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유한함 속에서 무한한 가치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의 역설적인 위대함

by 에메이티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592443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qRratE2AwaCgrfIdAky7GthMjXk%3D 최애 동네 도서관


전도유망한 스탠퍼드 의과대학의 신경외과 레지던트이자 과학자였던 이 책의 주인공 및 저자인 폴은 어느 날 폐암에 걸렸고, 제삼자로서 수술 집도 또는 연구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환자 당사자가 된다. 암환자가 되어서도 의사와 환자 사이 어디쯤에서 방황한다. 의사로서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숙명적 태도, 그리고 환자로서 여생을 실감할 수 없어 남은 날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마음이 모두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인간은 결국 죽기 때문에 불완전한 존재’라는 익숙한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죽지 않는다면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100세까지 장수를 하는 사람은 이른 나이에 단명한 사람보다 더 완전하다 할 수 있을까? 삶의 길이로 인간을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금세 깨닫는다. 결국 모든 인간은 죽기 때문이다.


폴은 암 진단을 받은 초기에 자신의 담당의가 카플란마이어 생존곡선에 의거하여 본인의 생존확률 또는 생존기간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는 것에 궁금증을 갖는다. 궁금증보다는 자신의 살 날을 정확히 셀 수 없음에 불만이었던 것 같다.


결국 암세포를 이겨내지 못한 폴은 세상을 떠나고 미완의 책이 출판되었다. 책 말미에 이르러서 아내가 남긴 짧은 글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이 미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내가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부족한 부분이 없는 완성된 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겐).


인간 또한 죽음이라는 유한성 앞에서 미완의 존재이지만, 유한한 삶 속 역설적이게도 무한한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책의 저자 폴이 바로 그러한 삶을 몸소 실천하였다. 삶의 의미는 살아갈 날이 얼마나 긴가, 즉 생존 기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기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세에서 비롯된다. 시한부 인생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전제되어야만 가치 찾기에 몰두할 것인가? 이 책을 읽지 않은 누구라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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