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 엄마의 편지
D-day 2일 전 까까머리가 되다.
신검을 마치고 입영통지서를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날짜가 참 빨리도 갑니다.
이제 훈련소 입소 2일 전이네요.
논산으로 가기 전날에야 머리를 자르겠다던 아이는 고등학교 동창들 손에 이끌려 헤어숍에 다녀왔습니다.
멀리 사는 친구들이 각지에서 모여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 엄마! 집에다 모자를 두고 왔는데 하나 더 사도 될까요? 머리가.. 아, 이게..
그냥 들어가려니 좀 그래서요.."
아이의 목소리는 까끌까끌 합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아직 적응이 힘들겠지요.
드디어 까까머리가 됐구나. 휘리릭 웃음 한 자락 지나갑니다.
그날은 친구 집에서 자고 왔습니다.
달랑 이불 한 채 베개 하나 가지고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베개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는 아이는 머리카락 깎인 머리통이 자꾸만 둥글둥글 굴러다녀서
뒷머리카락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고 유쾌하게 이야기합니다. 큭큭 웃음이 납니다.
동자승처럼 귀엽다고 했더니 "네에?" 하고는 돌아섭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돌아선 아이의 표정은 눈치챌 수 없습니다.
머리 깎일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물으니 아이는 다소
충격적인 현장얘기를 중계해주네요.
"있잖아요. 엄마,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헤어디자이너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어디서부터 밀어드릴까요?> 갑자기 그 얘길 들으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내가 머뭇거리니까 갑자기 미소를 지으면서 그러시더라고요.
<그럼, 충격 덜 받도록 앞에서부터 밀겠습니다.> 아,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크크"
머리 깎인 아이를 눈여겨봅니다.
이랬구나. 이랬구나....
까까머리 아기일 때 처음 보았던 그 예쁜 내 아이의 모습이 여기에 있었구나.
엄마인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납니다. 그 민머리도 너무 예쁩니다.
엄마의 웃음을 어색한 헛웃음으로 맞받아치며 함박웃음으로 웃어주는 아이를 보니
뱃속에서 처음 아이를 밀어냈던 때가 떠오릅니다. 그때도 이렇게 짧은 머리로 엄마를 만났었지요.
달덩이 같은 작은 아이가 훈련소로 입소하기 이틀 전. 이틀 뒤, 아이는 논산으로 가겠네요.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죠.
머리카락도 사람도 곁에서 멀어지면 모든 것이 더 소중합니다.
위로랍시고 한마디를 보냅니다. "머리카락은 금방 자라! " 위로도 아닌 위로일 겁니다.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금세 간다는 18개월.
아이의 18개월은 어떤 그림으로 자리하고 있을는지 당최 짐작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아득하고 긴 시간으로 느껴질까.. 그냥 짐작해봅니다.
엄마의 시계는 국방부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갈 겁니다. 내 아들이 보고 싶은 만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