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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an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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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제지하는 천사>

 렘브란트 반 레인 [ REMBRANDT VAN RIJN , 1606년 7월 15일 ~ 1669년 10월 4일]

아마 그림을 잘 모르는 분들도 '렘브란트'라는 이름은 아시지 않을까 싶어요. 빛의 화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고, 네덜란드는 풍차와 함께 '렘브란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 눈길이 간 그림은 창세기 22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다'의 내용이 담겨있는 렘브란트의 작품입니다. 그림 제목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제지하는 천사, 1635년경>이며,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작품입니다.


 '아브라함'은 신앙의 조상이죠.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 아브라함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하느님께서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고 하신 그 한마디에, 자신의 터전을 떠났고, 가나안 땅에 도착합니다.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는, 신앙의 본보기를 갖춘 사람이죠. 그런데, 그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 옛날에 자식이 없다는 건 심한 콤플렉스였고,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자식이 바로 재산이었던 시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100살에, 부인 사라가 자식을 낳아, 소중한 아들 '이사악'을 얻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 보물 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땠는지 성경에 세세하게 나와있진 않지만, 하느님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나귀에 안장을 얹으며, 장작을 패며, 이사악을 바치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아마 억장이 무너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사악과 함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가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했는지 성경에 정확하게 나오더라고요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창세 22,10)' 

바로 그때 천사가 등장했고, 그 긴박한 순간이 렘브란트의 그림에 담겨있습니다.


 이 주제는 굉장히 역동적이잖아요. 그래서, 근대 이후 화가들의 경연대회 주제로도 많이 쓰였어요. 그 유명한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 제작 미술가를 선발할 때도 이 주제로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빛의 화가, 눈길을 사로잡는 화가 렘브란트 역시, 이 장면을 섬뜩하게 그려놨습니다. 아브라함의 왼손이 이사악의 얼굴을 잡고 있는 게 너무 무섭기도 한데요, 그런데, 그 순간 천사가 나타나 아브라함의 팔을 잡고 말리자 들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는! 그 장면이 생생하게 담겨있습니다. 특히, 어둠 속에서 이사악 몸에 조명을 떨어뜨린 것 같은, 저 기법은  '바로 그 순간'이란 느낌을 강하게 안겨주는 듯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을 말린 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번제물로 바칠 숫양이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고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련해주신다', 바로, '야훼 이레'라는 말이 등장하고,  말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죠.

 '이레'는 '보다'에서 나온 말인데, '신앙은 보게 해 주신 게 마련 해 주신 거란 걸 깨닫고, 믿고, 따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3개월 동안 맨날 같은 길을 지나다녔지만, 그 길에 예쁜 꽃이 있다는 걸 전혀 보지 못했던 거예요. 어느 순간 눈을 들어보니 3개월 동안 보지 못했던 예쁜 꽃이 마련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이런 경우 많죠.   

 모집 공고, 참여해 달라는 문구(지원 공고, 기도모임 등을 비롯한 다양한 모임 공고들)가 매일 떠 있지만, 그걸 봐야 움직이잖아요. 맨날 떠 있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금새 발견해서 그곳을 찾아가거나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마련된 걸 보게 해 주시는 게 ‘하느님 현존’ 이란 걸 새삼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제 모든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천사의 움직임을 느꼈고,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마련해주신 걸 보았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 순간, 우리가 살기 위해선, 눈을 들어 ‘마련해주신 걸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렘브란트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명성이 높아지며 귀족들로부터 의뢰를 많이 받고, 결혼도 굉장한 부잣집 여인과 했다고 하죠. 21세기에 그의 그림을 봐도 그 어떤 영화보다 생동감 넘치게 다가오잖아요. 굉장한 실력가였죠. 그러니, 멋진 그림들로 돈을 벌며 화려한 생활을 했는데, 하지만, 그는 자식의 죽음을 겪어야 했습니다. 렘브란트의 첫아들이 1635년 12월 15일 세례를 받았지만 몇 달밖에 살지 못했고, 1638년 첫째 딸이 세례를 받았지만 또 세상을 떠나고요, 1640년 7월 29일 둘째 딸이 세례를 받았지만 역시 하늘나라로 갑니다. 그러다가 1642년 6월 14일 아내 사스키아도 세상을 떠나고요, 그 이후 더 방황하며 살던 그는, 1668년 아들 티튀스가 사망하는 걸 보고, 1669년 본인도 세상과 작별을 합니다. 너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는 그 순간의 이야기는 남다르게 다가왔나 봅니다.  이 주제에 대해 렘브란트는 계속 스케치와 에칭을 남겼거든요.

 렘브란트가 그린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그림을 다시 보니, 제발 죽음에서 자신의 가족들을 구해주길 바라는 마음, 그런 구원의 메시지를 가진 천사가 찾아와 줬으면 하는 마음이 담긴 것 같기도 해요.


 제발 이 순간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당신께서 마련해주신 걸 보고, 그걸 알아 우리가 무탈하게 나아가는 것이겠죠. 분명한 건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에 눈을 들어 보면, 분명, 지켜주시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것. 그걸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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