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감독 장건재 / 2024

by 달게

계나는 추운 것을 못 참는다.

계나 가족이 사는 집은 재건축을 코앞에 둔 오래된 노후주택이라 수리도 못하고 그저 참고 견디며 산다. 비닐방풍을 했지만 창틀에서 들어오는 외풍은 안팎의 온도차를 구분하기 힘들다.


계나는 집에서부터 두시간이 넘는 거리를 대중교통을 여러 번 바꿔 타고 출근한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둡고 추운 새벽, 정류장을 막 출발한 마을버스 뒤를 쫓아 가까스로 달려가 올라탄다.


상사의 갈굼과 희망고문 사이에서 수없이 마음에 사표를 던졌던 계나는 한계에 다다르고, 진짜 사표를 내고 만다.


회사는 그렇게 내 맘대로 그만뒀지만, 집은 그만둘 수 없는 가족 안에서의 의무가 여전히 존재한다. 의무라기보다 도리겠다. 재건축을 위한 분담금을 내야 하는데, 계나도 여기서 아주 자유롭지 못하다. 가족의 일원으로 다만 얼마라도 보태라는 엄마의 말이 야속하면서도, 기꺼이 그러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 속상하다.


계나의 오랜 연인인 지명이의 취업을 축하하는 가족모임에 초대받은 계나는 자신의 가족과는 많이 다른 지명이 가족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고급 중식 레스토랑도 그랬고, 맛이 전만 못하다느니, 여기보다 전에갔던 어디가 더 괜찮다느니 하는 고급 식당에 자주 가는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나 할 법한 대화도, 지명이네 가족이 가진 경험치가 낯설고, 부럽고, 같잖게도 보였다. 결정적으로 지명이가 계나의 가정형편을 미리 자신의 부모에게 언질했다는 대목에서 계나는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다.


"우리 부모님 열심히 사는 분들이야. 너희 가족한테 배려받을 일 없어!"


추운 집도, 넉넉지 못한 살림도, 회사에서 내 처지도, 남자친구의 가족도, 길에서 만난 백수 동창의 맨발에 슬리퍼 차림도 모두 춥다. 모두 싫다.

한국이 싫어 떠나 온 뉴질랜드, 계나는 창고 같은 방에서 첫 잠을 청한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난 동병상련 친구, 계나 눈에는 그애가 너무 한심해 보이지만, 그애가 본 계나도 마찬가지였나보다.


"반가워! 나 지잡대 출신이야!"

"난 홍대 나왔어."


영화 보는 내내 나도 추웠다.

나도 추위를 싫어하는데, 어려서 방안에 떠놓은 물대접이 밤새 얼어붙는 외풍을 경험했기에 계나가 느끼는 추위를 알것도 같다.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는 만족할까?

당장 춥지 않은것 만으로도 한가지 목표는 달성한듯도 하다.


이런 영화를 보고 있자면, '젊어서 가능하지.' 이미 젊지 않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부러움이 담긴다.

주말농장, 세컨하우스, 귀농귀촌을 꿈꾸지만 도심을 떠나는 것이 무엇보다 두렵고 어렵다가, 정작 도심에서 할 일이 없는 나이가 되니, 엘리베이터가 필요하고,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삶을 어찌할꼬.


현실 계나의 삶이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