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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어쩔수가없는거 맞아요?

by 김민정

존경하는 박찬욱 감독님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를 드디어 봤습니다. 공식적으로 영화 제목 <어쩔수가없다>는 띄어쓰기가 전혀 안되어 있더군요.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호흡 끼우지 말고 쉴틈 없이 해야되니 한 칸도 안 띄운달까? 그런 느낌입니다.

어쨌든 예전 같으면 언론시사회 달려가서 봤을 텐데, 여러 가지 일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이 늦게 봤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웠습니다.


그 사이에 감독님께서 매체에 여러 번 등장하셔서 인터뷰도 하셨고, 영화와 관련한 다양한 평이 등장했고,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해 비난을 하는 반응도 많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비난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저는 뭐 그다지 새삼스럽게 생각되지도 않았어요. 예전에도 박찬욱 감독님 영화 등장하면 이상하고, 이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복수는 나의 것>도, 지루하다며... 극장을 중간에 나왔다는 관객도 많았지만(<어쩔수가없다>도 그렇던데요), 세월이 흐르니 평론가들이 극찬하는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고, <박쥐>도 무슨 그런 그로테스크한 작품이 있냐며 의아하게 여기는 관객들이 있었지만(싫다는 사람도 많고), 이동진 평론가, 최동훈 감독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고 있죠. 저는 <올드보이>도 언론시사회인지 VIP시사회인지 끝나고, 뭐 이런 영화가 있냐며 화낸 사람이 있던... 기억도 납니다. 어쨌든 그런 과거의 작품들에 비하면 <어쩔수가없다>는 꽤 무난한 반응이고, 저는 정말 재밌게 봤습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에 대한 반응은, 세월이 거듭되며 달라지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런 달라지는 반응이, 영화가 세월을 초월하며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댓글들 제가 좀 찾아보니까, <헤어질 결심> 보고 박찬욱 감독님 알게 되어 이번 작품 봤는데 실망했다... 는 반응이 꽤 많더군요. 그런 분들은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를 쭉 한번 다시 보시면 좋겠다는 권유를 드리고,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박찬욱 감독님 영화는 모든 작품이, 신기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 직후보다, 그다음 날, 한 달 후, 몇 년 후에까지 자꾸 생각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좋고, 여운이 깊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어쩔수가없다>도 영화 봤을 때보다, 며칠 지나니 더 생각나고 자꾸 곱씹게 되었거든요.


영화에 대한 해석은 이동진 평론가님의 유튜브 찾아보시면 아주 자세히 나와있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서, 추천드립니다.

저는 그냥 개인적으로, 그 옛날 싸이월드 시절부터 <친절한 금자씨> 보고 열렬하게 적고, <박쥐> 보고 두근두근하며 적고, <아가씨>의 여운에 머리가 어지러워서 적었고, <헤어질 결심>의 기품 어린 고급스러움에 벅차서 줄줄 문장을 썼던 것처럼, <어쩔수가없다>에 대해서도 팬심으로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저의 생각은, 그저 개인적인 느낌이에요. 그리고 어쩔 수가 없이 스포는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굉장히 그리스도교적인 상징이 많이 등장합니다.

듣기로는 원작 소설 자체에 기독교 요소가 굉장히 많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어쩌면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못 탄 이유 중의 하나가, 주인공이 그리스도교에 반기를 들면서 죄책감이 하나도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왜냐면 유럽은 대부분 가톨릭 국가니까요, 심지어 영어 제목은 NO OTHER CHOICE. 다른 선택지가 없다니요...) 너무 신 앞에 뻔뻔한 인물이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어떤 미안함이랄까, 부끄러움이랄까, 실패하는 모습이 안 보이니, 베니스에선 이 영화에게 상을 주기가 굉장히 애매했나 봅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영화 만듦새는 정말 완벽한데요, 첼로 음악이 흘러서 그런지, 바로크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죠.


우선 만수(이병헌)는 자신의 집 정원에서 바비큐를 하며 가족을 다 끌어안고 "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합니다.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뒤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며 인류 구원을 위해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건데, 주인공 만수는 집에서 장어 구워 먹으면서 다 이루었다고 얘기하다니... 진짜 만수의 상황은 하찮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대사 배치를 통해, 만수라는 인간이 신에게 적극 대응하면서 나설거라는 암시가 담겼음이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자꾸 하늘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시는데... 하늘이 "이 놈 내가 너 다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하늘의 영역이 있긴 한데 '신'까지는 아니지만...이라고 하시더군요. 감독님도 학창 시절에 성당 다니셨으면서... 하느님에 대한 관념이 뚜렷하실 텐데(지금은 안 다니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감독님 작품 속에서, 무의식 중에 하늘의 시선이 드러나는걸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이동진 선생님도 만수(이병헌) 집과 직장 등에 대해 낙원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저도 정말 공감했습니다.

왜냐면 집 마당에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거든요. 창세기에 등장하는 사과나무는 하느님의 영역입니다. 사과를 먹지 말라고 하느님께서 충고하셨지만, 인간은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 충고를 무시하고, 하느님 처럼 되고 싶어 합니다.

만수(이병헌)도 집착과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과나무를 파내어 밑에 더러운 걸 심어버리고, 나중에 딸이 그러는데, 사과나무가 썩는다고 하잖아요? 아마도 인간의 죄악때문에 사과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될 듯합니다.

만수(이병헌)는 어마어마한 트라우마가 있는 인물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고, 웃기지만, 사실 아버지가 창고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던 과거를 경험했었죠. 그에 대해 아들이 만수(이병헌)에게 "실제로 할아버지가 창고에서 그렇게 안 좋은 선택을 했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만수(이병헌)는 "난 못 봤는데~"라고 대답했지만, 저는 왠지 사실은 봤지만, 일부러 "난 못 봤는데~"라고 강조하는 듯 다가왔습니다 (제 생각이에요)

어쨌든, 봤든, 안 봤든, 부모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엄청난 상처였을 겁니다. 그리고 한때 돼지농장을 크게 했던 부자였다가, 전염병 때문인지 돼지를 전부 땅에 묻어야 했고, 이사를 수없이 다니며 살게 된 현실은 어린 시절에 감당할 수 없는 힘겨움이었겠죠. 그래서 만수는 트라우마를 가득 안고 자란 특이한 인물입니다.

(**여기서 잠깐! 돼지는 성경에서 부정한 동물입니다. 더러운 영이 수많은 돼지떼에 들어간뒤 물에 다 빠져버리는 그런 얘기도 나온답니다)


많은 관객들이, '아니, 실직했다고 경쟁자를 왜 살인하냐, 말이 안 된다'며 반발한다고 들었는데, 만수(이병헌)를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반발심이 생겼을 겁니다. 게다가 만수는 술을 마시면, 아들을 때리기까지 한다는 거죠? 술 취하면 자식에게(아무리 친아들 아니더라도) 폭력을 행사한다니... 이건 정말 사회악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요즘 시대에는 검거 대상입니다.

그런데, 보통 작품이라면 주인공에게 동일시하면서, 공감하면서 푹 빠져서 봐야 하는데(<좀비딸>이나 <폭싹 속았수다>처럼요), 이 영화는 어디 하나 마음 둘 곳이 없으니, 재미없고 황당하고 이해 안 된다는 반응이 많을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최근에 감독님 인터뷰 어딘가에서 보니까, 만수(이병헌)에게 동일시 안 하길 바라는 장치를 영화 속에 많이 넣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만수는 본격 살인 전에도, 사람 지나갈 때 화분부터 내리치려고 하잖아요? 술을 끊어서 폭력성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실직이라는 계기를 마주하자 숨어있던 폭력성이 튀어나왔고, 그게 한 번, 두 번 성공하니, 마지막에 하이라이트를 펼친 듯합니다.


감독님도 인터뷰에서 얘기하시고, 이동진 선생님도 그랬듯이 만수가 세명을 살해하는 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없애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성경 속에서 형제를 살해하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겹치기도 했습니다. 나름 일을 열심히 했는데, 내 생각만큼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열받음으로 동생을 피 흘리게 하는 카인과 만수는 꽤 비슷한 접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뱀도 역시 창세기처럼 유혹의 대상이죠. 저는 아라(염혜란)가 뱀에게 물린 만수(이병헌)의 피를 빨아서 뱉는데, <박쥐> 생각도 나고 그랬습니다...

아무튼 아라(염혜란)는 유혹하기 위해 움직이는 대상이고, 나중에 총에 대한 거짓말도 하잖아요. 그 자체로 뱀 같은 존재였습니다.

범모(이성민)도 낙원에 사는 태초의 인간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다가 유혹자 뱀 때문에 결국엔 망가지는 결과를 맞이하는데, <고추잠자리>가 깔리며 진행되는 사투의 액션씬은, 최근 한국 영화에 등장한 최고의 흥미진진, 폭소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만수는 하늘에서 빤히 바라보고 계신 신의 뜻을 거스르며, 보란 듯이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 모든 일은 완전 범죄가 된 것 같지만, 마지막에, 아내와 아들이 눈치를 챘죠. 박찬욱 감독님의 해설을 들어보니, 이 영화가 끝난 후, 영화 밖에서 이어질 이야기는 비극인 듯합니다.


취업 작전을(?) 잘 끝내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듯 보이지만, 사과나무는 썩었고, 그 아래 묻어있는 죄악 때문에 집을 떠날 수도 없고,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죠. 그때 천재 첼로 소녀인 딸은 <르 바디나주(Le Badinage)>를 연주합니다. 반가운 강아지들을 위한 환영의 연주라고도 할 수 있다고 감독님께서 그러셨는데, 엄마가 연주를 듣고 문을 열었을 때, 딸이 보여준 그 무심하면서도, 엄마가 봤네라고 인정하면서도, 엄마보다 한수 위에 있는 것 같은 알듯 모를듯한 표정이 저는 개인적으로 압권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선 미리(손예진)의 표정이 사실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는데, 감독님 해설 들어보니, 아이의 능력에 대한 놀람과 감탄이기도 하고, 이제 저 아이를 혼자 어떻게 교육시키며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이 담겼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미리(손예진)는 남편을 떠날 결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 같아요. 나무 아래 시체가 있는 집에서 어떻게 살며, 남편이 살인자인데 어떻게 같이 사나요? 그리고, 미리(손예진)는 남편이 술 마시면 어떤 폭력을 쓰는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당장 짐 싸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며 떠날 틈을 노리는 것 자체가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영화 밖 이야기를 상상해 보면, 미리는 혼자서도 잘 살 거 같아요. 원래 아들과 혼자 살기도 했었고, 이제는 딸이 있긴 하지만, 유연석과 잘 지내니 또 한 번 새 출발 할 수도 있고... 예쁘고 발랄한 여성이면서도, 여러모로 엄청 생활력 강한 여성이 미리(손예진)인 거 같았습니다.




만수(이병헌)는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일을 벌였다는 변명을 하겠지만, 그건 신의 입장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낙원에서 쫓겨났던 인간이 죄를 저지른 뒤, 완전범죄로 처리되어 낙원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그 낙원을 관장하는 하느님의 입장에선 다 알고 있기에, 결국 또다시 쫓겨나야 하는 운명이 바로 만수(이병헌)의 미래가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에 딸이 연주한 <르 바디나주(Le Badinage)>는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1991)>에 나온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 마랭 마레(Marin Marais :제라르 드 빠르듀)가 연주하는 곡입니다. 제가 요즘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단어를 찾아보니까 '농담'이란 뜻이네요. 왠지 박찬욱 감독님스러운 곡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랙코미디이며, 슬프고, 처연하고, 잔인하고, 아픈 이 영화의 마지막을, 이렇게 비틀어대는 곡으로 끝내다니...


농담이라고, 장난이라고,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는 인간... 변명하지 마시고 하늘을 바라보세요

우리가 어떤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고, 이건 왜 그럴까, 저건 무슨 의미 일까 생각해 본 일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생각없이 재밌는 작품도 좋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떠올려 보며, 또 거기에 다른 사람 생각도 추가하고, 또 다른 내 생각도 추가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박찬욱 감독님 다음 작품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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