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죄] 장난인가 모욕인가
A회사 직원 김말단 씨는 요즘 직장 생활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팀장 이견상 씨는 극심한 꼰대에다가 술만 먹으면 말 그대로 '개'가 된다. 그는 회식 때마다 김말단 씨를 옆에 앉혀 놓고 온갖 심부름은 다 시키고, 술을 강요하며, 장난이랍시고 과한 드립을 쳐서 김말단씨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 일할 때에도 그는 자신의 일은 남에게 미루고 남의 일에 지적질해 대는 진상 그 자체였다. 당연히 김말단 씨를 포함한 직원들 모두가 그를 싫어했다. 최근 그의 주된 타겟인 김말단 씨가 받는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더 이상 이 사람과 지내다가는 오장육부가 온전치 못할 것을 직감한 그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동안 참고 견뎠던 수모를 생각하면 얌전히 관둘 수는 없었다. 김말단씨는 이견상 씨에게 망신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회식자리에서 찍은 이견상 씨의 사진에 개 얼굴을 합성했다. 그리고는 사직서를 제출한 다음 날 '이견상 팀장님 사진 참 잘 나왔네요.'라는 문구와 함께 사내 게시판에 위 사진을 게시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김말단 씨는 A회사의 영웅이 되었고, 매우 화가 난 이견상 씨는 김말단 씨를 명예훼손죄 및 모욕죄로 고소하였다. 김말단 씨는 과연 처벌받게 될까?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받는다(형법 제307조 제1항).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더 무겁게 처벌받는다(형법 제307조 제2항).
규정의 문언상 명백히 드러나듯 명예훼손죄는 '사실의 적시'가 있는 경우에만 성립하는 범죄이다. 허위의 사실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제2항이 적용되어 더 중하게 처벌받는다.
사실의 적시란 진실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이나 의견에 대치되는 개념이다. 즉, '어떠한 사실관계에 대한 발언'이 있어야만 본 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김말단씨가 이견상 씨의 사진에 개 얼굴을 합성하여 사내 게시판에 올린 행위에는 그 어떤 사실의 적시도 없다. 그냥 단순히 이견상 팀장을 조롱할 의도로 사진을 올린 것이지 여기에 이견상 씨와 관련된 사실관계에 대한 발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김말단 씨가 작성한 '이견상 팀장님 사진 참 잘 나왔네요.'라는 글 역시 김말단 씨의 의견이 담긴 표현일 뿐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 비록 이 글이 이견상 씨를 조롱할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비꼬아 표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김말단 씨의 의견일 뿐 사실관계에 대한 적시가 전혀 없다.
따라서 김말단 씨에게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여지는 없다.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모욕죄로 처벌받는다(형법 제311조).
모욕죄에서 말하는 모욕이란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모욕죄의 성립을 위한 모욕의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다. 따라서 언어적 수단이 아닌 비언어적, 시각적 수단만을 사용하여 표현하더라도 모욕죄가 성립할 수 있다. 대법원도 시각적 수단만을 사용한 모욕행위를 인정한다.
최근 영상 편집, 합성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합성 사진 등을 이용한 모욕 범행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고, 시각적 수단만을 사용한 모욕이라 하더라도 그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입는 피해나 범행의 가벌성 정도는 언어적 수단을 사용한 경우와 비교하여 차이가 없다(대판 2023.2.2. 2022도4719).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고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행위를 했다면 모욕죄가 성립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대방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모욕행위'는 처벌 대상이 된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가 인격적 적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것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까?
이 부분이 바로 법원이 판단하는 영역이다.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사회통념, 직업적 양심, 기존의 판례, 현재의 국민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각 사안에 맞게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완벽하게 동일한 사건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법관이 자유심증으로 각 사안에 맞게 판단하여 구체적 타당성 있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모든 사건에 일률적, 기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것은 판결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 법관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오히려 그때그때 사안별로 판단하는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국민의 법감정과 각 사안의 특수성을 판결에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리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김말단 씨의 경우 모욕죄로 처벌받게 될까? 유사한 사안의 판례를 살펴보자.
갑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A의 얼굴에 '개' 얼굴을 합성하는 방법으로 A의 방송 영상을 게시한 사안에서...... 갑이 A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다소 해학적으로 표현하려 한 것에 불과하다고 볼 여지도 상당하므로, 해당 영상이 A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A의 인격적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모욕적 표현을 한 경우라 단정하기 어렵다(대판 2023.2.2. 2022도4719).
우리 대법원은 온라인상 개 얼굴을 합성한 영상을 게시한 정도로는 형법상 처벌받을 만한 모욕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소 기분이 상할 수는 있겠으나 형사 처벌을 할 만한 모욕행위라기보다는 '심한 장난' 정도로 판단한 것이다.
현재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김말단 씨가 이견상 씨의 사진에 개얼굴을 합성해 사내 게시판에 올린 행위도 형법상 처벌 대상이 되는 모욕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이견상 씨는 많이 화가 나겠지만 자신의 평소 언행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살다 보면 욕설을 하거나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할 만한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장난이라고 하는 말인데 상대방은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고, 예쁜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해야 함은 기본적인 매너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는 모든 경우를 형사처벌 하게 된다면 단순한 장난이나 순간의 감정적 표현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무서운 사회가 될 것이다. 도덕의 영역과 법의 영역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며 법은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규율만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요즘 무슨 말만 하면 명예훼손죄니 모욕죄니 고소한다며 법을 무기 삼아 상대를 협박하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은 다음의 사실만큼은 꼭 기억하자.
첫째, '사실의 적시'가 없으면 명예훼손죄는 성립할 수 없다.
둘째, '모욕행위'는 아주 과격한 표현이 아니라면 생각보다 쉽게 처벌받지 않는다.
위 두 가지만 기억해도 상대방의 악의적인 협박에 위축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해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성숙한 시민으로서 항상 상식과 매너를 갖춘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자.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도 최대한 예쁜 말, 고운 말을 쓰도록 노력하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한 언행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법으로 처벌받지 않는 나쁜 행동도 얼마든지 존재한다. 악의적 의도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행위를 한다면 설령 그 행위가 형법상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더라도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