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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Aug 22. 2022

큰 상처에 헤어나지 못할 때

<굿 윌 헌팅>의 명대사

왜 나만 참아야 해!


어릴 적만 해도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박을 받았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만약 살아 계셨엄마가 호되게 시집살이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했던 나에게 머리를 깎이고 남자아이 옷을 입히면 아들이라도 되는 듯 굴던 어린 시절이었다. 사소하게 무언가를 고를 때에도 언니에게 무조건 양보를 해야 했고, 어떤 불합리가 있더라도 동생이 되어서 언니한테 대들어선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내가 만일 아들이었음 달라졌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터지고야 말았다. 평소 밥을 잘 먹던 나와는 달리 언니는 입이 짧았다. 어떤 맛있는 반찬을 주던 남길까 봐 밥그릇의 절반이 채 못되게 주어도 한 숟갈 이상을 남기며 부모님의 걱정을 끼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저녁밥상에 내가 좋아하는 불고기 반찬이 올라간다는 소리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저녁이 되니 언니가 좋아하는 반찬인 매운 주꾸미만 눈에 보일 뿐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양보만 해야 하는 걸까?



불운한 반항아가 세상과 만났을 때


미국 최고의 공대 MIT에서 청소부 일을 하던 중 램보 교수의 눈에 띄게 된다. 어느 날 교수는 복도 칠판에 푸리에 이론을 적어 놓는다. 누구든 학기말까지 이 문제를 풀어주길 바라며 푼 사람은 내 수제자로서 명예와 부를 얻게 될 것이라고. 며칠 뒤 누군가가 완벽하게 문제를 풀었다. 다음날 램보 교수는 자신도 증명하는데 2년이나 걸렸다는 더 어려운 문제를 칠판 복도에 낸다.

문제를 푸는 건 쉽지만 닫힌 그의 마음을 여는 건 쉽지 않다 ⓒ영화 굿 윌 헌팅


수업이 끝난 어느 날, 점프슈트를 입은 청소부가 거침없이 문제를 풀고 있는 걸 발견한 그 교수는 그를 따라나서지만 마음을 굳게 닫은 채 욕을 하고 떠날 뿐이다.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학창 시절 자신을 놀렸던 친구를 폭행하고 체포당해 자신을 변호하는 법정에서다. 엄청난 언변과 자신감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그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교수. 윌은 결국 실형을 받게 되지만 램보 교수는 그를 찾아가 석방시켜주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매주 교수를 만나야 하고 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윌은 교수의 뜻을 받아들여 수학 연구를 시작하고 정신과 상담도 받지만 방어기제가 심한 터라 어느 누구도 그의 철벽방어를 버텨내지 못한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는 윌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막일을 하며 지내왔고 거친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열기란 여간 쉽지 않았을 터이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대학 동기이자 심리학 교수인 옛 동료 숀을 찾아간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그의 마음을 열어 달라고 꼭 부탁을 하며.


진정한 상실감이 어떤 건지 넌 몰라. 내 눈엔 네가 지적이고 자신감 있기보다 오만에 가득한 겁쟁이 어린애로만 보여.

하지만 넌 천재야. 그건 누구도 부정 못해. 책 따위에서 뭐라든 필요 없어. 우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군지 말이야.



이것만 알아둬,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윌은 사랑하는 여자 친구 스카일라를 만나면서도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상처를 알면 그녀가 떠나갈까 봐 의지하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다. 수차례의 상담 끝에 숀은 자신의 불우했던 시절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더욱이 사랑하는 배우자를 떠나보낸 피멍까지 말이다. 숀과 윌은 같이 아픔을 공유하며 그에게 진심을 담아 전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가볍게 받아들이는 윌에게 한없이 다가가 끝까지 네 잘못이 아니라고 전해주는 진정한 스승. 숀의 진심이 전해주는 순간 아픔을 치유받고 조금씩 변화했던 그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린다. 맺혀있던 그의 앙금도 끊임없는 두드림 끝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고 끝내 봇물이 터진 것이다. 


나에게 그랬듯 우리 모두에게는 조금씩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 그 상처가 어떠한 것이든 분명 시작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이어진 것이다. 가족이기에 다 참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가족이니깐 더 이해하려 하지만 그런 점을 간과할 때가 있다. 가족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기 전 바로 가족으로부터 가장 먼저 아픔을 입을 것이다. 그 생채기가 어쨌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물고 단단해진다. 완전히 치유가 되진 않지만 흉터는 이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옅어지며 가족이라는 핏줄로 굳어져간다. 어떠한 이유든 어릴 적 받은 상처 자국은 어린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또한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이었던 부모에게도 쓰라린 아픔일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조금씩 가족에게 받은 흠집이 있다. 그것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닐 수 있다.

숀의 진심 어린 조언에 마음을 여는 윌 ⓒ영화 굿 윌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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