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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윗드림 Jul 05. 2024

낀세대의 울림: 82년생 김지영 팀장님?

꼰대 vs MZ 사이에 낀 김지영 팀장님의 선택은? 

"팀장님이 대표님께서 그러라고 하셨다는데요?"

"자꾸 이러시면 저 퇴사합니다."


오랜만에 옛 직장동료를 만났다. 10년 전부터 알던 사이니깐 그 사이에 서로의 직업변화도 많이 있었고, 또 우리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체력이 딸린다는 얘기, 운동을 뭐 해야 하는지, 영양제는 뭘 먹어야 하는지, 또 옛 직장 동료들 누구는 퇴사했다, 이혼했다는 등의 얘기를 풀다 보면 어느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근데 요즘 Z세대 무섭지 않아요? 


어쩌다 중간관리자가 된 82년생 김지영은 우리들의 이야기다. 여성의 사회생활이 활발해진 만큼, 일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중간관리자가 되길 바란 것도 아닌데 나이가 있다는 이유로, 연차가 쌓였단 이유로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실적과 성과를 내라고 종용하는 상사와 더불어 세상에서 젤 다루기 힘들다는 Z세대 사이에 낀세대가 바로 '82년생 김지영 팀장'이다.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가 되었고, 엄마로 또는 커리어우먼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지영. 위로는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원래대로 라면 태어났어야 할 여동생은 여아라서 낙태당했다. 


아침에 밥 먹으라 소리치는 엄마는 아빠-아들-할머니 순으로 밥을 퍼주는 것이 당연했으며, 예전 귀하디 귀한 게 계란이었다면, 90년대는 고기반찬을 아빠와 아들 앞에 밀어주기 일쑤였다. 첫 손님은 여자는 안태운다는 택시기사의 미신에 승차거부를 당하고, 타도 "아침부터 재수 없게 안경 쓴 여자가 탔다"라는 말을 한 번쯤은 또는 같은 여자동료들로부터 들어보았다. 


상처를 꿰매고 곪은 세월이 변한 만큼, 꾸준히 일을 하다 보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계속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을까? 새로운 세대 Gen Z*가 회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SNL에서 보긴 했으나, 맑눈광의 이들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가만있지 않는다. 

Gen Z: Z세대 또는 주머스(Zoomers)로 밀레니얼 세대와 알파 세대 사이의 세대를 의미. 1990년대 중/후반생부터 2010년대 초반생까지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 초반부터 10대 시절을 보낸 세대
"왜요? 왜 그래야 하는데요? 에어팟 끼면 집중이 더 잘되어 업무효율이 높아져요." © SNL 중


내가 끼고 싶어 끼었나? 


어쨌든 자기가 지시한 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가져오라는 꼰대 상사와 그걸 왜 해야 하는지 타당한 이유나 증거가 있지 않으면 자기 일이 아니라는 Gen Z 사이에서 무엇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82년생 김지영 팀장이다. 나이도 먹고 눈도 침침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AI시대에 겨우 따라가기도 힘든데, 위에서는 뭐든 새로운 걸 가져와라, 아래에서는 못한다라는 게 팽팽하다 보니 낀 나만 찌부되기 일쑤다. M세대가 아니라 위아래로 치이는 낀세대가 된 것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Z세대는 모임이 있다, 운동하러 가야 한다, 피부과 가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칼퇴를 젤 우선시 한다. 본인은 일을 다했다고 하고 카톡이나 메신저로 던져주고 보고도 안 하고 가는데, 파일을 열어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그 상태로 위에 보고할 수 없으니, 뜯어고치고 다시 찾고 하는 건 김지영 팀장의 몫이다. 


M세대니깐요


M세대는 문제를 스스로 조용히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언제든 버거운 일이 있기 때문에 아래 직원들을 잘 다독여 일을 주려고 하다 보니, Z세대 소희 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위에서 시키는 걸 어떻게 해. 그냥 이번 한 번만 해보고 다음에는 다른 부서로 넘기던가 해볼게. 한번만 잘해봅시다. 안 그래?"이라고 잘 설득시켜서 알아들었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표님, 팀장님이 이거 대표님이 우리 팀에 그냥 막 던지셨다고 하는데요? 왜 그러세요? 저희 업무 아니잖아요? " 


당황한 김지영 팀장이,


"아.. 아니, 소희 씨 이해한 거 아녔어? 이번은 우리 팀이 하고 이거 다음에 좀 더 성과가 나면 그게 우리 팀 성과가 되니깐, 함께 해보자는 얘기였는데, 하하.."


그동안 참아왔다고 생각하던 소희 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게 다 팀장님이 계속 예스맨이니깐, 대표님이 자꾸 우리 팀만 일을 주잖아요. 팀장님도 문제예요."


'문제'라는 단어에 꽂혀서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 데, 위에서 하라는 거 다하고, Z세대들이 워라밸 챙긴다고 퇴근하면 나 혼자 어쨌든 만들어보겠다고 보고서 작성하고 야근한 게 몇 날 며칠인데, 애도 내팽개치고 일에만 몰두했는데, 억울함이 몰려온다. 


"아니 문제라고?"


소희 씨는 당황하지 않고 그동안 참아왔는지 한꺼번에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쏟아낸다. 


"팀장님이 그동안 너무 예스맨이니깐 대표님이 부당한 지시 해도 가만있으신 거 아녜요. 그게 다 우리 팀에 영향을 미치는 거잖아요. 그렇다고 성과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성과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 하시는 거예요?"


억울함이 밀려오고 갑자기 눈물이 나려는 걸 '나는 팀장이니까.'라는 생각에 겨우 삼켰다. 


내가 꼰대인가? 


김지영 팀장은 집으로 가는 길이 편하지 않았다. '내가 예스맨이라고? 우리 팀을 위해서 그런 건데, 잘되어야지 나도 팀장으로서 성과급도 요구하고 그럴 수 있을 거 아냐. 아니 본인은 여행 간다고 연가 3일 몰아서 쓰고, 워라밸 챙긴다고 탄력근무제도 하고, 매일 5시면 나갔는데 말이야."


억울한 마음을 달래다 보니 김팀장은 본인이 꼰대이지 않은가? 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10년 전부터 보고 배운 게 복종하고 어쨌든 만들어내는 문화여서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가 되었나? 


제가 끼고 싶어 끼었나요? 


김팀장도 끼고 싶지 않았다. 급성장하던 아버지 시절을 벗어나 이제 저성장 시대다 보니, 사회적 관념에서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는데 치솟는 물가에, 또 애만 보면 경력단절이 될까 봐 회사에서는 팀장으로, 집에서는 엄마로 겨우 겨우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데, 또 다른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직면했다. 나도 끼고 싶어 꼈나요? 


낀세대는 그저 조용히 울고 있다. 그래도 상사이며, 나보다 경력이 많고 경험이 많으며 내 성과 결정권을 가진 꼰대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건 분명한데, 나와 내 상사가 직장 생활 해 왔던 방식을 깡그리 통째로 바꾸려는 Gen Z를 만나니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82년생 김지영 팀장에게는 세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 번째로 어쨌든 꼰대 상사가 시킨 건 해야 하니깐, 나 혼자 밤을 새워서라도 조금은 더디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들이내밀어 보고하는 것, 두 번째로는 소희 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최소한으로 일하고 내 워라밸과 가정을 지키는 것, 세 번째로는 나와 맞지 않고 너무 극단적인 소희 씨를 다른 팀으로 바꿔달라고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과도기다. 


10년 후가 된다면? 


10년 후엔 김지영 팀장은 승진을 하거나 퇴사를 할 것이다. 빠르게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명예퇴직을 당할 수도 있고, 또는 '그래! 이게 창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라는 생각에 가슴에만 품고 있던 사직서를 꺼내고 퇴직금을 모아 작은 카페 사장으로 창업할 수도 있다. 10년 후에도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수많은 회사들은 여전히 구인란에 허덕일 테고, 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바뀐 만큼, 그대로 나이를 먹고 새로운 변화에 혼돈스러워할 것이다. 


Gen Z 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독일의 노동쟁의권처럼 투쟁하고, 어떻게든 바꾼 문화를 이룰 수 있을까? 노동권이 보장된다면 회사의 성장은 어찌 이뤄질 수 있을까? 팀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워라밸 챙기고 싶은데 회사 KPI도 생각해야지, 우리 집 애들과 회사 애들 걱정도 해야지, 또 월급값도 해야지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에 1 on 1 미팅도 제안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며 소통하고 협력하려 했는데, 면담을 하면 할수록 답답한 평행선이 유지된다. 이 나이에 직장을 옮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월급을 포기하고 갈 수도 없고, 82년생 김지영 팀장의 삶은 갈수록 고되기만 하다. 

두 손 두 발 다 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딜레마에 머리가 아프다 © Jackson Simmer,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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