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치료 전문가 중에 보웬이라는 유명한 분이 있다. 이분의 접근법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분화(differentiation)이라고 할 수 있다. 분화는 개인 내적 부분과 대인 관계적 부분이 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말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 내적으로는 객관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나 사실보다는 그것에 대한 감정적 휘말림이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하고, 나와 나 아닌 것에 대한 뒤엉킴이 생각보다 심각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의 치료법은 이 모두를 구분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법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그의 치료적 접근에는 그가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더 깊은 영성적 관점이 잠정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전체적으로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의미에서 치료 또는 인간 치유의 과정을 빛을 찾고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으로 재해석해 보며 영성적 관점으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우선 내적 분화를 살펴보면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것을 객관적 사실과 감정적 반응을 구분해 내게 되면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고 중립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아끼는 잔을 떨어뜨려 깨졌다고 해 보자. 객관적 사실을 잔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은 사람에 따라 달라지며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잔을 깼다는 사실을 넘어서 엄청나게 증폭된 감정의 폭발이나 분노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잔을 깼다는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 빛의 성전에 이르는 첫 단계에서처럼 인내심을 가진다면, 그리 중요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며 그리 큰 인내심이 요구되지도 않는 일이다. 그리고 정서적이거나 감정적 반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떤 일도 나를 뒤흔들지 못한다는 평정의 단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잔이나 깬 사람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올라올 수 있는 감정들을 충분히 가라앉히고 평상심을 유지하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분화된 관점으로 발생한 사건을 보게 되면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마음의 동요 없이 보게 되기에 다음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쉽고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영성적 관점에서는 그 상황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 축복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나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배제하고 문제만을 파악하고서 처리해 나갈 수 있게 되면 다음 단계는 간단하다. 유리 조각에 다치지 않도록 청소해 내고 실수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주는 일이다. 이것은 사건의 처리나 문제해결을 넘어서 사람 속에 있는 빛의 드러남과 발산을 통해서 뒤처리를 잘 해내는 지혜와 사람의 마음을 사랑과 이해로 감싸주는 것을 포함하며 더 나아가서 다음에는 더 조심하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진정한 치료와 치유의 과정은 단순히 주어진 상황을 다루어내는 것과 별 탈 없이 지나치는 것을 넘어서서 궁극적으로는 각자 안에 존재하는 빛이 드러낼 수 있는 빛의 성전에 이르는 성숙과 깨달음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비록 보웬은 이러한 성찰까지는 얻지 못한 것 같지만 지금의 우리는 단순한 증상의 완화 내지는 회복을 넘어서 진정한 치유와 치료란 이렇게 자신 속의 빛을 찾아가고 드러내는 것이 본질이자 근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 안에 있는 빛을 드러내고 찾아가는 단계로 요란다는 빛의 성전에 이르는 7단계를 인내, 평정, 깨달음, 확신, 빛의 발산, 지혜 그리고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단계는 어떤 상황이나 누구에게나 자신 안의 빛과 사랑과 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 통과하는 과정과 절차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어떤 상황이나 문제도 결국은 사람 안의 빛을 드러내며 지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빛과 사랑의 발산에 따른 부수적인 효과로 건강과 치유 아니면 사회적 인정과 성취도 뒤따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웬이 말하는 분화는 영성적 차원에서는 단순한 구분 내지 차이나 공간을 만드는 것에서 나아가서 변환(transformation)이라는 말이 영성적 의미에서는 더 적절할 것이다. 그것은 땅에 서 일어난 일을 통해서 하늘과 진리의 관점에서 소화하고 해석하며 신에게 바치는 일상의 섬김(service)이다.
이렇게 빛의 성전에 이르는 7단계는 단순한 몸과 육신의 증상에 대한 치료나 치유를 넘어서 존재의 성숙과 인간 본연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가고 실천해 가는 것으로 근본적인 존재의 치유가 바로 자신 속의 빛과 사랑을 드러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증상 완화와 치유는 결국 가구를 재배치하는 것 같은 순간적인 조작에 불과하며 장롱 속 해골은 그대로 두는 꼴이 되기에, 언제 어디서나 재발하고 드러나는 악순환을 반복할 것이다. 그래서 근원적인 존재의 치유와 영적 성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