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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유 Jul 31. 2021

훈련병 엄마의 편지

D-day  아들,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다.


#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 절하고 대문밖을 나설때

드디어 D-day . 아이가 훈련소에 입소하는 날입니다.

남편과 함께 아이에게 큰 절을 받습니다. 고개 숙여 절 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뭉클합니다.

애국심, 충정, 신성한 국방 의무, 사나이, 나라 지키는 영광...... 따위의 

거창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그저 엄마에겐, 아직도 마음쓰이는 품 속의 아들입니다.

큰 아이와 함께 논산까지 배웅키로 하고  건강을 챙겨야 하는 남편은 집에서 배웅하기로 했습니다.

"아빠! 잘 다녀오겠습니다!!! " 

우렁찬 작은 아이의 인사에 남편의 눈이 시큰합니다. 얼른 돌아섰지만, 남편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기차를 타고 대전에 도착하니 10시반. 렌트카를 빌려 논산으로 달려갑니다.     

아! 오랫만에 달리는 논산. 훈련소가 이 동네에 있군요! 아들 둔 덕에 별별 경험을 다해봅니다. 

딸 가졌으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마음. 아들 덕에 만끽하는 특별한 경험

...이라고, 억지로 위로하며 마음을 챙겨봅니다.


#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점심 무렵 논산에 도착해서 두리번 거리다가 닭갈비집을 찾았습니다.

평소에 닭갈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가 오늘은 먹음직스러운 닭갈비 앞에서도 

먹는지 마는지 평소의 모습과 다릅니다. 깨작거리는 아이에게 식당 주인은 이야기합니다.

"많이 먹고 들어가야혀! 남기고 가면 두고 두고 생각난댜! " 작은 아이는 억지 웃음에 힘을 내서 먹습니다. 

엄마인 저를 보며 주인 아주머니가 한마디를 거듭니다.     

"아이구... 맘 놓으셔! 요즘은 힘들게 못한디여. 대한민국 엄마들이 보통 엄마들이여? 

힘들면 하도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힘들게 못한디여. 요즘은 군대도 아녀. 하하하 "

충청도 사투리 구수한 주인 아주머니는 시원하게 웃습니다. 그래도 아주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좀 놓입니다.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점심을 먹고 다시 가던 길을 갑니다. 한 10분을 더 달렸을까요? 드디어 생전 처음으로 마주하는 간판. 

육군 입영훈련소의 간판이 보입니다. 제 마음이 다 두근거립니다. 

훈련소에 가까이 다다르자 제 형이 장난 삼아 목청을 높입니다.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않게 ...>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쩨끼는 제 형 앞에서 작은 아이는 엄포를 놓습니다.

"혀엉!!! 그래, 어디 형 군대갈 때 보자."

그래도 생글거리던 작은 아이의 얼굴이 훈련소가 가까와질수록 긴장한 모습이 역력합니다.     

차량이 즐비한 훈련소에 들어가니 작은 아이가 한마디를 하네요.

"와! 완전 우리 고등학교네."  

충남 공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작은 아이에게 훈련소 정경은 흡사 학교같았던 모양입니다.


연병장의 스탠드에 앉은 가족들이 벌써 와 있습니다.

아들의 등을 두드리고 따뜻한 차를 건네며 이별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기를 30여분. 군 간부의 인사와 함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자, 이제 훈련병들은 연병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내려와주시기 바랍니다.>

이별을 알리는 야속한 목소리가 마이크에서 쩌렁쩌렁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울지 말아야지, 울지 말아야지. 엄마는 입술을 깨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 어쩌죠. 제 옆의 아주머니가 눈물을 쏟고 있습니다. 

연병장으로 모이라는 방송에 모든 부모가 아이를 힘껏 품에 안고 끝가지 마음의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급하게 아빠와 영상통화를 마친 작은 아이는 제 형과 힘껏 끌어안고 이 엄마를 따뜻하게 안아줍니다. 

어느새 등판 넓어진 작은 아이를 토닥이며 저는 나름 힘찬 소리로 용기를 줍니다. 

"아들, 알지? 네가 누구지? 그럼.. 잘 하고 말고. 잘 할거야!"

엄마의 다짐에 작은 아이는 씩씩하게 인사합니다.

"고등학교, 다시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  인사를 남기고 아이는 야속하게도 연병장으로 냅다 내달립니다.

국가를 지키러 가는 장한 내 아들이 있으니 오늘부터 더 편히 발뻗고 자게 될까요? 알 수 없습니다.


#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장 고이 접어 보내오

연방장에 모인 수백명의 아들들이 부모를 향해 '충..성!'  함성을 외칩니다. 

그 사이에 제 아들도 함께 해 있습니다. 아들들의 우렁찬 경례를 받고 여기저기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

들리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터진 엄마들 사이에서 한 아빠의 익살스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빨리 데려가라! 빨리 데려가라!" 

안타까운 마음을 포장한 아빠의 얘기 앞에 오히려 더 콧날이 찡합니다.

인사와 함께 돌아선 아들들은 무리를 지어 연병장에서 빠져 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다 사라질때까지, 보이지 않게 사라질때까지... 돌아서지 못한채 손을 열심히 흔들고 있습니다. 

아. 그렇게 아들들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교회에 들렀습니다. 입소 3일후 종교활동시간에 각자의 종교기관에 모여 부모가 남겨둔

편지를 읽고 간식도 먹는다고 합니다.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습니다만, 

교회의 간식이 햄버거라는 말에,  햄버거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교회로 발길을 옮깁니다. 

훈련소 신병들의 간식비에 쓰인다는 얘기를 듣고 평생 해본 적 없는 헌금도 해보았습니다.  


#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예배당 안에는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따뜻한 커피와 편지지도 나누어 줍니다.

금방 헤어진 작은 아이를 떠올리며 편지지를 펼쳐봅니다. 첫줄을 어떻게 쓸까? 

<사랑하는 작은 아들...> 여기까지 몇 글자를 적었을 뿐인데 기어이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훌쩍거리는 엄마의 모습에 큰 아이가 농을 겁니다.

"엄마, 그렇게 슬프게 쓰심 집 생각나서 안돼요. 즐겁게 쓰세요. 웃기게요..."

큰 아이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편지를 사수합니다. 그러다보니 편지내용이 자꾸 슬퍼집니다. 

전화를 걸어 남편과 통화를 시도합니다. 대신 몇 줄 남겨줄테니 부르라고 합니다.

내용을 받아 적고 있는데 큰아이가 대뜸 제 편지지에 한 줄을 덧붙입니다.

<동생아. 여기까지는 아빠가 하신 말씀, 그 아래로는 엄마의 각색!>

하하하. 큰 아이 때문에 쏟아지던 눈물이 다시 들어갑니다. 다행입니다. 아들이 둘이라는게요.     

편지를 남기고 돌아섭니다. 

3일 후, 아이는 간식을 받으러 이 곳에 와서 아빠 엄마와 형의 편지를 읽어 보겠지요. 

낯선 곳에서 낯선 친구들과 모여 함께 할 시간들.

오늘 이 편지를 마음 울적이지 않고, 집 생각 나지 않고.. 씩씩하고 명랑하게 읽어주기를 바래 볼 뿐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아이와 함께 왔는데, 아이를 두고 갑니다.

아들들이 외쳐 준 '충성!'의 뜨거운 구호를 마음에 눌러담고 무거운 발걸음 때어가며 돌아섭니다.


아들아. 건강히.... 잘 지내다오!  

무탈하게... 잘 지내다오.    

사랑하는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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