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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다정함 Nov 21. 2023

예술 그만두기

일 년씩 연장되는 계약직 예술가

소설가 김영하가 말했다. 지금, 당장, 예술을 해라. 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 석사를 하기 위해 런던에 온 10년 전, 나는 유튜브에서 그 강연을 찾아보곤 했다. 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 그의 말을 용기를 주었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의 확신 없음과 불안함, 남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기력해졌을 때 아이의 마음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just do it의 정신을 조금은 실행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 위대한 just do it의 정신을 유지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일 년이 멀다 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예술을 하고 있다. Just do it 하기에는 생계도 유지해야 하고 특히 나이가 30대 중반에 들어서부터는 정말 내가 이 삶의 형식을 40대 중반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이러한 고민을 하다 그래도 힘을 내서 계속해보자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면 예술계라는 곳의 꼴이 가관이다. 대체 나는 저 우스운 곳에 들어가고 싶어서, 이토록 불안한 삶을 영위해 왔던가?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나의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한 작가가 나에게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는 한 달에 오픈하는 전시의 수를 헷갈릴 정도로 많은 전시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전국을 쏘다니며 열심히 활동하는 그 작가는 인사성도 밝고 꾸밈이 없었다. 나처럼 많이 따지기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로 많은 전시를 했고, 그만큼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림도 꽤 팔고 있었다. 그에게 그렇게 바쁘게 활동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미술을 너무 좋아해서요, 그래서 그래요.'


신선했다. 나는 미술을 하면 할수록, 미술계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미술을 싫어하게 되었다. 미술이라는 것의 개념도 맥락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 것이 당연하나, 나는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미술과 하나의 산업으로서의 미술의 괴리를 보며,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던 내가, 대체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스스로에게 당황한 적이 수만 번이다. 대체 어쩌자고 지금까지 미술을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나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 작가는 너무나 미술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이 작가를 조금 더 알게 되자 조심스럽게 선배 작가로서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는데, 그 내용은 간단했다. 미술계가 별것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님도 할 수 있어요. 전시하는 것? 파는 것? 어렵지 않아요. 용감하게 하세요.' 나는 이 말에 처음에는 힘을 얻었던 것 같다. 그래, 나라고 못할게 뭐야? 나도 그 세계에 들어가 나의 예술을 보여주겠어.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점차 강해졌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술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판매를 마음에 두고 작업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차이점에 대해 담배 하나 꼬나물고 설교하는 고학번 미대 선배의 꼰대적 발상 때문이 아니라 정말 세상에는 팔리는 미술과 안 팔리는 미술이 있다는 뜻이다. 팔리고 싶다면 팔릴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왕이면 그림을 그리는 것이 팔릴 확률이 가장 높다. 만약 자신이 하는 예술이 팔린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한번 팔기 시작한 이미지에 갇혀 계속해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가들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중에 자기 복제적으로 계속해 같은 작업을 만들어내는 사람은 드물다. 


나에게 조언해 준 작가의 의도가 판매를 마음에 두고 작업하라는 것이 아님은 안다. 그 작가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했다면 지금까지 미술을 사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해결책을 아직은 모른다. 어쩌면 한 번에 해결되는 묘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미술의 놀이를 또 일 년 연장한다. 일 년이 지나면 또 다른 입장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배경 이미지는 김범의 <노란 비명>이며 이 글에 등장하는 작가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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