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많으면, 여유가 생기면, 마음이 평온하면 글을 더 자주 쓰고 많이 쓸 줄 알았다. 회사일, 가사와 아이 키우는 일, 예고 없이 터지는 친정과 시댁 일을 막느라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촘촘하게 움직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 넘기고 있는 나에게 글쓰기가 버거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간과 여유가 있으면 머릿속에 담아놓고 밖으로 꺼내지 못한 수많은 글감들을 얼마든지 꺼내어 펼쳐 놓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자신했다. '내게 긴 휴가가 주어지면, 그 휴가 동안 머릿속에서 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글감들을 하나하나 멋지게 뽑아낼 거다. 연말에는 꼭 열흘 넘는 휴가를 낼 거다'라고 다짐했다.
세상일 알 수 없다. 나의 다짐이 굳세고 굳세어 하늘을 감동하게 했는지, 6월에 나는 무려 6주에 달하는 긴 휴가를 내게 되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지만, 사실은 봄부터 아팠던 발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여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면서 6주 간의 병가를 받은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휴가이지만, 이유야 어쨌든 나는 회사 동료들이 일하는 시간에 공식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통증이 심했던 왼발 뿐 아니라 다른 증상으로 불편했던 오른발도 함께 수술을 했기 때문에 움직임이 매우 불편했고 수술 후의 통증이 쉬는 기간 내내 나를 괴롭혔지만, 나만의 시간 동안 글을 쓸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불편함과 아픔쯤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글 쓰고, 책 읽고, 글 쓰고 책 읽고를 무한 반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했다. 예전 글모임의 지인들 또한 시간이 많아졌으니 잠시 쉬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라, 글이 기다려진다는 응원도 보냈다. 응원 문자에 책임감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래 쓰자. 맘껏 쓰자.
어느덧 6주 간의병가는 끝났다. 그리고 나는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했다.
글만 쓰려하면 집중력이 떨어졌다.
수술 부위 통증은 생각보다 심했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양쪽 다리에 올라오는 붓기는 통증을 더 악화시켰고 통증은 집중력을 분산시켰다. 아, 집중 안 되어서 못 쓰겠다.
글만 쓰려하면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어쩌구 저쩌구를 처리해 달란다. 아파서 병가 냈는데 왜 일을 시키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걸 또 거절하지 못하였다. 어쩌구 저쩌구를 처리했다. 다 처리하고 나니 다리가 또 부었고 아프고, 병가 기간에 시킨 일을 거절하지 못한 내가 미워서 감정이 격해졌다. 글을 쓸 마음이 안 든다.
글만 쓰려하면 집안일이 눈에 보였다.
두발이 불편하여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손으로 바닥을 밀며 이동했는데, 바닥과 내 눈높이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바닥에 흩뿌려진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머리카락을 치우고 나야 글을 쓸 마음이 생길 것 같았다. 돌돌이 테이프를 죽죽 밀고 다니며 얼른 머리카락 줍고 돌아서는데, 소파 밑에 쌓여있는 먼지들이 나를 불렀다. 이걸 치우지 않으면 글 쓰는 동안 먼지들이 나를 부르는 모습이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다용도실에 처박아둔 정전기포 밀대를 꺼내어 소파 밑을 탈탈 털었다. 먼지 가득한 부직포를 버리고 돌아서는데 이번에는 주방에 아무렇게나 포개어져 있는 식기, 프라이팬, 냄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얘들을 가지런히 정리하지 않으면 글을 쓰는 내내 그릇들이 정리해 달라는 외침이 들릴 것 같았다. 그릇을 모조리 꺼내 다시 닦고 정리했다. 개운해졌지만 피곤이 급격히 몰려왔다. 수술 부위는 더 아파왔고 부은 다리 때문에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두들겨 맞은 듯한 몸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 오늘도 못 쓰겠다.
글만 쓰려하면 소설책이 재미있어진다.
글 쓰고 책 읽고를 무한반복 하기로 했는데 글 쓰고는 빼고 책 읽고만 반복했다.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두라는 의사의 말을 충실히 따르다 보니(실제로 다리를 내리면 말할 수 없이 아프고 불편했다) 늘 침대나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게 되는데, 이 자세는 책을 읽는 데는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노트북 작업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자세이지 않은가. 의사 말을 잘 들어야 빨리 낫는다 했으니 나는 누워있어야 하고, 책은 읽을 수 있는데 글은 못 쓰겠다. 그냥 못 쓰겠다.
글만 쓰려하면 딸아이가 밥 차려달라 한다.
4시는 딸이 하교하는 시간. 아침 먹고, 점심 먹고, 재활한다고 병원에 갔다 오면 금방 3시가 되고, 다리를 높이 올리기를 조금만 하고 책상에 앉아보자고 마음을 먹건만, 4시 땡과 함께 현관에서 신발을 내팽개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배고파~". 어, 그래, 회사 다니느라 간식 한번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는데 집에 있는 동안은 간식, 밥 다 챙겨줄게.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꺼내 다듬고 썰고 볶고 끓인다. 맛은 둘째치고 그냥 엄마가 해주니 좋다는 딸을 보면 간식과 밥 챙겨주기를 멈출 수가 없다. 저녁까지 챙겨 먹이고 나면 내게 남은 체력은 0, 제로이다. 노트북이 놓인 책상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멀 수 없다. 못 쓰겠다 오늘도.
글은 시간이 많다고 쓰는 게 아니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글을 써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만 가지 이유를 대면서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랬다. 처음 글을 쓸 때, 어떤 모임에서 매일 100일간 1,500자 분량의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고, 두 달 가까이 매일매일 글을 썼던 적이 있다. 그때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한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글을 쓰기 위해 푸른 새벽에 눈 비비며 일어났고, 출장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흔들리는 노트북을 부여잡고 글을 쓰다 멀미를 했으며,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핸드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서 짧은 글을 적기도 했다. 100일간 쓰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매일매일 글을 썼고, 그게 일상이 되었던 거다.
유난히 글에 목말랐던 그 시절처럼 매일 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글쓰기를 일상에서 배제한 데 있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매일 쓰는 일이 어느 순간 무너지게 되자, 글 쓰는 빈도가 매주 한 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금방 내려앉았고, 얼마 가지 않아서 잊혔다.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안 써서 일상적으로 하는 일에서 탈락하게 된 것이다.
나는 글쓰기가 밥 먹고 세수하고 학교 가고 회사 가고 잠자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로 자리 잡기를 원한다. 글쓰기의 동력은 열정도 욕망도 아니고, 그냥 쓰는 일상이다. 내가 이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