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눠 쓰던 것은 모두 버렸다. 당신에게 받은 것도 하나씩 버려왔다. 그럼에도 그리움은 약속하지 않고 찾아온다. 당신이 좋아하던 것을 우연히 마주치면, 당신 말투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당신이 챙겨주던 것을 누가 챙겨주면, 당신 그리워하는 내 마음과 닮은 마음을 보면.
어느 날,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하나도 말해주지 않아 민낯으로 만나게 만든다. 불쑥 당황스럽지만 눈물 터뜨리기엔 좋은 민낯으로. 적응하고 적응해도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당신 이름만은 흔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그 이름, 우연히 영어로 쓰니 자연의 이름과 닮았다.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사람. 진부하지만 다시 한번 쓸 수밖에 없는 문장처럼 떠오르게 한다.
이미 지나간 이별은 의도하지 않게 연습이 되어주었다. 연습의 연습을 거듭해 의연하게 살아간다. 누구를 잃은 게 더 아픈 일인지 모를 정도로. 의젓해서 미안하게. 이제 나는 맑은 날 죄책감 없이 웃는다. 그러면 약속도 계획도 없이 민낯으로 만나는 순간들에 안도한다. 맑은 날에도 울 수 있어 고마워진다. 아무도 울지 않는 드라마나 영화에도 눈물 떨구던 날들, 전철에서 사시나무 떨 듯 몰래 울다가 택시를 잡아 목놓아 울어버리던 날들에 대해 이제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