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바꾸는 책읽기

정혜윤(민음사)

by 소연




나는 이제 막 책 읽기에 재미를 붙인 새내기 독서가일 뿐이고,
어떻게 책을 선별하여 읽어야 할 지 막막한 인턴 독서가이며,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이 피해야 할 책인지 구분 못하는 신생아 독서가이고,
자꾸자꾸 취향의 장르만 따라가게 되는 외눈박이 독서가이다.

가끔 도서관 책장 앞에 수많은 책들과 대치하고 서서
무엇을 꺼내 들어야 할 지 고민만 하다
결국 빈 손으로 나올 때가 있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읽기 시작했다 끝도 못 보고 반납한 적도 있고,
핫한 신간을 냉큼 샀다가 취향이 안맞아 헐값에 되판 적도 있다.

책 고르기는 참 신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 도움을 받는 책들이 있다.
이다혜 작가의 "책 읽기 좋은 날"이 그랬고,
니나 상코비치의 "혼자 책 읽는 시간"이 그랬다.

시작한 지 6개월 된 소그룹 독서모임에서
책 읽기에 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보고자 정한
정혜윤 작가의 책.....
방송작가답게 심야 라디오의 보들보들한 목소리로 나레이션을 하듯 활자가 미끄러진다.
작가가 만나고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좋지만,
중간중간 옮겨 놓은 수많은 책 속 구절구절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슴을 뛰게 한다.
한 개씩, 두 개씩 옮기던 책 목록이 넘쳐
아예 책 맨 뒤 인용된 책 목록을 통째로 저장해버렸다.

이제 당분간은 도서관 책장과 대치하지 않아도 되리.
이제 당분간은 서점 장바구니를 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리.

책을 읽는다는 것,
읽음으로써 풀고, 얻고,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행위와 사유들을 누리고, 즐기는 재미를 알았다는 것이
어쩌면 내가 살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지도......





책은 자꾸 일어나라고 합니다.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만 자라고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생각 못 한 게 있다고 알려 줍니다. 내가 보는 세상이 아주 작다고 말합니다. 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혹은 어째서 헤쳐 나가지 못하는지 보여 줍니다.
-p.15-
속으론 자기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면서도 겉으론 뭔가 있는 것처럼 굴 때 거기서 비참함이 나옵니다.
-p.32-
배워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삶 속에서 내뿜는 에너지는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 에너지들이 시간을 채웁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데 쓴 시간들은 다시 자기 자신을 만듭니다. 성공이나 명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요. 결국 나를 키우는 시간에는 내가 '한 성공한 인간으로 사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사는 데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p.44~45-
책 읽는 능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쩌면 어휘력이나 독해력을 염두에 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책 읽기에 필요한 것은 뛰어난 지능이 아닙니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책에 대한 관심과 책을 받아들이는 태도 뿐입니다.
-p.56-
많은 책을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은 책을 몇 번 되풀이해서 보거나 곱씹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 정도 규칙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갖는 것이 몇 권을 읽느냐보다 더 중요합니다. 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p.57~58-
진정한 위로는 진정한 희망이 그러하듯, 상황을 좋게 보는 데서 생기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p.101-
우린 멸시받으려고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부자가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우린 조각가가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닌 것처럼 의사, 변호사가 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목표를 세워 그걸 달성하기 위해 자기 삶을 사용하죠. 마치 그걸 위해 태어난 것처럼요. 삶 전체가 이유가 없는데, 무엇을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닌데 자기 삶을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한다는 게 어딘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p.107-
그대들이 실패했고 반밖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무엇이 이상한가. 그대들 반쯤 파멸한 자들이여! 그대들 속에서 거세게 밀치며 다가오지 않는가, 인간의 '미래'가?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p.117-
파스칼 키냐르는 '떠도는 그림자들'에서 독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독서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독서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요. 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책 속의 다른 정체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무모한 경험이니까요. 우리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 세계에 뛰어듭니다. (중략)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하고 정리해 둘까요. 고대인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태아의 자세로 주검을 매장했던 것과 마찬가지지요."
-p.125-
저는 책이 '마치 남의 일처럼 보는 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마치 타인의 모습인 양 나타나서는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 합니다. 책은 무엇보다도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해줍니다.
-p.125-
책과 삶에는 치명적인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운명에 대한 것입니다. 한 권의 책. 이 책의 운명은 언제 결정 나는가? (중략)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즉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 혹은 작가가 출판한 연도, 독자가 책을 구입한 그 시기에 결판나지 않고, 어떤 사람이 책을 읽는 바로 그 순간에 결정 난다고 했습니다. 책이 완료형이 아닌 것처럼 사람 또한 완료형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입니다.
-p.157-
엄마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이제 공부를 하면 무엇이 새롭겠니? 새로우면 얼마나 새롭겠니? 나는 이미 알던 것들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느껴 보면서, 불러 보면서, 배워 보고 싶단다. 그립잖아."
-p.178-
잘못은 자리를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란 말을 어떻게 전할 수가 있을까요. 제 친구도 한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잘못했으니 난 벌을 받아야 해, 라고요.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아니, 잘못했으면 해결해야지."
-p.224-
나는....... 오늘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이 있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 - 장 그르니에 "섬" 中
-p.229-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中
-p.232~233-
인간은 그런 존재예요. 인간은 마음이 굳센 존재가 아니에요. 아는 대로 사는 것도, 배운 대로 사는 것도, 룸살롱에서 여자 만지지 않기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아마 더 어려울 겁니다. 몰라서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에요. 인간사가 어렵다지만 제일 어려운 것은 배운 대로 살기입니다. 알게 된 걸 지키며 사는 겁니다. 당신은 책을 읽고 무엇을 하십니까? 저는 책을 읽고 알게 된 대로 살고 싶습니다. 당신이 책을 읽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 주십시오.
-p.235~236-
책 읽기는 수많은 우회로를 거친 느린 귀향입니다. 새로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몰랐던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달라진 자기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p.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