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대학원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 곳 이길래?

by 정다감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다들 어디서 들어본 밈 아닌가요? 실제로 제가 이 글을 시작하기 전 구글에 한 번 '대학원생'까지만 입력해 보았습니다. 연관검색어로 뜬 걸 캡처해 보았는데요.


화면 캡처 2025-03-30 144849.png 대학원생 사람, 대학원생 사람 아님이 연관검색어라니


소년이 잘 못하면 가는 곳이 소년원인 것처럼 대학생이 잘 못하면 가는 곳이 대학원이다라는 말도 있죠? 아니 대체 대학원생이 어떤 존재이고 대학원은 어떤 곳이기에 이런 밈들이 있는 걸까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 대학원은 어떤 학생들이 가는 곳인가요? 정말 그 분야에 관심이 엄청 많고 실력이 있는 학생? 단순히 취업을 미루고 싶은 학생? 그냥 공부가 좋은 학생? 글쎄요 저를 포함한 저희 연구실 동료들도 다 각기 다른 이유로 대학원에 입학했었을 거예요. 그럼 우선 제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 뜻을 가지고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아니었어요. 저는 그냥 모범생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조금 특별하다 싶은 건 대학교 입학 당시 공학계열 학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는 것 정도겠네요. 그 덕에 일정 학점만 넘으면 4년 등록금 면제, 학기당 한 번 교재구입비 100만 원 지원, 교내 해외프로그램 참여 시 300만 원 지원, 자대 대학원 입학 시 등록금 면제 및 매달 생활비 70만 원 지원 등 다양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것도 사정상 서울대 입학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긴 한데, 당시에는 되게 중요했습니다. (이 내용도 투 비 컨티뉴로 남겨둘까요.)


자대 대학원 입학 시 등록금 면제 및 매달 생활비 70만 원 지원! 사실 이 장학금이 아니더라도 저는 대학원에 갔을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냥 세상 모든 일이 궁금한 사람이고 내가 모르는 지식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창한 욕심을 가진 사람이거든요. 어쨌든 공부도 한 번 시작했는데 좀 더 해서 평생 동안 박사라는 직함을 가지고 가는 거 인생에 큰 손해는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석사는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석박통합과정으로 입학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애매한 이유 말고도 고등학생시절부터 관심이 있었던 환경문제를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거창한 목표도 있긴 했었습니다.)


네 저는 그냥 박사학위 그 자체에 집중을 해서 대학원생이 됐습니다. 우리 소싯적 하던 RPG 게임에서 닉네임 위에 뜨는 칭호 얻듯이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말도 안 되게 사소한 이유이지 않나요? 하지만 의외로 다들 그렇게 시작하더라고요.


항상 신입생이 입학하면 상견례시간에 물어보는 단골 질문이 있어요. '우리 연구실 선택한 이유가 뭐예요?',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 or 석사/박사에 지원한 이유가 뭐예요?'입니다. 공통점 하나 없는 신입생과 어떻게든 이야기를 터보겠다는 선배들의 노력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신입생 분들 입장에서는 면접을 한 번 더 보는 거랑 뭐가 다를까 싶기는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질문에 솔직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더라고요. 다들 'OO에 관심이 있어서요.', 'OO가 요새 뜨는 분야라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이 정도 대답이 돌아오는데, 이상하게 두어 살 많은 선배도 선배라고 딱 답변을 들으면 느낌이 와요. '이 친구는 이 분야에 취직하려고 입학했구나.' 혹은 '이 친구는 박사까지 하면 좋을 텐데.' 이런 거요.


여기까지 읽어보시니까 어떠세요? 생각보다 무언가 엄청난 계기를 가지고 대학원생으로 진화하는 대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아래처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취미가 공부인 사람

취업에 도움이 돼서 2년 더 투자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어? 어? 하는 사이에 물 흐르듯 대학원에 온 사람

해당 분야에 큰 뜻을 가지고 입학한 사람

그 외 기타 등등


이런 다양한 이유로 대학원에 입학하기 때문에 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다는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같은 이유로 대학원을 입학하고, 얻고자 하는 목표가 동일하다면 대학원생도 사람이었을 거예요. 공동의 목표가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요. 하지만 석사 혹은 박사 학위를 얻는 것 이외에 목표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 놓이거나 애매한 회색지대 어딘가에 있어도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연구실 동료들의 성향도 다 가지각색이었거든요. 참고로 저는 '취미가 공부인 사람'에 속합니다.




제가 대학원생 시절에 연구실 동료들에게 자주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대학원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딱 두 분류야. 무슨 같은 반 학생들이랑 학교 다니듯 다니는 사람이랑, 회사에 같은 팀원들이랑 일한다고 생각하며 나오는 사람.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학생들과 알아서 척척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해야 하는 회사원이 공존하는 공대대학원 연구실 생활.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나요? 덕분에 저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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