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퇴근길.
사람이 너무 많아 압사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하철 안의 밀집도는 꽤나 강렬하여 한 팔을 뻗는 것조차 사치였을 뿐이다.
일터를 벗어난 후련함과 편안한 보금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기다랗게 줄을 섰다. 나 또한 그 대열 끝에 한몫했고, 연신 두 대의 열차를 지나 보낸 이후에야 겨우 올라탈 수 있었다.
커다란 도깨비 입이 열리고 그 안에는 마치 블랙홀이라도 있는지 사람들을 연신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떠밀려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겨우 두 다리를 바닥에 붙일 수 있게 되자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많은 인파 속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때부터 양 발 끝에 매달려있는 가녀린 발가락 열 개에 힘을 꽈악 주었다.
평소처럼 출발을 하고 빨리 집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때 열차의 기관사님은 급 브레이크를 시도했다. 아니, 애초에 지하철은 철로가 있어 끼어드는 차도 없는데 왜 속도를 조절하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생각과 함께 그 옛날 쌍팔년도 버스 안내양이 있던 시절을 보여주는 '대한 뉘우스'의 출퇴근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사람이 너무 가득 차서 문조차 닫히지 않게 출발을 한 후 버스를 이리저리 흔들며 내부의 공간을 정돈한다? 기관사님의 큰 그림이었던 것일까? 덕분에 이후 조금은 숨 쉴 수 있을 만큼 각자의 공간은 정리가 되었기는 했으나 아무리 내부의 혼잡도가 심각하다 할지라도 안전은 안드로메다로 가 버린 것일까?
예상치 못한 흔들림에 자리에 앉아있거나 손잡이라도 잡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휘청 거렸다.
'어~ 어~ 어!'
순간 모두 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내뱉으며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고, 그 안에 끼어있던 나 또한 인파의 너울에 함께 했다. 다행히 잠깐의 충격은 누군가의 튼튼한 하체 덕분에 멈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각자의 자리로 돌아와 평소와 다름없는 무채색의 퇴근길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안도와 불안 중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목숨 하나 안전하게 지켜내고자 희생한 것은 아무도 신경 써 주지 못하는 왼쪽 발이었다. 더 이상 휩쓸리며 넘어가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에 한쪽 다리에 온 관심을 기울이며 버텨냈는데, 가녀린 발목은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한 채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무사히? 도착 지점에 다다르고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황급히 근처 의자를 찾아 발목의 안위를 챙겼다.
'위로, 아래로, 왼쪽, 오른쪽, 뱅그르르~'
기특한 몸뚱이.
다행히 뼈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뇌가 요구하는 데로 잘 돌아갔다. 그러나 육중한 나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기에는 힘들었을 테다. 살짝 시큰거린다.
집에 오는 길에 두 다리로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애썼을 발목에게 집까지 또 걸어가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나는 집까지 무사히 생존했다. 그 사실 만으로도 오늘도 나는 승자가 되었다. 자기 위안의 대가답게 멋진 멘트를 허공에 날려주었다.
빛나는 퇴근을 위해 희생한 왼쪽 발목에게 그 영광을 돌리리다.
저녁을 먹고 다시 쳐다본 발목.
긴장이 풀려서일까 살짝 삔 위대한 발목은 약간 부어있었고 조금 시큰 거렸다.
제대로 관리 못한 주인에 대한 툴툴 거림 일까, 아니면 체중 따위는 덮어놓고 마음 내키는 대로 먹어댔다고 양 볼이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기분이 들었다. 결국 신랑이 붙여준 파스 한 장으로 발목과 화해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엎어놓으나 뒤집어놓으나 전부 내 잘못이다.
지하철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예상치 못한 사건이다.
프로 출퇴근러에게는 어떠한 무게도 감당할 수 있는 튼튼한 하체가 핵심인 듯싶다. 숨쉬기만으로도 삶이 고단한 1인으로서 덮어놓고 먹어대기만 하니 무게 줄임은 조금 필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오늘 점심 메뉴는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