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화 Mar 26. 2024

삶의 예술

1. 반성

 이제껏 살아온 과정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중요한 무엇을 놓쳤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마치 우주나 자연법칙은 나와는 별개의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쫓아서 살아왔다. 그래서 사회 내에서 사람들 사이에서의 법칙과 질서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식의 삶이, 나 혼자만의 방식은 아니며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 있으며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따지고 보면 나도 이 광활한 우주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그 큰 바탕은 잊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달려서 살아온 것이다. 중요한 삶의 근원을 망각했다는 느낌이 든다.


 어릴 적 고향에서 살 때는 농사를 지었기 때문인지 바람이나 비와 구름 아니면 하늘의 별 등 자연현상이 무척 중요했고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고 항상 자연적 질서와 교감하며 살았다. 계절과 절기에 따라 생산되는 곡식과 채소가 달랐고 우리의 삶도 그에 순응해서 살아왔다.

 그런데 도시로 이사하고부터는 절기나 계절은 잊어버리고 자연의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사회적 과업인 공부와 직업과 돈, 소비 등에 파묻혀 살았다. 처음 이사했을 땐 도시 안에서 산다는 것이 너무 갑갑해서 자연을 그리워했지만,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으며 자연과의 교감은 잊어버린 채 그럭저럭 살아왔다.

 이런 환경적인 요소만이 아니라 내 존재라는 측면에서도 신체와 내 생각과 내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에만 충실했지, 인간존재와 영혼 그리고 생명의 근원 등의 영적이고 근본적인 부분에 관한 성찰과 돌봄은 등한시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고 겉으로는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가슴속에는 뭔가 모를 구멍이 커지고 깊은 고립감과 허전함, 무력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온갖 신약과 대증요법으로 다스리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그러면서 사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존재하는가?라는 실존적 의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0대의 황금기를 민주화를 위해 젊음을 바치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소외계층의 고단한 삶을 돕기 위해서 평생을 바쳐 일했지만, 반세기가 다 지나간 지금도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사는 것은 더욱 팍팍해지고 젊은이들은 더 무력증에 빠져들고 있으니,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소위 말하는 산업화에서부터 지금의 IT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명과 계발 및 진보에 의존해서 살아오면서 우주적 질서나 생명의 본질과 근원 그리고 존재 자체에 대한 사유는 까맣게 잊어버렸고 사회적 요소에 함몰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 결과로 개인적인 나 혼자만의 방황과 혼돈을 넘어서 지금 인류가 직면한 총체적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과는 달리 자연은 생명의 질서와 우주적 지성에 따라 인간들의 온갖 간섭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질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인간도 이제는 생명의 본질과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열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다른 생명체처럼 인간도 생명의 본질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방식으로의 삶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체는 그 자체 안에 디자인과 완벽한 작동원리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언제 꽃피고 열매 맺는지를 스스로 알아서 전개해 나간다. 먼 길을 가는 기러기도 스스로 방향을 정하는 법을 알며 함께 편하게 나는 법을 알고 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자연은 이런 거대한 우주적 지성과 순리에 따라 잘 작동되고 있다.

 그에 비해 사람들은 생명의 내재적 힘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런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서, 사회적 논리에 따라, 어렵게 애쓰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것만이 사회적 사다리를 기어오를 수 있는 길이며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있다. 

    

 다른 동물이나 생명체는 스스로 알아서 내재적 원리에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데 왜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는가? 그런 본능과 능력을 잃어버렸거나 퇴화한 것 아닐까? 아니면 우주적 지성과의 연결점이 끊겨버리고 우주의 미아로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간 간의 작동원리만을 따르다 보니 그 부작용으로 온갖 질병과 재해가 만연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우주적 질서와 생명의 특성을 각자 안에서 회복하고 그것과의 조화와 합일을 이룸으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익혀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우주적 방식이 뭐고 근원적인 생명의 질서가 뭐냐?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럼 차분히 하나하나 검토해 보자.     

작가의 이전글 용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