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1년 부산지방경찰청에 가장 큰 현안은 '희망버스' 집회였다.
집회 날짜는 예고돼 있고 그에 맞춰서 각 기능은 대책을 수립했다. 잘못된 언론 보도에 대응하는 게 홍보 업무 가운데 핵심이다.
부산경찰청에 출입하는 기자들과 유대 관계만 신경 쓰면 충분했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홍보담당관실은 SNS 환경을 반영해 희망버스 여론 대응 계획을 만들었다.
2011년 6월부터 희망버스 집회가 열렸다.
경찰 처지에서 1차 시위는 허를 찔렸다고 볼 수 있다. 희망버스 시위대가 군함을 건조하는 ‘가’급 국가 중요시설인 한진중공업 사다리를 타고 담장을 넘어 침입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법원에서 외부인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이 났고 한진중공업 경비가 강화됐다.
1차 희망버스 집회가 끝나고 바로 2차 집회가 예고됐다. 2차는 가장 대규모 인원이 참가할 것이라는 정보가 잡혔다. 일부 정치인도 가세한다고 했다.
시위대는 SNS를 통해서 집회 참가자 모집, 경찰력 배치, 영도조선소 진입을 위한 해상침투 등 각종 정보를 퍼트렸다.
경찰로서는 온라인 모니터링과 대응이 더욱 중요해졌다. 희망버스 시위 당시 아침·저녁으로 청장과 차장 주재 대책회의가 진행됐다.
본청도 1차에 영도조선소가 뚫리고 대규모 2차 집회가 진행되면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경찰청장 조현오는 화상 간부회의에서 여론대응팀 가동을 주문했다.
고학성은 조현오 지시 이후 부산지방경찰청 창설 이후 전무후무한 여론 대응 계획을 수립했다고 했다. 온라인 TF(태스크포스) 팀이 만들어진 것이다.
법정에서 검찰이 TF팀 창설을 지시한 자를 묻자 고학성은 분명하게 답했다.
"부산청장 지시를 받았어예."
희망버스 집회 전날 부산청은 온라인 TF팀 직원 37명에게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홍보담당관실 직원이 TF팀 직원에게 트위터 계정 생성부터 리트윗 등 기초를 가르쳤다. 온라인 활동은 집회가 시작된 토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1박 2일 동안 진행됐다.
부산청 언론대응 TF팀 37명은 한 곳에 모여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먼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 직원은 대형 스크린에 이슈를 띄워 대응을 지시했다.
이를테면 '최루액이 발암물질이다'라는 이슈에 대해 경찰은 '거짓말', '시위대 불법행위' 등 대응 방향을 정해 실행했다.
30여 명이 한 강당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여론 흐름을 좌지우지한 것처럼 보인다.
희망버스 10월 8일 부산에서 열린 5차 집회로 막을 내렸다.
세가 약해지기까지 온라인 여론 대응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결과보고서가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본청으로 쭉쭉 올라갔다.
2011년 부산청은 성과평가 '최상위'를 받았다.
홍보담당관 고학성은 무조건 조현오 지시 때문에 비공식 댓글 활동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은 부산지방경찰청에는 이러한 SNS 대응 경험과 역량이 오래전부터 축적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증거로 2010년 2월 부산에서 발생한 김길태 여중생 살인 사건 자료를 제시했다.
당시 온라인에 김길태 팬카페가 생기고 김길태 영웅화, 김길태 음모론 등 기가 막힌 내용들이 퍼졌다.
부산경찰청은 자체적으로 댓글 대응을 포함한 사이버 대응을 하여 김길태 카페를 폐쇄 조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호인이 ‘부산경찰의 힘’을 내세운 반면, 검찰은 더 강한 자료를 증거를 내밀었다.
희망버스 집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청 주재로 워크숍이 열렸다. 워크숍에서 오고 간 말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문건에는 조현오 경찰청장은 부산 순경 권창훈(가명)에게 '비공식 대응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나온다. 이는 명백한 증거다.
왜 조현오는 권창훈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이 사건은 이미 10년 전 일을 파헤친 것이다.
조현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권창훈은 어떨까.
법정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저는 그때 스테이크 먹은 기억밖에 안 나예. 그 문건의 발언 내용을 봤을 때는 다 사실인데 청장님이 밑에 전국 직원 다 불러놓고 '야 댓글 달아라' 이렇게 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문건 내용을 따라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 보자.
권창훈 순경은 희망버스 집회 당시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근무했다.
당시는 트위터가 유행이었다.
집회 담당 경찰도 트위터 앱을 설치하여 '버스' 단어를 실시간 검색했다. 뭐라고 경찰을 욕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초상권 인식이 낮았다.
시위대는 경찰들 사진을 찍어 그대로 트위터에 올렸다. 동료 경찰관들은 트위터에 서로 얼굴이 나왔다면서 알려주었다.
그러다 보니 권창훈도 트위터가 능숙해졌다.
그는 희망버스 집회가 끝나고 나서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에서 전화를 받는다.
“SNS가 유행이라서 한 자리 생겼다”
대체 권창훈에게 행운처럼 굴러온 ‘한 자리’는 무엇인가?
당시 경찰청은 비난 여론 대응 방식 변화를 모색했다.
경찰청은 유행하던 온라인 미디어 <위키트리>에 눈을 돌린다. <위키트리>는 SNS를 중심으로 뉴스 아이템을 발굴해 이용자들과 함께 뉴스를 생산·편집하는 서비스다.
경찰청은 공식 대응을 강화하는 '온라인 소통계'를 2011년 10월 신설한다.
경찰청 온라인 소통계 직원들이 기자처럼 소속을 밝혀 글을 쓰는 것이다. 이렇게 생산한 글을 트위터가 퍼트리면 된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생겼다.
경찰청이나 지방청 공식 트위터 팔로워 수가 많지 않아 확산력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홍보를 하면 팔로워 수가 늘어날 것이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확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트위터를 하는 젊은 경찰을 대상으로 '온라인 커뮤니케이터'를 모집했다. 이미 부산청도 '온라인 커뮤니케이터'를 선발했다. 그중 한 명이 권창훈(가명)이다.
2011년 11월 22일 전국 '온라인 커뮤니케이터'가 참석하는 창설 기념행사가 열린다는 공문이 부산청에 왔다.
그 자리에서 청장 발언이 끝나면 한 명씩 발언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은 워크숍에서 직원들이 돌출 발언을 하지 않도록 단도리했다.
경찰청장 앞에서 어떤 질문을 한 것인지 미리 연습해 발언하도록 했다.
당시 부산청 홍보담당관실은 권창훈에게 다음과 같은 건의를 청장에게 하도록 연습시켰다.
"웬만하면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도 좋지만 비공식적 대응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 직원들은 권창훈에게 이런 말을 하게 했을까?
권창훈은 이렇게 말했다.
"가서 우리 잘했다고 어필하고 온나."
권창훈이 비공식 대응 필요성을 제기한 배경이다.
문서에는 조현오가 이렇게 답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웬만하면 신분을 밝히고 대응하는 것이 좋지만 비공식적 대응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조현오가 씩씩한 순경에게 무안을 주지 않으려고 애써 부드럽게 돌려서 한 말이라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다.
조현오가 청장 시절 이런 조직을 만들어 비공식적이고 조직적인 댓글과 트위터 활동으로 온라인 여론이 형성되는 장을 파괴한 게 핵심이다.
권창훈은 법정에서 발언 기회를 요청했다. 권 씨는 지난 10년 동안 느낀 점을 털어놨다.
"저희 내부 분위기가 말이 ‘조직적’이지, 그냥 요만한 것(작은 것)을 이만하다고(크게) 보고도 많이 하거든예."
권창훈이 말한 대로면 당시 부산청 언론대응 TF팀 37명이 한 곳에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대응하여 여론 흐름을 주도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과장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당일 트위터 계정을 만들고 사용법을 익혔다. 즉 30명 대부분 팔로우가 없는 알 계정인 것이다. 트위터에 글을 쓴다고 리트윗 할 팔로워가 없다.
그래서 부산청 홍보팀장은 목표를 이렇게 설정했다.
"그 당시 저희가 했던 것은 트위터에 '희망버스'로 검색하면 그 글이 올라가는 정도만..."
하지만 거친 표현이 들어간 글들이 문제가 된다.
홍보실 직원은 당시 홍보담당관 고학성이 "트위터에 좌측 세력이 너무 많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했다.
게다가 고학성이 당시 여론 대응 TF팀에게 '더 세게'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진술이 나왔다.
고학성이 법정에서 기억에 없다고 할수록 '더 세게'라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이 쏟아졌다.
-변호인:.... 온라인 TF 경찰관들에게 “더 세게, 더 세게”라고 하면서....
-재판장: 증인이 더 세게 더 세게 했다는 거 맞아요?
-변호인: 정보화교육장에 가서 더 세게 더 세게 표현하라는 식으로....
-재판장: 그렇게 한 것 맞아요? 더 세게 더 세게?
-변호인: 증인이 강하게! 더 세게! 계속 ............
고학성이 저항할수록 재판장과 변호인은 계속 “더 세게 더 세게”라고 밀어붙였다.
법정이라는 이 고립된 공간은 어느새 <브로크백 마운튼>(이안 감독)을 떠올리게 만든다.
에니스 델마(히스 레저)와 잭 트위스트(제이크 질레할) 못지않게 고학성 또한 가혹한 현실을 견디고 있었다.
반면 ‘보안 댓글’ 수사는 영화 <에어리언 대 프레데터>에 비유할 수 있겠다.
보안 분야 댓글은 범죄 댓글 중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내용은 가장 심각했다. 당연히 조현오 시절 보안국장이 줄줄이 조사받았다.
조현오 시절 마지막 보안국장은 김용판(2012년)이다.
2018년 8월 19일 <한겨레>가 또 단독 보도를 했다.
김용판 “조현오 전 경찰청장 댓글 지시 위법하다 판단”
기사 내용을 보면 김용판은 경찰 조사에서 조현오가 댓글 작성을 지시한 사실은 있지만 위법하다고 판단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현오를 피의자로 입건하는 결정적 한 방이었다.
그러나 김용판은 6년 동안 댓글 위법성에 침묵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프레데터 은신(clocking) 능력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산성 피를 쏟아낸 것은 조현오가 아닌, 바로 검찰이었다.
(다음 제6화. 오! 용판)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강원도의 힘>에서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