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제7화 김헌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경찰인재개발원(과거 경찰종합학교)은 경찰 공무원과 경찰간부 후보생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김헌기가 경찰종합학교 교무과장으로 온 것은 2007년 7월이다. 송도 모 초등학교 유괴사건이 일어난 지 몇 달 후였다.
대전서부서장을 하고 있어야 할 황운하 선배(경찰대 1기)가 이미 총무과장으로 와 있었다. 당시 이택순 경찰청장이 황운하를 소위 날려버린 것이다.
황운하 총무과장은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업무를 포기한 듯 보였는데 그럴 만도 했다. 김헌기가 교무과장으로 왔을 때 경찰청이 황운하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황운하가 이택순 청장 퇴진 요구 글을 경찰청 게시판에 올렸기 때문이다.
사건 발단은 이렇다.
송도초등학교 유괴사건이 벌어진 2007년 3월,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이 아들을 폭행한 술집 종업원을 보복 폭행한 사건도 벌어졌다.
폭행이 벌어진 날 112 신고가 접수돼 남대문 경찰서에서 출동하자 한화건설 고문이면서 전 경찰청장인 최기문은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당시 경찰청장 이택순이 개입했는지 여부였다.
이택순은 결백을 주장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카드를 꺼낸다. 2007년 5월 경찰청 게시판에는 이택순 청장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다.
퇴진 요구는 황운하만이 아니었다. 전국지휘관 회의에서 고위간부(치안감) 다섯 명이 이택순에게 청장 사퇴를 건의했다.
그중 한 명이 당시 경찰종합학교장이던 김석기다. 이택순은 황운하를 징계한 것처럼 그들도 가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김석기는 더 이상 좌천될 자리가 없었다.
김헌기는 이런 유배지 같은 직장 분위기 속에서도 업무를 챙기기 시작했다. 김헌기 과장이 맨 처음 한 일은 교수 '군기잡기'다. 형식적으로 진행하던 교수평가제를 매달 진행했다. 하위 점수를 받은 교수는 학교장 앞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했다.
인자한 미소를 띠는 김석기 학교장 옆에서 김헌기는 허리 꼿꼿한 자세로 앉아 뚫어지게 교수들을 쳐다보며 설명을 들었다. 게다가 김헌기 과장은 직접 형사들 수업시간에 들어갔다.
송도초등학교 어린이 유괴사건에서 경찰이 수사지휘를 잘못한 부분도 수업 시간에 짚었다. 자신과 관련된 내부 치부를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당시 범인을 잡은 형사에게도 전화했다.
이 형사는 아직도 그때 일을 기억했다.
“그때 김헌기 과장님이 신임 형사 교육에 인질사건 교육을 넣어야겠다면서 와서 교육시키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큰 유괴나 인질 사건에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면서.”
이 형사는 현재 인천 일선 경찰서 형사과장이다. 그런데 그는 경찰이 이 사건에서 엉터리였다고 여기는 김헌기와 생각이 달랐다.
"당시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 범인이 공중전화로 전화할지 모르니까 길거리에서 빵과 김밥 먹으면서 3~4일 동안 잠 한 숨 안 자면서 움직였어요. 지금처럼 실시간 위치 추적하는 것도 아닌데 범인을 사흘 만에 잡은 것은 엄청 빨리 해결했다고 생각해요."
당시는 CCTV가 드물었고 실시간 위치추적 시스템은 없었다. 유괴범은 첫날 아이를 죽이고 공중전화로 녹음기를 틀어 아이 목소리를 들려줬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아이는 이미 죽었다. 경찰 잘못으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 당시 범인을 잡은 형사 시각에서 2007년 3월 송도초등학교 어린이 유괴사건을 살펴보자.
<영화 그놈 목소리 2007년>
“이형호 어린이 유괴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가 2007년 2월 1일에 나왔어요. 그런데 그 유괴범이 공중전화로 똑같이 흉내 냈어요. 공중전화 추적시스템을 설명하면... 유괴범이 공중전화로 전화를 해요. 그때 감청 중이니 전화국에 번호가 뜨지요. 그러면 그 전화번호를 형사지원팀에 무전으로 불러줘요. 그럼 어느 공중전화인지 다 나와요. 해당 공중전화 담당 형사를 보내지요. 유괴범은 인천, 부천, 시흥 등을 옮겨 다니면서 전화했어요. 유괴범이 돈가방을 어디로 들고 오라고 해서 가면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다른 부서 경찰들이 나타났지요. 당시 인천 경찰을 대부분 동원해서 모두 무전기를 듣고 있으니 다른 과에서 특진 욕심에 덤벼들곤 했지요. 결국 유괴범을 잡은 결정적 단서는 7차 협박 전화였어요. 그곳은 당시 김헌기 수사과장님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였는데 제가 거기 공중전화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다 회수했고 그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담배를 산 사람과 인상착의 등을 물었지요. 슈퍼 주인이 알려준 단서를 김헌기 수사과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김헌기는 처지에 따라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관리하는 쪽에서 이 사건을 보는 것이고 형사들은 추적하는 처지에서 고생한 게 가장 크겠지요."
그럼에도 김헌기는 송도초등학교 유괴사건 수사를 '쪽팔리다'며 박하게 평가했다. 그리고 수사본부에서 감청을 들으면서 유괴범 전화가 걸려오면 즉시 현장에 무전을 치면서 '개지랄' 떨었던 사흘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모두 16번에 걸친 협박 전화에도 범인을 빨리 잡지 못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간 경찰은 개인역량에 좌우되는 조직이었다. 그러다보니 경험을 쌓기가 힘들고 평상시 실전형 현장 훈련, 즉 FTX(Field Traning Exercise)가 부재했던 것이다.
유괴사건은 매우 드물게 발생하지만 사회적 여파는 매우 크다. 그런데 경찰이 평상시에 이러한 사건을 가정하여 훈련을 받은 게 없다. 협박전화는 감청을 통해서 추적해야 한다.
감청영장을 받아와서 전화국에다가 감청기 설치하고 들어야 발신지를 추적할 수 있다. 감청영장은 신청 상황은 너무 급하기 때문에 재빨리 내준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요?"
영장 갖고 집행을 하니 엉뚱한 전화국이었다. 그래서 재영장신청을 해야 했다. 범인은 당시 공중전화를 이용했다. 범인이 어느 공중전화를 이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당시 수사본부는 자료에 근거해서 인천 전 지역 공중전화에 경찰들을 잠복시켰다.
한 전철역 광장에 설치된 공중전화는 열 개인데 형사 10명이 배치됐다. 그런데 그 공중전화는 나란히 붙어 있는 상태였다.
공중전화가 이미 없어진 곳에도 형사는 배치됐다. 수사본부에서는 전화가 오면 감청을 해서 들었다. 번호가 뜨면 빨리 인상착의를 파악하라고 지시하려고 공중전화 담당 직원에게 무전을 친다. 무전을 받은 담당 직원은 밥 먹는 중이라고 보고했다.
범인은 계속 돈을 요구하는 전화를 했다. 한 지역 공영주차장에 현금을 갖다 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찰이 따라붙으면 애를 죽이겠다고 경고했다.
수사본부는 형사를 택시기사로 변장시켰다. 택시 뒷좌석에도 형사가 드러누웠다. 피해자는 돈가방을 들고 접선지로 갔다. 나머지 경찰은 범인이 접근했다 도망갈 길목에 배치했다.
그런데 그곳을 지켜야 할 경찰들이 특진 욕심에 모두 공영주차장으로 몰려왔다. 김헌기 수사과장은 무전기에 대고 소리 질렀다.
"지금 뭐하는 거야! 빨리 원위치!"
유괴범은 사흘 만에 잡혔지만 이 모든 수사 과정은 김헌기 가슴에 시리게 남았다. 유괴사건, 인질 사건이 발생하면 아주 뛰어난 형사가 해결하면 다행이나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여파가 너무 크다.
협상 요원이 있다면 유괴범이 전화할 때 옆에서 피해자에게 메모를 건네서 코치할 수 있다. 그런 시스템 필요성은 같은 시공간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랐다.
정신적 문제, 사회 불만, 충동 범죄, 보복 범죄 등 다양한 원인으로 형사 인질사건이 벌어졌다. 이런 사건들은 지역별로 빈번하게 벌어졌고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도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가는 남성이 담배 피며 욕설을 내뱉는 고등학생 머리를 툭 쳤다가 폭행죄로 불구속 입건되는 현실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질극이 제대로 벌어지면서 장시간 대치하는 상황이 생기고 언론사가 몰려와 취재하면서 인질 대응 필요성이 부각됐다. 대표적인 게 2010년 7월 24일 서울 중랑구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결혼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인질로 붙잡은 사건이다. 여자 친구 어머니는 흉기로 살해됐기에 사회적 여파가 컸다.
인질 대응 기구는 2014년 구체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체계 구축을 밀어붙일 지휘관도 나타났다. 바로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현 형사과장) 김헌기다.
강력범죄, 폭력, 마약, 조직 관련 업무를 총괄하며 소관업무와 관련된 기사들을 예의 주시한다. 그 해 1월 23일 부정 승차하는 20대를 붙잡은 교사가 폭행 혐의로 체포되는 기사가 나왔다. 경찰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이런 크고 작은 폭행뉴스들은 그 해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에 침몰당한다. 바로 유병언 추적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는 비상시국으로 전환됐다. 김헌기 과장이 있는 강력범죄수사과는 주무부서였다.
2014년 7월 21일 저녁 김헌기 과장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다. 국과수 원장 서중석이었다.
6월 12일 전남 송치재 휴게소 인근 매실밭에서 심하게 부패된 시신이 발견됐는데, 서중석 원장은 이 변사체 유전자를 검사하니 유병언 씨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 당연히 경찰청 보고는 없었다.
김헌기와 서중석 사이에 DNA 결과를 보완할 수 있는 자료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후 40일이 지난 7월 23일 DNA 확인을 거치고 유병언 시신으로 확정된다.
그때서야 검찰은 경찰과 정보공유를 하지 않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수사과정에서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지휘관인 본인 책임”이라며 최재경 인천지검장에 이어 이성한 경찰청장도 부실 수사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14년은 김헌기가 경무원 승진을 도전하는 해였다. 얼마 후 민정수석실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검증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려온 모양이다.
“김헌기 씨가 유병언 변사처리 업무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그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성한 경찰청장이 그 책임을 지고 나갔지 않습니까?”
김헌기는 그에 견줄 만한 업무성과를 내세웠다. 특히 정당행위 체크리스트를 강조했다.
학생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어깨나 머리를 툭 친 것도 그간 폭행 혐의로 입건할 수 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진단서까지 제출하는 상황에서 형사 개인이 법리적 반박과 더불어 커지는 수사 범위와 민원을 감당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는 분명 사회통념에 배치되는 결과다. 경찰청 강력범죄수사과장인 김헌기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풀고자 전문가를 모았다. 판례를 모두 뒤져서 정당행위 판단 항목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마침내 ‘정당행위 검토서’ 체크리스트가 완성됐다. 사건이 벌어지면 각 경찰서 형사과장이 위원회를 열어 정당행위 판단 항목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검찰에 송치하도록 했다.
김헌기는 그동안 업무성과로도 승진을 자신했지만 확실한 굳히기가 필요했다.
2014년 12월 4일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산 등산로에서 한 등산객이 토막 난 시신이 담긴 비닐봉지를 발견했다. 경기지방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차렸으나 일주일 동안 수사는 제자리걸음이었다.
김헌기 과장은 범인 잡을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뭔가 딱 떠올랐다.
김헌기는 11일 출근과 동시에 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승인이 떨어지자 경찰 신고포상금 최고액 5000만 원을 언론에 알렸다. 범인은 12시간 만에 잡혔다.
당시 대다수 언론은 공개수사 전환을 ‘신의 한 수’라고 극찬했다. 김헌기 경무관 승진 인사 3일 전이었다. (끝)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제1부는 여기서 마칩니다. 2부는 2020년 가을에.)
김헌기의 수사인생매뉴얼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