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경찰을 취재한 시기는 2013년쯤이다.
처음 취재 방향을 정하기 전까지 온라인에서 경찰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정보를 쌓기 시작했다.
경찰 조직에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언론이 말을 옮긴 경찰부터 접촉하게 된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가장 유명한 것은 조현오 청장이었지만 조현오는 관심 밖 인물이었다. 언론이 전하는 인상도 대부분 좋지 않았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진압하면서 몽둥이로 노동자를 두들기는 장면에서 앞뒤 맥락이 어떻든 무슨 상관인가.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인 조현오는 그런 사람이었다.
진보언론이 다룬 기사도 한몫했다.
채수창이 성과주의를 비판한 기자회견을 비롯해 2009년부터 경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징계를 받은 경찰들 사연을 내보냈다.
대부분 징계받은 시기와 관할을 따지지도 않고 원인으로 조현오를 지목했다.
오히려 자기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활동하는 다른 경찰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에게는 나름 글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1980년대 군사정권 후 사회 분위기가 민주적으로 바뀌면서 언론자유도 한결 보장받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타고 경찰을 향해 갑질하는 기자들이 허위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인터넷이 발달하는 1998년부터 허위 기사에 반박하는 글을 올리는 경찰이 전국에서 등장한다.
그중에 내가 만난 이가 경찰 황운하, 황정인 등이다. 취재란 늘 그렇듯이 온라인에서 모은 풍문과 어설픈 추측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황운하는 2013년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경무관이었다. 경무관 계급정년은 6년이며, 통상 4년 이내에 치안감 승진을 노린다.
당시 황운하는 경무관 2년 차로 수사연수원장이었고 아직 망한 단계가 아닌 만큼 절실함도 없었다.
주변에 언론계 인맥이 풍부해 굳이 나와 작업할 이유도 없었다.
필자는 보기에는 아주 외향적이고 밝은 성격 같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아주 슬프고 우울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고 서운함을 느꼈다.
두 번째로 황정인을 만났을 때 경찰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더 관심이 갔다.
내부통신망에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징계를 당하자 ‘표적 감찰’을 주장하던 경찰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황정인도 거침없이 상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황정인은 자기도 허위사실이나 명예훼손에 걸리는지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고 했다.
황정인 글 쓰기 비법은 양극단을 짚는 것이다.
황정인이 조현오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조현오 청장이 헌법정신을 중시 여긴다’는 점을 드높이면서 시작한다. 비판에 칭찬을 덧붙인다는 것이다.
그에게 조현오가 진짜 헌법정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국관회의에서 헌법 준수를 자주 강조한다고 했다.
이런 황정인도 감찰을 받을 뻔했다.
2011년 6월 8일 반값 등록금 집회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경찰청 수사구조개혁 팀장이었다. 물론 그는 징계를 피했다.
황정인 말을 그대로 옮긴다.
황정인이 블로그에 쓴 글은 많은 언론이 인용했다. 오전 국관회의에 참석했는데 감찰부서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쫄면서 앉아 있는데 조현오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더니 황정인부터 찾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글 썼던데!”
이 한마디로 감찰은 없던 일이 됐다. 황정인은 조현오 카리스마를 직접 겪었다.
황정인과 대화하면서 조현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상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른다는 것을 확인할 때 관심은 높아지는 법이다. 언론이 띄운 인물을 만나고 나니 취재 대상이 확고하게 정해졌다.
바로 조현오 전 청장이다.
조현오는 2012년 4월 5일 퇴직했다. 2013년 가을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으로 구속된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에게 황정인 씨 덕에 호감을 얻게 됐다고 털어놨다.
만날 일이 없다던 황운하는 그 후로 해마다 만났다.
경무관 4년 차이던 2015년에 우연히 만났다. 당시 대전지방경찰청 부장이었다. 여전히 승진 희망이 있었는지 절실함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헤어질 때 황운하는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황운하는 2016년 경무관 5년 차에 경찰대 교수부장으로 갔다. 그때부터 위로를 빙자한 밥과 술로 자주 접촉했다.
그때 필자가 쓴 글이 바로 <풍운아 황운하>다.
일 년 후 경찰 조직을 나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자 지나간 경찰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쓰고 싶다며 필자에게 상담했다. 나 또한 조직에서 망해가는 황운하를 위로해주고 싶어 시작된 글 작업이었다.
어쩌다가 황운하가 이렇게 추락하게 됐을까?
황운하를 처음 중용한 경찰청장은 허준영이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이다.
총경이던 황운하를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수사구조개혁팀 계장은 민갑룡이었다. 경찰 측 자문 위원 중에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있었다.
이후 황운하를 중용한 이가 조현오다. 2011년 경무관으로 승진을 시켜 경찰청 수사기획관으로 내정했다.
조현오가 물러나자 박근혜 정부에서 황운하는 수사와 관련 없는 부서를 떠돌았고 권력형 수사는 막힌다. 더불어 인사도 망가졌다.
황운하는 탄식하곤 했다.
“조 청장님이었다면 이렇게 조직이 망가지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됐다. 경찰 수사권 조정에 유리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황운하는 치안감으로 승진하며 울산지방경찰청장으로 부임한다.
민갑룡은 민정수석 조국이 강력하게 추천해 경찰청장이 됐다.
(☞조국과 친분 묻자… 민갑룡 “청문회에서 말하겠다”)
적폐 청산은 국정과제였다. 민정수석 조국은 적폐 청산 콘트롤 타워를 자처했다.
2018년 봄, 경찰청에 댓글 관련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경찰 조직 안에서는 이 수사를 곱지 않게 보는 눈이 있었다. 하지만 적폐 청산 명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울산지방청장 황운하에게 나는 민감한 부분을 대놓고 찔렀다. 감정이 폭발하면서 우리 관계는 그렇게 끝났다.
물론 경찰청 내부망에 자신을 드러내고 비판한 경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조현오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경찰 댓글 특별수사팀은 이 글을 조현오 구속영장 청구 명분으로 활용했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조현오가 친한 경찰을 동원해 조직 내 여론 조작을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오는 2018년 10월 5일 구속됐다.
구속 기간 경찰청 국정감사가 열렸다. 경찰청장 민갑룡을 향한 국회의원 질문이 쏟아졌다.
야당 소식인 윤재옥 의원이 물었다.
윤재옥 위원: “청장으로서 전직 경찰총수를 경찰이 수사해서 최초로 구속시킨 사건이라고 보도됐는데 소회나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경찰청장 민갑룡: “법과 원칙에 따라 행위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고 처리해나가겠습니다.”
이재정 의원(여당)은 시사저널 단독 기사를 띄웠다. (☞ 조현오 입장문 "직무범위 벗어난 지시는 전혀 없었다" )
조현오 입장문을 담은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재정 위원: “(여기에) 민갑룡 청장을 운운했습니다. ‘민갑룡 청장이 이러한 수사 가이드라인에 항의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청장의 의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대목이다. " 하면서 뻔뻔한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증거가 현격한데요.... (이런) 상황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하고 경찰청장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문에 몇 번이나 언급을 하는데 경찰청장님한테 뭐 소통된 게 있습니까? 이것 보는 경찰청장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민갑룡은 이 질의에 “그분은 그분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즉 그 생각은 조현오 ‘당신의 것(Yours)’일 뿐이다.
그런데 이채익 위원은 이러한 민 청장 답변을 ‘당신 자신의 것(Yourself)’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채익 위원 : “울산 남구갑 이채익 위원입니다. 오늘 오전 존경하신 윤재옥 위원의 질의에 민갑룡 경찰청장의 답변을 들으면서 본 위원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 위원들의 각종 질의에는 그토록 신중하고 애매모호한 답변을 하던 청장이 경찰청의 대선배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하고 정확한 답변을 했습니다. “법치국가에서 죄를 지었으면 구속은 당연하다. 또한 모든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조현오 청장이 무죄가 되면 오늘 이 답변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경찰청장 민갑룡 : 수사 과정을 통해서 불법이 있다는 걸 규정을 했고요. 현재 영장 실질심사 과정까지 거쳐서 법원에서도 그렇게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답변을 드린 겁니다.
이채익 위원 : 구속은 됐지만 아직까지 확정되지는 않았잖아요.
경찰청장 민갑룡 : 예 그렇습니다.
이채익 위원 : 그런데 경찰청장이 그렇게...
경찰청장 민갑룡 : 현재까지 사법적인 판단까지 거친...
이채익 위원 : “경찰청장이 이런 답변을 그렇게 예단해서 미리 얘기할 수 있어요? 내가 1998년도부터 2000년도까지 울산 남구 구청장을 할 때 조현오 청장이 당시 남부경찰서장을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현오 청장을 두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도 없고 전화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때 만났던 조현오 청장은 국가관이 뚜렷하고 공과 사가 분명한, 너무 공과 사가 분명해서 불편할 정도로 제가 봤을 때는 참경찰상이다, 그렇지만 대민 관계에 좀 더 유연성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할 정도로 너무 국가관이 뚜렷한 경찰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다 보니까 조현오 청장도 이제 영어의 신세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모셨던 전 경찰청장이 경찰의 손에 의해서 구치소에 들어가고 구치가 되고 최초로 경찰청에 의해서 구속된 전 청장에 대해서 구속은 당연하다. 법과 원칙에 따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민갑룡은 이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때 민갑룡이 느꼈을 두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 아마 민갑룡은 나에게 자기를 아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은 누군가처럼 직을 걸고 맞설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스치듯 말했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민갑룡 쌍둥이인가? 2013년이다.
조현오도 그 시절 순탄하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2013년 가을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봄 그를 면회했다. 조현오는 감옥에 있을 때부터 필자에게 후배 경찰을 소개해줬다.
조현오는 가장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이가 있다며 경찰 조직 ‘넘버 원’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름을 들었는데 촌스럽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민갑룡”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차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