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흐리다가 갬
나는 졸업앨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친구에게 SOS를 쳤다.
졸업앨범에 실린 내 사진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 내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금세 사진을 하나하나 찍어 SNS로 전달해 줬다.
"세상에!"
이 말을 몇 번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졸업앨범 속 나를 보자, 기억에 없던 다른 내가 툭 튀어나와 혼란스러웠다. 기억의 나와 졸업앨범에 박제된 내가 뒤섞이면서 내 마음에 긍정과 부정이 들끓었다.
이것도 나이고, 저것도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동그란 프레임 안, 그저 정수리부터 어깨까지만 보이는 정지된 순간일 뿐인데, 나는 사진 한 장에서 어떤 사실을 가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발견했길래 '세상에!' 하며 놀랐던 것일까?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아 감정을 읽을 수 없으면서도, 부릅뜬 눈과 앙다문 입은 불만으로 가득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열정적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의 나는 뾰족하고, 우툴두툴하고, 거칠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집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럴싸하게 포장된 포장지가 살짝 뜯겨, 그 안에 날것의 나를 본 것 같아 신기하면서도, 뜨끔했다.
동그란 프레임 안에 나에게 물었다.
"너 뭐가 그렇게 불만이니?"
모든 감정과 생각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무엇 하나도 숨길 줄 몰랐던 열아홉의 내가 있다.
좋은 기억이란 없다. 기억나는 모든 것을 반들반들하게 닦아 좋게 만들어 왔다.
나는 졸업앨범 속 나를 휴대전화기에 저장하고, 그 사진을 볼 수 있게 전화기 홈 화면에 꺼내뒀다.
이제 휴대전화를 켜면 열아홉의 내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 가끔 까먹고 휴대전화를 켰다가 깜짝깜짝 놀란다.
부족하고, 어눌하고, 모나고, 겁 많고, 갖은 폼이란 폼은 다 잡던 너를, 내가 아니면 누가 안아주겠는가.
너는 내가 됐고, 나는 너였다.
늦은 일기는 친구들이 그리워서 쓰기 시작했지만, 나에게 다가서기 위한 변명이 됐다.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제약회사는 한 달이 안 돼 그만두고, 기능직 공무원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해 겨울 학력고사를 치르려고, 서울역 부근 대입학원을 저녁마다 줄 서서 입장했고, 다음 해 야간대학 도서관과에 입학해 2년을 주경야독해 졸업했다. 십 대 후반이 아름다웠다면, 이십 대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했다. 무역회사도, 제약회사도, 기능직공무원도, 대학도 무엇이 되겠다는 목적도 없이 허우적댔다. 허우적거리며, 휘청휘청 지나갔지만, 그 길은 내가 만든 길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길이 있다. 자기만의 길이라고 해서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길 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동행한다. 누군가에게 간섭받고, 자극을 받고, 반대로 나도 영향을 준다. 누군가는 내 앞길을 먼저가 열어주기도 하지만, 나를 넘어뜨리기도 했다. 그 반대도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축해 주기도 했고,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줬다. 길 중간이든, 종착지든 혼자는 닿을 수 없다.
세검정에서 제기동을 잇는 522번 버스는 이제 없다.
쉽게 인터넷 지도에서 길찾기를 해봤다. 세검정에서 지선버스 1020번을 타고 가다 국민대학교 앞에서 다른 버스로 환승해야 한다. 정릉에서 종암동을 잇는 길에는 내부순환고속도로의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시야를 턱턱 막아 저 멀리 내다볼 수가 없다. 다시 종암사거리에서 제기동까지 이어지는 길에서 나는 옛 모습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예전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고, 비교할 기억이 없어 찾기를 멈췄다.
오둘둘 블루스는 522번 버스에서 비롯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꿈을 가져본다면, 이 이야기를 책에 담아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친구들의 공간을 두고 싶다.
"너는 어땠어?"
쨍하고 맑은 날보다 흐리다가 갠 날이 더 많았던 열아홉 늦은 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