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라다크에서 가난하지만, 행복을 누리며 사는 노인에게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를 물었다. 노인은 아마도 당신들이 가진 물질적 재산이 지나치게 많기에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기도하고 배우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참 깊이 찔리는 말이다. 물질적 풍요라는 소유욕에 함몰되어 그것이 다인 양 살다 보니 진정한 삶을 가꾸고 누릴 여유와 존재적 가치를 돌아보고 가꿀 틈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의 소유와 물질은 삶을 편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그러나 그 수준에서의 만족은 금방 한계에 도달하며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점점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에는 가슴이 채워지고 살아있음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존재적 삶에 대한 갈망이 더 깊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고요히 묵상하고 관조하며 존재적 가치를 가꾸어 나가게 된다.
존재적 삶이란 물질적 차원에서의 삶인 신체와 오감의 만족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영적 차원인 사랑과 진리와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는 삶이다. 사랑과 진리라는 말이 지금의 세상에서는 너무 오염되어 그 말의 순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더 그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이런 반성과 성찰은 다른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으며 당사자만이 풀어야 하는 삶이 던진 숙제와도 같다. 그러기에 존재적 삶을 위해서는 열린 마음으로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하며 배우고 주변을 돌보며 가꾸려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런 쉼 없는 정화작용을 통해서 삶과 생명의 완전성을 익히고 배워나가게 된다.
사는 곳을 아무리 청소해도 어느새 먼지가 쌓이듯이 지속해서 자신의 의식과 가슴을 돌아보며 정화하고 성찰하며 진리와 사랑의 영에 조율하며 표현하려는 태도가 존재적 삶의 기본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상사의 탁류에 떠밀리고 휘말리게 된다. 그러기에 삶의 강물에 몸을 씻고 고요의 자리로 돌아와서 근원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며 마주하는 두렵지만 정직한 직면의 시간이 요구된다.
사랑이 어떤 대상에 대한 정서적 애정과 몰입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넘어서 책임과 인내 그리고 관용 등을 포함한다. 그렇다, 사랑은 순간적인 감정 충만과 입발림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함과 의식적 관여라 할 수 있다. 진정으로 내 삶을 사랑한다면 타인의 삶도 존중할 것이다. 내가 소중하면 남도 소중하다. 그래서 너와 내가 다른 존재가 아니다. 그러기에 너와 나 모두를 통해서 드러나는 삶의 정수가 바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