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가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라
큰 기대 없이 넷플릭스에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를 보았는데,
젊은 시절의 메릴 스트립과 더스틴 호프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몰입하게 되었다.
대부에서 처음 알 파치노를 본 느낌이랑 비슷했다.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엄마(메릴 스트립)가 집을 떠나고 몇 달쯤 지난 뒤
아빠와 아들이 아침에 기상하는 장면이다.
이 둘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뚱한 표정으로 차례로 화장실을 다녀오고, 아침밥을 준비해서 챙겨 먹는다.
(우선 이 둘.. 너무 사랑스럽다..)
이 모든 시퀀스가 진행되는 동안 둘은 살갑게 눈을 마주치지도, 일언의 대화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 한마디 없이 착착 진행되는 이 아침 일상을 통해, 이 둘의 관계가 그동안 얼마나 견고해졌는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영화 중반부 이후, 법원에서 부인과 양육권 다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아빠 편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도 앞서 보았던 두 사람의 일상 덕분이었을 것이다.
결국 법원은 모성애에 손을 들어준다.
그 순간 아차 싶었다.
영화 제목처럼 아이를 가운데 두고 엄마냐 아빠냐로 감정이입하고 있던 내가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 때 깨달았다.
양육은 서로 다른 형태의 사랑을 가진 엄마와 아빠 모두의 노력이며,
결국 한쪽이 부재하더라도 양육이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부부로선 상대방의 헌신을 인정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의 헌신이 그저 다른 형태의 사랑일뿐
더 좋은 사랑이나 나쁜 사랑은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