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이현경 역(민음사)
이 상상력 넘치는 이탈리아 작가를 보라!
전쟁 중 반으로 나뉜 메다르도 자작.....
오른쪽은 악으로, 왼쪽은 선으로 분리되어
그 어느쪽도 온전히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사랑받지도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했지만,
그 둘이 다시 하나로 합쳐졌어도
결코 완전하고, 완벽하다 할 순 없었다.
가끔,
나도 메다르도 자작처럼 이분(二分)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눈구멍까지 치밀어올라
눈물로 분출될 때가 그렇고,
한없이 말랑한 감성이 밀려와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런 이름모를 벌레까지도
사랑스러워 보일 때가 그렇다.
가끔,
내 주변 사람들도 그리 느껴질 때가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작정하듯 가시돋혀
내뱉는 족족 가슴을 찔러대는 통에
구멍난 가슴마다 미움을 채우도록 만들 때가 그렇고,
이제사 아문 구멍 속 미움, 미움들이 미안할 정도로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 줄 때 그렇다.
그(혹은 그녀)의 반쪽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나를 울리고 달래고 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밀랍처럼 말라버린 구멍 속 미움들에
미안함의 불을 붙여 녹여 흘렸다, 굳혔다를 반복한다.
결국 인간이 그렇다.
뚜렷이 선과 악으로 구분지을 수도 없고,
어느 기준으로도 완벽하다 말할 수 없다.
세상에 온전하고 완전한 사람이란 없고,
세상 어느 사람도 완벽한 선과 악으로 이분(二分) 될 수 없다.
삶이라는 게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아프지만,
그러기에 성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감동스러운건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된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반쪽으로 만들고 너의 이미지에 맞춰 파괴해 버리고 싶을 거야. 아름다움과 지혜와 정당성은 바로 조각난 것들 속에만 있으니까.
-p.57-
"아, 파멜라. 이건 반쪽짜리 인간의 선이야.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야.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그들 나름대로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내가 성한 사람이었을 때 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머거리처럼 움직였고 도처에 흩어진 고통과 상처들을 느낄 수 없었어. 성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도처에 있지. 반쪼가리가 되었거나 뿌리가 뽑힌 존재는 나만이 아니야, 파멜라. 모든 사람들이 악으로 고통받는 걸 알게 될거야.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면서 너 자신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p.84-
"우리는 항상 선한 것을 기대하지. 하지만 영혼이 착하든 악하든 간에 우리를 찾아 이 언덕을 올라오는 사람이 전쟁에서 부상당한 불쌍한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해도 우리는 매일 우리 도리에 따라 행동하고 우리 밭을 경작하면 되는 거야"
-p.92-
"악한 반쪽보다 착한 반쪽이 더 나빠."
-p.103-
우리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인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p.104-
하늘은 마치 팽팽한 엷은 막처럼 흔들렸다. 동굴 속 박쥐들은 흙 속에 자신의 발톱을 감추었다. 날개 밑으로 머리를 숨기지 못한 까치들은 괴로움을 느끼면서 겨드랑이에서 깃털을 뽑았다. 지렁이는 자기 입으로 자기 꼬리를 먹었고, 독사는 이빨로 자기 몸을 물었으며, 장수말벌을 바위 위에서 자기 몸을 짓이겼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 몸을 돌렸다. 웅덩이 물은 얼어붙었고, 이끼들이 바위를 뒤덮어 버렸고 마른 잎들은 흙이 되었다. 두껍고 딱딱한 송진은 나무들을 남김없이 죽여 버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손에 칼을 쥔 한 인간은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p.112-
그렇게 해서 외삼촌은 사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은, 사악하면서도 선한 온전한 인간으로 되돌아왔다. 표면적으로는 반쪽이 되기 전과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두 반쪽이 재결합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현명해질 수 있었다. 그는 행복한 생활을 했고 자녀를 많이 두었으며 올바른 통치를 했다. 아마도 우리는 자작이 온전한 인간으로 돌아옴으로써 놀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열리리라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이 아주 복잡해져서 온전한 자작 혼자서는 그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p.114-
나는 완전한 열정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항상 부족함과 슬픔을 느꼈다. 때때로 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가 젊기 때문이다.
-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