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 리뷰
여러분~ 가을을 만끽하고 계신가요
정말 마음 같아선 저의 애정 어린 공간 브런치에서 다양한 콘텐츠 이야기 자주 쓰고 싶지만, 생업에 바쁘고 다양한 대소사 일에 정신이 없으니 너무 띄엄띄엄이예요. 지난번 <어쩔수가없다> 리뷰글 올린 거 '다음'에서 모바일 메인에 걸어주셔갖구...(감사합니다) 많은 분들 봐주셔서 그저 자꾸 감사했어요.
어쨌든, (사설이 길었고) 오늘은, 며칠 전 청룡영화상 때문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그러한 상황인 거 모두 아시죠?
수많은 SNS 댓글에,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상 받은 사람은 하나도 기억 안 나고 박정민, 화사의 축하무대만 기억난다며, 축하무대 백번 돌려본다며... 그러한 이야기가 넘치고 있는데, 저는 본방사수 했거든요. 어머어머어머 이러면서 봤어요. 그래서 이 인기에 편승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건 아니라 (편승하고 싶은 본능이 움직였나?) 제가 얼마 전에 연상호 감독님이 만들고 박정민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얼굴>을 봤었답니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타이밍을 놓쳤고, OTT에 떴기에 얼른 결제해서 봤는데요, 저는 저녁에 영화든 유튜브든 보려고 틀어놓은 뒤 침대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들고 말거든요. 일찍 일어나는 루틴이다 보니까 그런 건데요, 하지만! <얼굴>은 보면서 졸 틈이 없었고, 영화가 그리 길지 않아서인지 순식간에 봐버렸습니다. 연상호 감독님 영화 <부산행>처럼, 기차 타고 쉴 새 없이 달리는 느낌으로 영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었어요. 그리고 끝나고 남겨진 의미에 대해 한참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얼굴> 리뷰를 얼른 쓰면서 정리를 해 보고 싶었는데, 미루다가, 바로 지금이다!!라는 감탄과 함께, <파수꾼> 때부터 팬이었던 박정민 배우가 갑자기 인기가 폭발하는 이 상황에서 더더욱 나누고 싶어 졌으니, <얼굴>의 리뷰를 적어볼까 합니다. 이 작품은 스포를 알면 진짜 진짜 재미가 반감되니까, 스포는 거론 안 할 거고요, 다들 절대 결말 찾아보지 마시고 영화 보시기 바랍니다.
일단 이 영화의 주인공 박정민 배우는 1인 2 역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도장 장인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 역할로 박정민 배우가 등장을 하고, 플래시백 과거 장면이 펼쳐질 땐 '임영규'의 젊은 시절 또한 박정민 배우가 연기합니다.
영화의 시작에선 '임영규'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여성 PD가 '임영규'(권해효)를 인터뷰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약간 뚱하게 지켜보고 있죠. 그리고, 여성 PD는 임영규의 도장 만드는 놀라운 실력에 대해 질문을 하다가, 이어서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사신 게 힘들지 않았냐는 얘기를 꺼냅니다. 그러니까 현재 임영규에겐 아내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지체하지 않고, 긴박하게 다음으로 흘러갑니다. 조금 뒤 갑자기 임동환(박정민)은 경찰에게 전화를 받게 되는데, 장영희라는 여성의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여기서, 임동환은 장영희란 이름에 대해 "그게 누군데요?"라는 얘기를 해요. 엄마거든요. 그런데 엄마 이름을 딱 듣고 모른다는 건, 평소에 아무도 그의 앞에서 엄마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어쨌든 부랴부랴 엄마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보니, 40년 만에 발견되어 백골만 남은 상태라, 얼굴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엄마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로, 사진도 없으니 영정사진도 비어있는 채로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갑자기 있는 줄도 몰랐던 이모들과 사촌이 찾아옵니다. 사촌은 다짜고짜, 돌아가신 할머니(장영희 어머니)가 장영희 앞으로 유산을 남겨놓은 게 있는데 포기해 달라는 얘기를 하죠. 어이없는 임동환은 무조건 포기한다며, 각서도 써주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이모들이 또 헛웃음이 나올만한 얘기를 합니다. 영희는 심하게 못생겼다.
이때 박정민 배우가 굉장히 황당한 표정을 짓는데, 제 마음도 그랬어요. 아니, 사람 얼굴이 좀 예쁘지 않을 수도 있지, 그걸 못생겼다고 대놓고 얘기하는 경우가 어딨 으며, 그 못생김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요? 그런데, 이모라는 사람들이 엄마는 못생겼다고... 여기서부터 저의 흥미로움은 더 커지기 시작했고, 못생겼다는 키워드가 영화 내내 부각될 거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충격적인 결말까지 이어집니다
이 모든 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던 다큐멘터리 PD는, 장영희의 마지막에 대해 본격적으로 파헤쳐보자고 임동환(박정민)에게 제안을 합니다. 그렇게, 임동환은 엄마를 둘러싼 이야기를 태어나 처음 접하게 되는데요
다큐멘터리 PD와 임동환(박정민)은 장영희가 젊은 시절 일했던 피복공장의 동료들부터 만나게 됩니다.
저도 영희의 사연이 궁금해서, 영희 주변인물 인터뷰에 푹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인터뷰와 함께 과거 장면이 펼쳐지자 드디어 영희가 등장을 했고, 신현빈 배우가 맡아서 연기를 했는데, 영화 내내 영희의 얼굴은 절대 보이지 않고 뒷모습에 목소리만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다 아는 것처럼 신현빈 배우는 미인이잖아요? 하지만 못생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니 이건 더더욱 뭔가 있다! 싶었습니다.
영희(신현빈)는 일터에서 모두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못생겼다고 비난받고, 재봉사의 시다, 그러니까 조수일을 하면서 너 까짓게 뭐냐는 그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심지어 의로운 일을 했지만, 비난은 더 거세집니다. 특히 피복 공장의 사장이란 사람은 영희를 향해, '어디서 감히 주제도 안 되는 게 나선다'는 느낌의 대사를 여러 번 합니다. 그러니까 영희에게 던져지는 "못생겼다"라는 말은 외모보다, 인격적인 비난인 겁니다.
그 과정에서 임영규와 장영희는 만나 가정을 꾸리게 되는데, 여기서도 굉장히 미묘한 일이 생깁니다. 영규는 앞을 보지 못하니 영희의 얼굴을 알 수 없죠. 그런데 누구는 영희를 예쁘다고 하고, 누구는 영희를 못생겼다고 합니다.
뭐가 진짜일까요? 그리고 대체 왜 자꾸 외모에 대해 평가를 하는 걸까요?
임영규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도장의 글씨를 정말 예쁘게 판다고 추앙받습니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예쁜 글씨를 만들 수 있냐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임영규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오고 갑니다. 도대체 그 예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나오는 대사가 있는데, "예쁜 건 존경받고 추앙받으며, 못생기면 멸시당한다"입니다. 그러면, 예쁘다고 불리는 외모는 눈 크고 코 높은 달걀형 얼굴이어야 하고, 아니라면 못생긴 걸까요? 전혀 그렇지 않죠. 이 영화는 예쁨과 못생김의 결정이 우리 마음속 뿌리 깊은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나오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한마디로, 배운 거 없고, 공장에서 일하고, 가진 거 없는 너는 예쁠 수 없고, 예쁠 권리조차도 없다고 여기는, 소위 높은 사람들의 '무시'가 바로 못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영화 초반부의 영희 자매들이(동환 이모들), 영희는 못생겼다고 얘기한 건, 진짜 못생겼다기보다 자매들 사이에서 왕따 같은 걸 당했기에 나온 말 같습니다. 영희는 아버지의 부정한 행동도 고발하고, 또 공장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에 나서거든요. 그러니, '여자가, 니가 뭔데 왜 나서?' 이런 마음이 못생겼다는 말로 나타나는 거죠. 아.. 정말 그 시대에 옳은 이야기 하려는 여성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영규는 예쁘다, 못생겼다를 어떻게 알까요? 바로, 주위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알게 됩니다. 앞이 안 보이니 그 방법 밖에 없죠. 그래서 영규는 사람들 말에 휘둘립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정적인 특징은, 이야기 전개가 모두 인터뷰 안에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인터뷰'라는 상황은 모두 아시는 것처럼, 내가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듣는' 일이죠. 따라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에 따라 전개되는 내용은 조작될 가능성이 높고, 인터뷰 속 내용의 배경이라든지, 사람의 표정, 주고받는 대사 등등은 온전히 정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직접 보지 않았으니 진짜가 아닌데, 거기에 휘둘리는 사람이란 존재는 그저 나약할 뿐이겠죠
볼 수 없다는 팩트는 굉장히 상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을 잘 보고 있을까요? 무엇이 예쁜지 제대로 판단하며 보고 있을까요? 혹시 마음의 눈은 가린 채, 그저 주위 사람들의 말, SNS에 넘치는 이야기에만 휘둘리며, 누가 뭐해서 대박 났네, 이러 이런 걸 하면 주목받네, 이게 예쁘니 선택해야 하네, 이렇게 오가는 뜬소문에 괜히 발끈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진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참 많은 여운을 줬습니다. 스태프 스크롤 올라가는데 괜히 멍해진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못생김의 고정관념 안에 갇혀서 피해를 입는 또 다른 사람은 생기지 않길 바라게 됐습니다.
<얼굴>은 2억 원 예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죠. 박정민 배우는 개런티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예산이지만 빈틈이 하나도 없는 작품이라, 역시 완성도는 예산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덕에 <얼굴>은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었다고 해요. 이런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정민 배우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있는데, 요즘 연예계는 부동산, 개런티, 조회수 이야기 없으면 주목 못 받는 분위기이죠. 하지만, 그 와중에 출판사, 노개런티, 축하무대(?) 등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 예술을 즐기며 차곡차곡 역량을 성장시키고 있는 배우 박정민의 활약이 참 보기 좋습니다.
보기 좋음은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름다움은 이렇듯 노력과 선한 영향력으로 만들어짐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연상호 감독님 다음 작품도 기대합니다
** ps. 화사 멜론 TOP 100 1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