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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사탕 Aug 17. 2023

아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신랑과 처음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취미사항에 '독서'라고 말을 하면 단순히 예의를 차리려는 듯, 우아함을 과시하려는 듯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길었던 연애와 결혼 후 나의 모습을 보면서 다양한 책 읽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야 진짜 좋아한다고 믿기 시작했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책을 읽었냐고?


우아하게 클래식을 틀어놓고 예쁜 커피잔에 따뜻한 커피를 타 놓고 책상에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었다. 

라고 말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누워서 읽고, 

엎드려 읽고,

기다리며 읽고...

마치 핸드폰 게임을 하듯 뒹굴러 다니며 읽었다.


그렇게 자유분방함을 목표로 한 듯 읽었던 내 모습은 우아함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문제점이 하나, 아니 많이 있었던 부분은...

책 한 권을 다 읽었음에도 나에게는 변화라는 것이 없었다.


그것을 단지 두뇌 용량과 부족한 기억력에 그 탓을 돌리고는 했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에는 현실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나만의 세상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너무 좋았다. 그렇기에 계속 즐거운 놀이 또는 취미에서 멈추었던 듯싶다. 그래서 간혹 딴 길로 샌다 할지라도 결국은 손에서 완전히 놓지 못했다.



어느 날 큰 아이가 한쪽 눈을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간혹 알레르기 때문에 염증이 있어 그런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도 그러리라 생각하며 주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가렵거나 통증 같은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몇 주가 지났을 까

그러던 차에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음... 음... 음...

목감기에 걸렸는지 물어보아도 아니었다.

그건 '틱'증상이었다.


일한다는 이유로, 내가 너무 바쁘고 나를 위한다는 핑계로 아이에게 신경 써주지 못함에서 벌어진 일이라. 아이는 바쁜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여러 가지 감정들을 그렇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학교와 돌봄 교실, 방과 후 교실, 학원까지...

모든 일정을 소화한 이후 집에 와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약 한 시간을 TV속 친구들과 보내야 했던 외로움과 무서움 등의 덩어리들이 이만큼 커져버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내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생업이 무엇 때문인지 그 원인 자체를 잃어버렸다는 스스로가 자책밖에는, 미안함 밖에는 떠올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격하게 검색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뒤져보아도 스트레스가 주원인이었다.

치료법으로 약물치료 등등이 검색어에 노출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직장생활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일시정지했다.

퇴근 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를 위한다며 내 취향의 나의 책만 읽어왔었지만 나의 책보다는 아이 그림책, 동화책 구분 없이 읽기 시작했다. 생업을 위해 근무시간은 어쩔 수 없었기에 오로지 '아이 책'에 매달렸다.


물론 아무리 저학년이라 할지라 초등학생이라 혼자 읽을 법 하지만 스스로 읽는 것은 싫어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읽었다.

다행히 아이는 본인은 싫어도 엄마가 읽어주는 것은 좋아했다.

그것 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때로는 노는 것이 더 바쁜 아이였기에 읽어주는 것과 상관없이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냥 내가 읽었다.

들어주면 땡큐~ 아니면 할 수 없고...

어차피 교육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닌,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였기 때문에 그냥 내가 읽었다. 


그렇게 3개월을 하다 보니 어느새 소리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유아동 도서, 어린이 책이라고 그동안 우습게 보았던 책들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온갖 전문 용어들이 난무하는 지식도서보다, 어중간한 소설보다 창작동화가 훨씬 이해도,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짧아서 편했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어린이 책 읽기는 어느새 나를 위한 책이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도 나를 변화시키는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첫째와 둘째의 맞춤으로 읽다 보니 저절로 이 조그마한 인간의 세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나는 모성애가 없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지시하는 말만 일삼았던 내가 책을 매개로 아이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단순 '틱'이라는 출발점은 있었으나 아직도 달려야 하는 과정 중에서 나는 그렇게 어린이 책을 읽고 즐기게 될 줄 몰랐다. 그 즐거움을 내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과연 이 과정을 나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느꼈던 것 이상으로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은 지금 왔던 길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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