는 선생은 참 난감하고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게 된다. 그래도 선생이기에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 먼저 이들이 겪는 성장단계와 성장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서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보기에 진정으로 믿을 수 있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간적인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소리치고 떠들며 난장판을 벌이는 학생들에게, 더 큰소리로 화를 내며 조용히 하라고 고함지르는 대신, 먼저 선생이 단호하지만 평온한 태도로 차분하게 학생들에게 말함으로써 학생들이 평상심을 회복하고서 할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아무리 철없는 막무가내라 해도 누구를 믿을 수 있고, 누구 말에는 수긍하고 따를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부모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모순과 거짓이 그들을 반발하게 했다. 그들의 그런 순수한 의도와 열망을 깊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때 그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이 부모나 선생에 대해서 하는 입에 담지 못할 욕과 분노를 들어본다면 아이의 부모나 선생들은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성인으로부터 당한 배신과 부당함 그리고 폭력을 다 듣고 나면 그야말로 ‘그런 욕 들어 싸다 싸’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기에 어린 사람들을 나무라기 전에 먼저 윗물이 맑아져야 하며 그래서 학생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이런 사춘기 반항아들의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으며 이들에게 신뢰를 얻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도 세상에 새로운 질서와 평화를 만들어 낼 방법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다. 이처럼 나를 넘어선 더 큰 세상에 대해서 내가 할 일은 먼저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바른 모범이 되는 것이다. 다들 그렇지 못하고 남 탓을 하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기에 그런 결과들이 모여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개인 각자가 자신을 바로 세우고 자신 몫의 책임감을 받아들이려는 태도의 전환이 산적한 현안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위선과 그들의 다른 사람을 향한 손가락질에 신물 난 사람이라면,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더는 누구도 탓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점잖지만 확실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겸양과 염치를 알고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바로 이런 건전한 시민과 생활 속의 도인이 필요한 시기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조용한 영웅이 필요한 시기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길은 다름 아닌 평화와 타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삶 속에서 스스로 지켜나갈 수 있는 내공을 가진 존재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