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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Feb 04. 2023

느린 걸음으로 돌아보기

잠들기 전까지 태엽감은 장난감 배처럼 '두두두두' 거리면서 바삐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공허한 느낌이 참 많이 듭니다.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이겠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유난히 바쁜 요즘, 손으로 든 눈으로 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헤아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에 대해 생각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하죠. 혼자 있는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는지 짚어보았습니다. 출퇴근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간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군요. 이 시간에 저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이동시간을 그냥 놀리는 게 제일 아까워서 뭐라도 펴서 읽는데요, 혼자 있는 시간이긴 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은 아니네요.


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장 편한 자세로 소파에 몸을 묻을 때입니다. 이때는 TV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요. 요즘은 주로 TV를 보네요. 회사일의 피곤을 물리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무 생각 없이 껄껄거리며 TV를 보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뭐라도 보는 거지요.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은 맞지만 나를 돌보지는 않습니다.  


진정으로 혼자 있는 시간은 잠들기 전이죠. 다른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눈만 감고 있어도 되는 시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을 법한 시간이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침실 불을 끄고 나서 습관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아침알람용으로 곁에 둔 핸드폰을 쥔답니다. 쏟아지는 잠이 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리기 전까지 눈알을 굴리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죠.


이렇게 되짚어보니, 내 손과 발이, 내 눈과 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하루에 단 10분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제 몸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시간인데도 혼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내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인 것처럼 착각했었다는 겁니다. 하루를 열심히 지어간 소중한 나를 생각하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깨달았습니다. 닥친 일을 해치우느라 마음과 영혼을 돌보지 않아서 일에서의 성취가 있어도 마음속에 찬바람이 휘휘 불었던 거죠. 내 빠른 걸음을 따라오지 못한 내 영혼이 제자리를 찾아올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가여운 내 영혼.


이번 주말부터는 일상과 떨어진 어느 호젓한 곳(동네 카페가 유력합니다)에서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 봐야겠어요. 더 이상 나의 소중한 영혼이 밖으로 떠돌지 않게 일부러 시간을 낼 겁니다. 나는 소중하니까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인디언들이 영혼을 챙기는 방법이 새삼 떠오릅니다. 나의 영혼을 조용히 기다려주는 한숨 쉬어가는 한 주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번 적어봅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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