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취미인 사람이 있다고?

취미가 뭐예요?

by 정다감
제 취미는 공부하는 거예요. 어떤 공부냐고요? 그냥... 관심 가는 주제 무엇이든요!


이런 이야기 들으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사실 저는 '취미'에 대한 고찰을 나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쉽게 대답하던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왠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몸 쓰는 것에는 자신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신체활동과 관련된 건 아예 배제시켰고, '술은 대체 왜 마시는 거야?' 하는 근원적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해서 위스키, 와인 같은 술은 왠지 '어른'들이 즐기는 다른 차원의 무언가 같았습니다. 독서는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지만 입사 전에는 한 달에 한 권은 무슨, 반년에 한 권도 못 읽어서 결국 연구실에서 실험할 때 노래 대신 오디오북을 듣는 것으로 마지막 양심을 지키곤 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푸는 날이 오겠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별일 없으면 주 4회 이상 운동을 하고, 와인을 좋아하며 회사 점심시간에는 독서를 하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대체 취미가 뭐라고 저는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고민을 했을까요? 사소한 고민일 수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고민에서부터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들이 제 자신을 더 알아갈 수 있게 해 준 것 같습니다. 하여튼 더 커다란 고민을 저에게 준 '취미가 뭐예요?'에 대한 답을 이제는 꽤 여러 개를 찾았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주제에 맞는 답은 '공부'인 것 같네요.




학창 시절 저에게 공부는 제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어요. 흔한 이야기였죠. 반지하 방에서 다섯 가족이 지내는데 장마철이면 부엌에 물이 차오르고, 화장실은 밖에 있고, 기억은 안 나지만 추워서 드라이기로 이불을 데우고 잠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제가 본 부모님은 누구보다 열심히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시는 분들이었어요. 당시 저는 학생이었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고 그냥 저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제가 할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공부하는 게 제 적성이었나 봅니다.


저는 의외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환경이 바뀌는 것에 큰 공포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쭉 해오던 공부를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더 하기로 결정한 것이 이러한 성향에서 오는 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주변 환경을 크게 변화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요. 하지만 입사 후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입사해서 사실 더 승진할 곳이 없는 책임연구원으로 입사했어요. 옛날 회사들에 대입해 보면 대리 말년차나 과장 1년 차 정도의 연차라고 보면 되는데, 요새 회사는 직위를 간소화해두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이렇게 퇴직 때까지 승진 스트레스 안 받고 회사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직책에 대한 욕심이 있다면 다르겠지만요.


어쨋든 이러한 환경에서 저에게 공부는 더 이상 필수 활동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해서 꼭 얻어야 하는 성과가 없어졌거든요. 연구개발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논문 공부를 할 수는 있겠지만 실무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도 않고, 승진을 위해 토익시험을 봐서 영어공인인증점수를 마련한다던가 하는 활동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3개월 정도하고 난 후 갑자기 '공부를 안 하니까 허전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관성적으로 하던 공부를 안 해서 그런가?라는 생각으로 넘겼지만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대학원생 시절까지만 해도 다른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면 곧바로 '글 읽을 시간 있으면 논문이나 한 글자 더 읽자.'라는 생각에 막혔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제약이 없다 보니 새로운 분야 공부가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우주, 심리, 외교 같은 분야요. (실제로 올해 제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 사이버대학에 편입할 예정입니다.)


살면서 주위 사람들과 이런 이야기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만약에 월 OOO만원이 월급으로 들어오는데 한 가지 직업만 가질 수 있어. 그럼 너는 뭐 하고 싶어?

제 대답이 뭐였을 것 같으신가요? 저는 '대학원생'으로 살고 싶다고 항상 이야기합니다. 제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대학원을 가지 않았던 분들은 학위가 있는 제가 다시 대학원생이 되고싶다고 하니 '정말 공부를 좋아하나 봐.'라고 말씀하시는데, 대학원생이었던 분들은 '너 진짜 독하다. 그걸 왜 또 하고 싶어?'라는 아주 격렬한 반응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 신분으로 있는 시간은 고3 시절 이후 거의 인생 마지막으로 공부로 일상을 채울 수 있는 기간입니다.


저에게 대학원은 그렇게 고난만 주는 공간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힘들게 대학원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고 얻은 게 오직 '박사학위' 뿐만은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동등하고 어떻게 보면 동등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대학원 연구실에서 기상천외한 사회생활도 경험했고, '이 분야는 내가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도 얻었죠. 물론 내가 연구한 내용을 세상에 발표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결과가 돌아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활동도 많았습니다. 새벽에 울고불고하면서 터덜터덜 걸어서 기숙사로 퇴근하던 기억까지 미화된 것 같지만 어쨌든 '충분한 월급'이 주어지는 대학원생이라니 저는 너무 탐나는 직업입니다.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연구랑 공부하는데 돈이 나오는 거잖아요.




우리나라는 단순히 궁금해서 무언갈 공부한다는 것이 어색한 사회인 것 같습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입시 공부를 하고, 취업을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육아 공부를 하곤 하죠. 단순히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무언갈 배우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을 설명하는 게 제 자신도 쉽지가 않네요. 그렇다면 저도 목적을 하나 정하고 설명해 볼까요? 제 추구미는 척척박사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는 다음 편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대학원생은 사람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