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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Feb 14. 2023

가정폭력에 못 견뎌 도망간 엄마가 35년 만에 나타났다

<대행사>를 보고

우아하지만 처절한 광고대행사


JTBC 토일 드라마 <대행사> VC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고아인 상무는 최초를 넘어 최고의 위치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간다. 카피를 수십만 장 써가며 야근을 하는 건 기본이고 상사를 만족시킬 때까지, 고객을 만족시킬 때까지, 그리고 자신의 높은 이상을 만족시킬 때까지 자신을 갈아 일하는 우아하지만 처절한 광고대행사 신여성이다.

경쟁이라 쓰고 전쟁이라 읽는 곳, 대행사©JTBC


하지만 최초로 여성 임원이 된 것도 회장의 손녀인 강한나를 여성 임원으로 앉히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자신은 계약직 상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 수 더 뒤를 보는 그녀는 모두가 고개를 읊조리는 그 순간에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기만 하다.



오랜만에 뵙네요


당당하고 승승장구하는 그녀에게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바로 35년 전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다. 여성 최초의 임원으로 뉴스 인터뷰까지 하고 그 장면은 자신을 일곱 살 때 버린 친모에게까지 전해진다. 자식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다시 만나고픈 친모는 청소직을 선택하지만 이내 비서에게 들키고 만다. 비서에게 무릎을 꿇으며 일주일만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친엄마.


다음 날 다 큰 딸의 사무실을 청소하다 어릴 적 건네준 팔찌를 몰래 가져가려다 딸에게 들켜버리고만 순간, "오랜만에 뵙네요. 35년 만인가요?"라 되묻는 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엄마. 어머니에 대한 결핍을 일로서 풀며 잘 나가던 커리어우먼이 엄마를 보며 분노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다는 엄마 앞에 얼굴을 내밀면서 돈 필요하다던가 신장 떼어달라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면서.


친엄마는 뒤늦게 대답한다. 무서워서 그랬다고.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던데 내 목숨보다 네가 더 소중하다 생각했는데 거기 계속 있다간 못 살 것 같아서 도망간 거라고. 딸보다 자기 자신을 더 챙긴 엄마를 용서하지 말라고.

나는 도망치지 않아.. 나는 안 도망쳐..
- 울부짖는 고아인의 목소리



그녀가 일에만 매달리는 근본적인 이유


그렇게 7살 딸을 두고 남편의 가정폭력이 무서운 엄마는 도망을 갔다. 딸을 버리고. 살아남은 딸은 사람들의 욕망을 인사이트로 읽어내며 전쟁 같은 삶을 이겨냈다. 지방대 출신 여성이자 흙수저로 업계의 최고 위치까지 올라간다. 광고주 앞에선 누구보다 당당하고 우아하지만 뒤에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다.


VC그룹 오너일가의 속이야기, 임원이 되기 위해 처절히 싸우고 물어뜯는 전쟁터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 이 드라마는 부제에 더 끌리게 된다. '잃어버린 것 잊어버리기'. 딸을 버린 엄마를 용서하지 말라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엄마도 무서웠으니깐, 딸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으니깐, 딸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가 이해가 되면서도 미치도록 증오하는 딸의 마음도 공감이 간다.


그런 친엄마의 집을 찾아가는 딸. 자신을 버렸지만 얼마나 잘 사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 밥이나 먹고 가라는 말에 어릴 적 즐겨 먹던 핑크색 소시지를 구워주는 친엄마다. 그들은 그렇게 35년 전으로 돌아간다. 나를 낳아줬지만 7살 때 버리고 간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마음의 허기는 어찌할 수 없으니까


자신이 버려진 게 믿기지 않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일로서 인정받으려 했던 한 아이. 그 아이는 잘 자라 카피라이트를 쓰는 광고인이 된다. 정점에 서기 위해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도 맞닿은 높은 유리천장을 마주하며 일터에서도 버림받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흙수저인 그녀와 경쟁하는 낙하산 재벌 3세 딸은 출생이 부러운 게 아니라 모진 일이 있어도 버리지 않은 그들의 가족이 아닐까?


초등학생이 되기 전 버려진 그녀는 어릴 적부터 시작된 눈칫밥으로 커서는 타인의 욕망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꾼이 되었고, 끊임없이 인정받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안타까운 그녀의 마음을 채울 곳은 바로 성과와 인정뿐. 그렇게 그녀는 배고픈 짐승이 되어 매 순간 기적을 만든다. 자식을 버린 엄마,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딸을 버리고 떠난 이기적인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10화의 부제는 이 상황을 단 한 줄로 요약하고 있다. '계산서는 반드시 청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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