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움직이는 자, 세상을 얻으리라.'
가끔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멘트입니다. 대체적으로 악당들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하지만 악당 여부를 떠나서 저는 이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무언가 다 될 수밖에 없는 절대 힘을 손아귀에 쥘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할까요.
며칠 전 저녁 준비를 하던 제 곁으로 큰 아이가 슬쩍 다가왔습니다.
그러곤 하나의 질문을 합니다.
"엄마, 세상에서 딱 하나의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무엇을 갖고 싶어요?
저는 순간이동이요!"
요즘 학교에서 이런 히어로 놀이를 많이 하나 봅니다. 남자아이들 사이의 히어로들은 제각기 말도 안 되는 능력 하나씩 갖고 있어서 그랬을까요? 그 질문을 듣고 순간 영화 '무빙'이 떠올랐습니다. 마블 시리즈와는 달리 한국 버전이기도 하고 치킨집, 학생 등 정말 우리 주변에서 힘을 숨기고 있을 법하다며 상상해 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때문에 저의 대답은 아들의 선택처럼 순간이동이라 답하였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아이들 학교, 학원, 병원등 셔틀 또는 픽업을 하러 다니는 것이 꽤나 바빴거든요. 때문에 아침에 교문 등교를 시키콘 집으로 뿅! 하는 능력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식사 후 혼자 생각해 보니 이 능력은 편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하나'라는 조항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일과를 보내는데 아직은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 보니 까짓것 그냥 걸어 다녀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물론 순간이동 자체가 여전히 대단해 보이지만 딱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없다면 갖고 싶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보다 더욱 갖고 싶은 게 무엇이 있었을까요? 아이의 장난 어린 질문에 오히려 저는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더 갖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시간을 움직이는 능력'
이번 일주일을 돌아보고, 그 이전의 일상을 둘러보아도 스스로의 역량으로 움직이기에는 하루가 너무 빨리 흘러갔습니다. 뭘 쫌 해보려고 할 때 주변의 방해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어쩌면 욕심 많은 마음과는 달리 행동이 따라주지 않다 보니 제약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이럴 때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과거에 잘못하거나 불편한 상황으로 돌이켜 모든 것을 최상의 조건으로 만들어 놓고 싶었어요. 그리고 당장 다음 주로 넘어가서 로또 1등 번호도 알고 싶습니다. 다만 이 모든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씁쓸한 상상으로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게 다가옵니다. 이조차 허황된 욕심이지요.
지난 한 주간 목표를 설정하고 초라하기는 하지만 방법과 계획에 대하여 구상까지 하고는 움직이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심하게 아파 병원에 들락거리고, 큰 아이의 학습 공백을 채워주고, 가족에게 벌어진 일들을 수습하며 한 주를 보냈습니다. 당연히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무언가를 할 만한 틈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지독한 변명인 것을 뻔히 알고 있다 보니 그 말을 내뱉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속상함이 가득 생깁니다. 마음 한편에서는 능력도 안되면서 판을 벌린다고 욕심을 낸 대가라며 비난의 소리가 올라옵니다. 그래서 별 것 아닌 아이의 질문에 이렇게 심각하게 고민을 했나 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24시간의 하루. 때문에 선물이라는 표현을 쓰겠지요.
하지만 마음속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는 거저 준 대단한 선물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어요.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이어리를 쓰면서도 전날 채 지워지지 않은 할 일 목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게 됩니다.
- 매일 브런치 글쓰기
- 아침 6시 기상
- 하루 30분~1시간 집청소
- 하루 15분 운동
- 어른 책 1권 완독
- 매일 아이들에게 40분~ 1시간씩 책 읽어주기
그럼에도 지난 1주일의 결과를 끄적여봅니다. 계획한 일들은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으면서 그간 무얼 했는지 적는다는 것이 고작 이런 일들 뿐입니다. 그러나 우울은 계속 어두운 그림자를 가져오는 법. 이 와중에 스스로 잘했다는 가스라이팅을 위해 적은 것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어디에 기록으로 남겨두기에는 전부 진취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흔하게 하는 일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일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새벽기상과 찰나와 같은 운동이 그러했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대가 없는 책 읽기였습니다. '고작'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몇 년 만에 시작한 새벽 기상이라는 것 또한 거실에 나와 양치하고 커피 한 잔과 함께 테이블에 앉는 동시에 아이들이 모두 깨어났습니다. 당연히 '엄마~엄마~'하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기에 나만의 여유는 안드로메다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간 몇 달간 해결되지 않던 운동은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으로 조율했습니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다 보니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기에 유튜브를 켜고 최근 통증이 있던 골반 교정 스트레칭을 시작했습니다. 몸이 조금 풀렸다 싶은 오후에 시작하다 보니 아이들이 덩달아 옆에 앉아 함께 했습니다. 멋진 몸매의 유튜버는 매우 쉽게 하는 모든 동작들이 저에게는 따라 하기 조차 어려웠습니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하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저는 매 순간 숨조차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나에게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없다는 생각에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한 주간의 기록은 말 그대로 보잘것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우울감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비록 기록으로 볼 때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일주일있었으나 무조건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살자며 다짐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의도적으로 생각의 머리 끄덩이를 잡고 밝은 빛으로 끌어오고자 낑낑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조금은 다른 부분을 알아챕니다.
매일 기상과 동시에 출근, 등원, 등교를 위해 정신없이 몰아치는 아침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찍 일어나니 찬바람 부는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밥과 국을 만들어 식사를 챙겨 줄 수 있었습니다. 덩달아 일찍 기상하는 아이들에게 '빨리 일어나'라는 재촉의 말이 필요 없어졌어요. 대신 아침부터 서로 부둥켜안으며 살을 비벼대는 횟수가 늘어났지요. 운동 또한 비슷했어요. 혼자서 집중하며 몸을 움직이는 기회는 없었으나 안 되는 동작을 하겠다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끙끙 거리며 애를 쓰는 제 모습 덕분에 아이들은 큰 웃음을 얻었고, 억겁 같은 30초를 버티는 순간 줄어드는 시간을 옆에서 대신 불러주며 힘내라고 열띤 응원까지 해 줍니다. 덕분에 15분이라는 목표 시간이 훌쩍 지나 며칠 만에 20분, 30분까지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매일 문해력을 높이겠다며 동화책 읽어주곤 독서 수업을 하던 것과는 달리 아무 조건 없이 침대에 셋이서 나란히 누워 재미있는 줄 글책을 읽어가는 시간을 누렸습니다. 덕분에 비어있는 집에서 혼자 틈틈이 제 책 한 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평소의 습관이 굳어진 탓인지 모든 장면을 우중충하게 바라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때문에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매주 일지를 쓰겠다 했던 제 손가락을 원망하며 한 주 동안 아무것도 한 것 없다는 후회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적이라는 표현을 쓰기 민망스러웠던 일주일이 시선을 달리하니 사실은 마음을 꽉 채워가는 일로 가득했다는 사실을 알아갑니다.
시간을 움직이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간절하게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렇기에 주어진 24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못 했다는 말은 사실 말도 안 된다는 것 또한 알게 됩니다. 시간은 결국 무언가를 하면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요. 그저 누워서 핸드폰을 바라보며 귀한 시간을 날려먹은 것도 아니었고 드러나지 않았지만 새로운 도전을 조금씩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그간 제가 놓치고 있었던 점이 무엇인지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시간을 움직이는 초능력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러나 안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바라는 것을 포기하고 제 앞에 있는 중요한 부분에 집중해야지요. 처음 꼭대기 층에 살고 싶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요. 모든 것이 수치나 증거로 드러나면 좋겠으나 사실 알고 보면 나의 가족과 조금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시작된 것이기에 숫자로 표현되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저는 꼭대기 층으로 가고 싶다고, 가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다만 시간을 움직일만한 재주가 없으니 있는 시간을 최대한 열심히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