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실 평범한 인생은 없는 것 같다.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오후네요.
브런치에 처음 들어와서 보이는 글귀입니다. 작가님이라니, 제가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들어도 되는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이 문득 드네요. 박사학위를 받은 지 3년이 다 돼가는 지금, 바로 회사생활을 시작해서인지 박사님이라는 호칭도 거의 못 들어본 것 같거든요. 거기다 실제로 저는 스타벅스에 노트북 들고 와서 카페라테 연하게 한잔 시켜서 브런치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저는 여중, 여고를 나와서 공대, 공대대학원 그리고 관련 업계 연구원에 종사하고 있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어떻게 보면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공대에서 공학 공부를 10년 정도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제가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생각보다 오래되었습니다. 대학원을 입학한 2017년 즈음이었나, 아니면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폭풍의 2017년을 보내고 생각이 많아진 2018년이었나 싶네요. 하지만 이 생각을 정말 행동으로 옮겨야겠다고 느낀 건 학위 취득 후 회사를 다닌 지 한 3개월 정도 지난 후였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해에 저는 취업과 포닥 (post-doc, 박사 학위 취득 후 보통 외국의 대학원이나 연구소에 가서 1-3년 더 공부(혹은 일)를 하는 것, 한국에서 공대 교수를 하려면 대부분 거쳐야 하는 관문 중 하나입니다.)을 고민하고 있었고, 참 용기 있게도 취업 준비와 포닥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성격상 인생에 공백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둘 중에 먼저 결과가 나오는 길을 가야지.'라고 생각했었죠. 네, 제가 지금 관련 업계 연구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겠지만 회사에서 연락이 먼저 왔고 자연스럽게 취업을 했습니다. 포닥 컨텍한 교수님께도 당시 연락이 왔었는데 '과제가 아직 오픈이 안 돼서 혹시 그다음 해에 올 수 있어?' 이런 연락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취업을 하고 일을 하고 있는데, 3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메일이 왔습니다.
과제 열렸어, 우리 연구실에 올래?
음, 그 당시 저는 운이 좋게도 좋은 팀원들을 만나서 회사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상태였었고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던 차였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대학원 시절부터 정말 의지하던 연구실 선배는 '솔직히 너한테는 포닥 가라던가 취업하라던가 하는 말은 못 하겠다. 너는 그냥 뭐 어딜 가도 잘할 것 같아서...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면 될 거 같은데?'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저희 연구실의 정신적 지주 같은 선배였는데 (언젠가 이 선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 날이 오겠죠?) 다른 후배들한테는 '너는 취업.', '너는 박사 해도 되겠다.', '너는 석사만 해.' 이렇게 잘만 얘기하더니, 제일 친한 저한테는 저런 무책임한(?) 조언이라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더 막막하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저의 마음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건 엄마의 한마디였습니다. 전화로 상황설명을 드리니까 울먹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엄마는 이제 너 외국 안 보내고 싶어, 가서 아플까 무슨 일 있을까 걱정하는 거 이제 그만하고 싶어.
처음 든 생각은 '아니 내가 언제 그렇게 외국에 나갔다고? 나처럼 모범생으로 자란 자식도 없을 텐데?'였습니다. 저는 MBTI가 I 55%에 E 45% 정도라서 막 나서서 뭘 하기에는 성향에 안 맞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만히 있는 것도 지루해하는 어떻게 보면 아주 까다로운 성격입니다. 하여튼 새로운 일을 하기에는 그렇게 용기가 있는 편이 아니라고 저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서 그냥 정해진 길대로 자라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런 말씀을 하시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찬찬히 생각해 보니 대학교 4학년 때 교환학생을 가겠다고 결심하자마자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 휴학을 해서 토플 시험 준비를 하더니 순식간에 미국에 나가질 않나, 석박통합 2년 차 때는 싱가포르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해당 과제에 참여해서 1년 정도를 싱가포르에서 살지를 않나. 네, 생각보다 저 평범하게 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교환학생을 갔을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해였어서 미국 본토의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도 않았고, 싱가포르에서는 귀국 직전에 코로나가 터져서 연장 예정이었던 파견 연구 기간을 다시 줄여서 일찍 귀국했던 기억도 납니다. (코로나 때 하늘길 다 멈추고 텅텅 빈 인천공항을 본 사람 바로 나야 나.)
정말 신기한 건 엄마의 저 말씀으로 인해 저는 '나 정말 글을 써봐야겠어.'라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그때 찬찬히 돌아본 제 인생은 정말 생각보다 평범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의미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하고, 요새 대학원 진학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학계 후배들이 학위 하면서 힘들 때 어떻게 버텼으면 좋겠다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또 사실 저는 공학박사보다는 척척박사에 더 어울리는 (이 생각도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얕고 넓은 지식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곧 다른 공부도 시작할 예정이거든요. 이러한 제 삶이 그렇게 지루한 삶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어디에든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앞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대학원에서 느꼈던 것, 그렇게 회사를 가서 배웠던 것, 그리고 일상을 살면서 보이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까 싶어요.
한 번 각자의 삶을 찬찬히 돌이켜보세요. 평범해 보여도 각자 다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고 계실 거예요.
그럼 우리 자주 만나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