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웨덴의 서울댁 Sep 20. 2021

약혼,프러포즈,반지?

대체 언제프러포즈할거니

2021년, 해가 바뀌고 나자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혼에 대해 조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신랑이 영 프러포즈할 기미가 안 보였다. 대략 결혼에 대해 말이 나오기 시작했던 건 작년 겨울이었고 말을 먼저 꺼낸 건 나였던 것 같다.


우리의 가장 큰 미래 계획 중 하나는 언제나 스톡홀름에 집 사기였고, 이를 위해선 은행대출을 받기위해 구직활동을 해야했다. 또한 스웨덴어의 기초 첫걸음이라 할 수 있는 SFI (Svenska för invandrare - 이민자들을 위한 스웨덴어) 과정도 올해 3월에 끝이 났다. 그러자 아직 취직은 안 되었고 진로 모색을 안 한 상태였는데, 새로운 그다음 과정으로 건너뛰면서 진로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 되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러기도 전, 연말이었다. 그냥 내가 내년에는 결혼하자고 했다. 그러자 신랑은 언제 할까? 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대충 여름이 좋지 않을까? 아니면 추석이 껴져 있는 가을이 한국분들 오기에 더 좋을까? 이런 논의가 와갔고 난 기다렸다. 계속 기다렸다. 크리스마스 이후 12월 31일 마지막 날에 화려하게 둘이서만 홈파티를 할 때도, 2월 17일 2주년 기념일 때 호텔에서 구르메 디너를 할 때도 계속 기다렸다. 이때 시어머니는 우리가 옷을 차려입고 멋진 저녁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아 그날이니?" 이런 눈치를 계속 주셨고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 무. 일. 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난 물어보지 않았다.


프러포즈받은 날


스웨덴 결혼 준비는 프러포즈 이후에 진행된다.

내가 이전에 들었던 스웨덴의 프러포즈는 남자가 무릎 꿇고 "Will you marry me" 하면서 반지를 주는 거다. 예전 스웨덴 회사에 다닐 때 들은 바로는, 프러포즈받을 때 모든 여자들이 울고 감동하고 난리가 난다고 했다. 결혼한 유부녀(?)들은 반지를 끼고 잘 보이도록 자랑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물론, 이건 스웨덴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의 시점으로 봤을 때 이야기인데, 그만큼 모두가 Sambo로 사니까 결혼식이 적다는 소리고 그 얘기는 프러포즈도 적다는 소리다.


그 와중에 신랑은 본인의 디자인 안목을 믿지 못하고 나에게 괜찮은 반지 스타일을 골라달라고 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귀금속 디스플레이가 보일 때마다 가서 어떤 게 좋다, 이런 게 별로다 라고 평하기도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괜찮은 반지 사이트를 알려줬다. 그게 연말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 아무 소식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데 그때 생각해보면, 한 번은 반지 사이즈 재는 도구를 나에게 들이대며 사이즈를 재갔다. 하지만 그래도 프러포즈가 없자 3월쯤 나는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아니, 저 정도면 어차피 할 것이 뻔한데 왜 나는 그렇게 초조해했을까? 그리고 사실 신랑은 이 모든 과정을 나에게 비밀로 했어야 한다!


프러포즈는 남자가, 여자 몰래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룰이다. 여기서 한국이랑 많이 갈리는데 한국에서는 둘이 상의해서 결혼을 하자, 이야기가 된 후 날짜도 잡고 이미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중 이벤트성으로 프러포즈나 답 프러포즈를 하지만, 여기선 프러포즈를 남자가 한 후, 여자가 Yes라고 말해야 결혼 준비가 시작된다. 내가 스트레스받았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결혼식을 대충 여름이나 초가을쯤에 할 것 같은데 3월이 되도록 뭔가 준비는 하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식 날짜를 미리 정하고 준비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난 다이어트도 해야 하고 드레스도 골라야 하고 갑자기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아 폭발하게 되었다.




스웨덴 프러포즈는 왜 남자가 하는가?

잘 참고 아무 소리 안 하다가 3월쯤 나는 폭발해서 물어봤다. 야, 우리 결혼 하긴 하는 거니? 스테판은 상처 받았다. 이 모든 게 결혼한다는 게 분명한데 나는 너무 답답해서 우리 날짜만 미리 정해두면 안 될까? 얼른 준비해야 한다를 시전 했고 신랑은 이건 스웨덴 문화랑 아주 다른데 어버버 하면서 어느 정도는 끌려오고 자기 나름대로 엄청 스트레스받았다. 내가 이해가 안 간 부분은 어. 차. 피 우리 결혼할 건데 미리 정하고 슬슬 준비를 시작하면 안 되는 건가 였다. 그리고 왜, 남자가 꼭 남자가 프러포즈를 해야 하나? 여기 여성평등으로 치자면 전 세계 탑 1-3위로 손꼽히는 스웨덴이다. 스웨덴 여자들처럼 자기 할 말 다 하고 당당히 행동하는 애들을 못 봤다. 아니 그런데 왜 프러포즈는 남자가 해야 하냐고. 게다가 왜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는데?


내 생각엔 결혼 자체가 이미 전통적인 것의 범주에 있으니 이를 진행하는 방법도 전통적인 방법으로 국한되어 버린 것 같다. 즉, 결혼할 니즈가 거의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커플들이 동거하며 Sambo로 오랜 기간 살아갈 때 둘이 살면서 무언가를 위해 사실 결혼할 필요가 없고 이 얘기인즉슨, 한국처럼 아 우리 어서 애를 낳아야 해! 우리 어서 신혼집 대출받아야 해! 우리 어서 같이 살고 싶어(?)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해라는 식으로 사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 결혼을 해볼까?라는 이야기가 나와도 그 물꼬를 트는 프러포즈는 전통 그래도 남자가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다. 물론 여자가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결혼식을 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전통에 더 익숙함을 느끼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프러포즈도 전통적으로 진행하는 게 아닐까 싶다.




프러포즈가 어려운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스웨덴의 반지 사이트 Vanbrunn.com

사실 스웨덴은 인구가 천만 수준이고 정말 많은 소비 시장이 빈약하다. 내가 결혼 준비하면서 결혼 관련 용품 시장이 너무 빈약하다고 느꼈는데 그중 그나마 제일 괜찮아서 다른 유럽 국가에서 사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 반지이다. 물론 다이아몬드는 영국에서 가져온 건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Vanbruun이라는 반지 사이트는 본인이 프러포즈하다가 어려움을 겪은 스웨덴 아저씨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 사이트에는 기본 디자인 모델이 아주 잘 분류되어 있고 사이즈, 알(?) 사이즈, 재질, 색 등 여러 가지를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어서 신랑처럼 이과 기반인 사람들이 접근하기 아주 좋다. 게다가 무엇보다 프러포즈를 위한 가이드가 있다!


결혼식 당일

여기 너무 웃긴 것이 수칙 1번이 이 모든 것은 비밀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랑은 수칙 1부터 지킬 수 없었다... 게다가 만약 여자 손가락 사이즈를 모르겠다면 손을 몰래 찍어서 자기네들한테 보내주면 우리는 전문가라서 손가락 사이즈를 알아맞힐 수 있다고 한다. 반지 사이즈 교환은 1회 무료다. 즉, 기존에 예물을 맞추기 위해 실제 가게로 가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조합해서 나의 니즈에 맞춰 접근성이 떨어지고 장벽이 높은 비싼 귀금속을 살 수 있는데 스톡홀름 시내에는 쇼룸도 운영하고 있어서 우리는 결혼반지 맞출 때 한 번 방문도 했다. 이 사이트가 아주 인기라서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커플도 여기서 약혼반지를 맞췄다.


이런 식의 영업이 스웨덴에는 없기 때문에 기존 귀금속 가게와 경쟁하기 위해 Vanbruun은 다이아몬드 자체를 스웨덴 국내에서 구매하지 않고 영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프러포즈 - Yes? - Yes! - 약혼 - 결혼

프러포즈에서 여자가 Yes를 하면 두 사람은 약혼 상태가 된다. 그 이후 언제 결혼하느냐는 커플마다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약혼 이후 6개월 이후 결혼했지만 다른 커플은 코로나 때문에 2년 정도 이후에 했고 프러포즈하고 난 이후부터 반지를 끼고 다닌다. 그래서 한국처럼 커플링이 별로 없다. 부모님은 처음에 약혼이면 부모님 시대처럼 약혼식을 하는 거냐, 하며 혼란스러워하셨는데 그건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다만 미국처럼 여자는 약혼반지 1개와 결혼반지 1개, 총 반지 2개가 생기고 남자는 반지 하나만 있다. 전통적으로는 남자 여자 모두 약혼반지 하나씩 나눠갖고 결혼반지는 여자 혼자 갖는다고 하는데 우리는 반대로 했다.


사실 전통이고 뭐고 스웨덴에선 주변 나라나 미국에서 받아들인 문화 부분이 크고 워낙 결혼식 자체가 커플 위주로 돌아가서 커플이 하기로 정한 대로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슨 규칙, 규율이나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가 아주 어렵다. 하지만 프러포즈받은 후, 호칭이 바뀌고 서로를 약혼자라고 칭한다. 결혼 준비도 그때부터 시작하는 큰 틀은 여전한 것 같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프러포즈 이후 신랑은 어떤 반지를 받았나 물어보셨는데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프러포즈한 후, 남자도 프러포즈 링을 받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좀 더 미국식으로 한 것 같다. 다음 편에선 프러포즈와 결혼반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작가의 이전글 스웨덴 결혼식: 결혼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