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프면 엄마가 보고싶어?

-아니, 항상 보고 싶어.

by 데이지

엄마는 자주 아팠다. 어릴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 탓이었다. 무언가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처럼 늘 두통에 시달렸고 기운이 없었다. 그 사고로 엄마는 며칠을 의식불명이었고 그 사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엄마의 이마 위쪽에는 아직도 오백원짜리 동전 만큼의 빈 공간이 있다. 수술자국이다.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는 그 자리를 감추기 위해 엄마는 항상 앞머리를 내렸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부재로 인한 빈 공간은 좀처럼 감춰지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외가의 명운은 뒤바뀌게 되었다. 안주인이 필요하다고 여긴 외할아버지는 새 외할머니를 들였다. 당시만 해도 외가는 제법 부유했고, 외할아버지는 지역 유지였다고 했다. 벽돌로 된 이층 양옥집에는 항상 주인보다 많은 객이 들끓었다. 새엄마가 아이들을 홀대해도 드러나지 않았다.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이모님들은 엄마와 이모와 외삼촌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고 했다. 이모님들이 몰래 챙겨주는 국이며 반찬이, 엄마는 목이 메어 넘어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엄마가 된 이후에도, 엄마는 여전히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것만 같았다. 때로 엄마를 부르며 흐느끼기도 하고, 때로 흠칫 놀라기도 했다. 아이였던 딸은 엄마가 엄마를 찾으며 섧은 울음을 우는 것이 생경했다. 어른은 울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른은 엄마를 찾지 않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이였던 딸은 때로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싶을 때가 있었다. 대신 딸은 엄마에게 꼭 안겨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라도 엄마는 피붙이의 온기를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되었으니 강해져야 된다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어렸을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엄마 없는 딸로 자란 엄마는, 결핍된 상처와 공허를 모두 딸에게 쏟았다. 엄마의 치명적 불행은 딸에게 결정적 행운이었다. 엄마의 애정은 집안 곳곳에 넘치게 있었다. 어디를 가나 깃털처럼 감싸 안아주는 포근한 온기가 집안을 두르고 있었다. 구름 위에서 뛰노는 디즈니 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아무리 뜀박질을 하고 넘어져도 생채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는 으레 거기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찾는 대상이고 깜짝 놀라거나 급작스런 충격을 받거나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휘청일 때 부르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딸은 시험공부를 할 때마다 엄마에게 함께 깨어 있을 것을 반강제로 요구했다. 딸의 우격다짐을 엄마는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식탁에서 공부하는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소파에서 선잠을 잤다. 아침이면 허리가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면서.


어른이 되고 분리된 공간에서 살게 된 삼십 대의 딸은, 아직도 아플 때면 엄마를 찾는다. 나이가 더 들어도 그럴 것이다.
엄마도 아플 때면 엄마가 보고 싶을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답을 아는 질문은 때로 하기 두려울 때가 있기에.

참을성 없는 딸은 결국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도 아프면 엄마가 보고 싶어?"
"아니, 항상 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