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멀리쟁이

별명에 대하여

by 감자

나는 한글을 만화로 배웠다. 공부라면 질색을 하고 일곱 살까지는 이름 쓰는 것도 틀렸다. 눈높이 학습지를 했는데 그마저도 어렵고 재미가 없다며 두 달 만에 그만뒀다.


만화방을 하는 부모님은 애가 만화를 볼 때는 집중해서 보고 한글도 뜨문뜨문 읽고 하니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하셨다. 그렇게 ‘짱구는 못 말려’, ‘날아라 슈퍼보드’, ‘드래곤 볼’ 같은 것을 보면서 조막만 한 가슴은 상상력과 모험심으로 가득 찼다.


처음 만난 또래 친구들 집에도 곧잘 가서 놀고, 다시 작은 발걸음으로 30분은 걸어야 하는 친구들 집에도 다녀왔다. 6살 무렵 아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어제 자기 집에 놀러 왔는데, 저 멀리 사는 다른 친구 집에도 놀러 갔었다니 놀라울 수밖에. 그렇게 만들어진 별명이 ‘멀리멀리쟁이’였다.


하루는 또래 여자애들을 만났다. 둘은 자매였고 자연스럽게 그 친구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천정에서 떨어진 샹들리에가 있었는데 몇 개 떼어다가 물방울 다이아몬드라며 가지고 놀았다.


지금 생각하면 샹들리에가 뭔지 모르는 아이들이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안다는 게 더 신기하지만, 그땐 그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다가, 귀가한 친구의 부모님을 보며 그제야 엄마 생각이 났다.


돌아오는 길을 몰랐던 나는 양손에 두 자매의 손을 꼭 쥐고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호주머니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로 두툼했고, 이거면 문방구에서 좋아하는 500원짜리 조립을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두근거렸다.


최신 동요를 세 곡쯤 불렀을까. 집 앞에 도착하니 엄마가 쭈그려 앉아 있었고, 양쪽에 경찰 아저씨들이 서 있었다. ‘내 다이아몬드 때문에 엄마가 잡혀가는 건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껴안고 펑펑 울더니,


“이놈의 손!”하며 궁둥이를 때려댔다.


경찰 아저씨들은 우리를 그냥 두고 갔다. 굳어있던 친구들도 눈치껏 ‘얼음 땡’을 마쳤다.


세월이 멀리멀리 흘렀지만, 지금도 엄마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그때의 안도감과 자책이 남아있다.


“니 기억나나? 아니 6살짜리가 해가 지도록 안 들어오고 사라져가 큰일 났다 싶어서 펑펑 울면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저 멀리서 여자애 둘 손을 잡고 신나가 온다 아이가. 기가 차기도 하고 안도감도 들고 펑펑 울었지.”


“기억난다. 이노무손! 이노무손!”


엄마의 걱정을 먹고 자란 철부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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