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리카 Aug 08. 2019

엄마와 내가 같이 만들어 나가는 집밥

3n 년만에 다시 찾는 집밥의 의미

 엄마는 30여 년 간 백반집의 수석 주방장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식당을 운영하셨다. 식당을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엄마의 손맛이었다. 시골의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난 엄마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요리를 했다. 외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시는 동안 밑에 딸려 있는 동생들을 챙겨야 했다. 서울에 상경하고 일찍 결혼을 하였지만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가스불 앞, 도마 앞, 싱크대 앞은 엄마의 일터이고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런 우리 가족의 집밥은 일반적인 집밥과는 달랐다. 누구보다도 일찍 식당을 열고 누구보다도 늦게 식당을 닫았던 엄마는 식당에서 가족들의 끼니를 챙겼다. 오전 10시 30분, 점심시간이 시작하기 전에 늦은 아침을 먹는다. 주말이면 난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10분 정도 걸어서 식당으로 갔다. 반찬은 항상 푸짐했다. 그날 손님들에게 팔 반찬들이 즐비해 있고 찌게나 고기 등 메인 메뉴가 반드시 1개 있었다.


 정성이 담긴 식탁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집밥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우선 식당은 내게 집이 될 수 없었고 그 식탁에는 우리 식구 외에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와 배달을 하는 오빠가 함께 있었다. 우리는 푸짐한 밥상 앞에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밥을 입에 넣기에 바빴다. 엄마와 아빠는 얼른 먹고 일을 해야 했고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 때 '집밥'이라는 키워드가 엄청나게 화제가 되었을 시절, 난 어리둥절했다. 집밥이 그렇게 좋은가? 물론 사 먹는 것보다는 더 건강하겠지. 하지만 그때는 그 키워드를 향한 맹신이 있었다. 집밥은 무조건 좋고, 집밥은 무조건 건강하고. 하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 집밥은 엄마의 또 다른 수고로움이었다. 하루 종일 생계를 위해 불 앞에서 요리를 하는데 식구들 끼니도 계속 챙겨야 하는 엄마.



 





 세월이 흘러서 엄마는 식당에서 은퇴를 했다. 환갑이 넘은 후 엄마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3n여 년 동안 식당일을 하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어깨, 무릎, 손목 모두 엉망진창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식당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엄마의 요리로 우리 세 식구가 먹고살았으니까. 하지만 나와 아빠의 계속된 설득과 자신의 몸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이 엄마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가 이제 좀 쉬었으면 했다. 매일 식구들을 위해 밥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좀 대접받았으면 했다. 그래서 난 주말에 1끼에서 2끼는 반드시 내가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난 요리를 좋아하고 꽤 맛을 낼 줄 안다. 아직 서투른 부분도 있지만 레시피대로 따라 하면 90% 정도는 맛을 흉내 낼 수 있다. 엄마는 한식 전문이니까 나는 엄마가 많이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들 위주로 만들기로 했다. 여러 종류의 파스타, 홈메이드 와플, 감자수프, 프렌치토스트, 오믈렛, 치즈 닭갈비 등등.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이라 맛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 엄마의 극찬을 받았다.



 난 내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엄마가 거실에서 TV를 보며 여유롭게 쉬길 바랬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내 옆으로 와서 주방 보조를 자청했다.


 "양파는 어떻게 썰어줄까?"

 "생강 필요하니?"

 "이거 다져줄게"


 엄마는 내가 음식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며 필요한 걸 그때그때마다 빠르게 준비해줬다. 전문 주방장을 보조로 부리게 된 난 덕분에 요리하기 매우 수월했다. 고급 인력을 고작 보조로 써먹다니. 내가 앉아있으라고 해도 엄마는 꼭 내 옆에서 음식 만드는 걸 도왔다. 그렇게 우리는 주말마다 주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주방에서 둘만의 시간은 엄마와 나의 대화를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엄마는 야채를 썰면서 새로 수영장에서 사귄 친구들 이야기를 해준다. 걔는 무슨 일을 하고 걔 식구는 몇인데 걔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 걔는 얘가 좀 푼수더라. 혹은 새로 생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난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동안 식당일만 하느라 친구도 없이 오직 가족들만 알고 살아오신 분이다. 하지만 밖에서의 엄마는 친구도 잘 사귈 줄 알고 남에게 좋은 말을 해줘서 금방 다른 사람과 친해지고 상대방이 엄마를 잘 따르게 만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졌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니 엄마는 의외로 패셔니스타였다. 매일 식당일을 할 때는 움직이기 편한 옷이 제일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옷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핸드폰을 붙잡고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고는 가격이 괜찮고 예쁜 옷이 있으면 나를 부른다. 아직 엄마는 핸드폰으로 결제하는 방법을 모른다. 나는 내 카드로 대신 결제하는 걸로 엄마에게 효도를 한다.


 주말마다 엄마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세 식구가 먹는 밥은 각별하다. 여전히 우리 세 식구는 별다른 말이 없다.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굳어져 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음식을 만들며 많은 대화를 한다. 식탁에 앉아서는 반드시 음식 칭찬을 한다. 누가 그 음식을 했든 간에 반드시. 집밥은 이 모든 과정을 포함한 것이다. 식탁에 앉아 엄마가 만들어 준 건강하고 맛있는 밥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만들며 서로를 잘 알아가는 시간. 이 모든 시간이 집밥이다.


 엄마는 내가 레시피만 한 번 보고도 음식을 뚝딱 만든다며 놀라워한다. 그럼 나는 엄마의 배를 주무르며 대답한다.


 "누구 딸인데 당연히 잘하지"


 엄마는 나에게 백종원 선생님과 유튜브의 많은 스승들이 있다는 걸 모른다. 이번 주 주말에는 또 어떤 걸 시도해 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공주님 오 나의 공주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