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히스테리아 역(황금가지)

by 소연



20년 전,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완벽히 바꾼 발상부터
현 세태를 비꼬듯 섬세하게 그려낸 설정들,
예상치 못한 웃음과 묵직하게 파고드는 진실......
20년이 지나 다시 읽은 이갈리아는
여전히 나에게 생각을 요구한다.

문제는 ‘남성(性)’, ‘여성(性)’이 아니다.
어느 성(性)이 됐든,
어느 집단, 어느 사회, 어느 종(種)이 됐든
우열을 가리고, 종속을 가르는 순간
불평등은 시작되고, 싸움의 명분은 싹튼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달라서 부족함을 보완할 수 있고,
다르기에 더욱 조화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평화로울 수 있는 길이며,
다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우리 문명의 위대한 업적은 맨움을 생명의 과정에서 적절한 위치에다 놓은 후 신체적 힘이 성별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거지."
-p.72
"이 세상에서 내게 중요한 단 한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뭔가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비인간적인 로봇일 뿐이라구. 나는 당신과 아이들을 위해 일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다구. 그러면 당신은 우리를 위해 집을 잘 관리하기만 하면 되잖아. 그런데 당신은 애를 하나 더 갖는다고 불평하다니. 내 사랑, 크리스토퍼. 내가 아이를 낳으면 당신이 그 애를 받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야. 결국 아이를 임신시키는 사람은 맨움이라구."
-p.128~129-
페트로니우스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치마 틈새 사이로 삐죽이 나와 있는 작은 물건을 응시했다. 이것으로 뭘 한단 말인가? 왜 거기에 있는 것일까? 결국, 이것은 완전한 무용지물이다. 소변을 보기 위해서라면 움들처럼 깨끗하고 작은 입구만 있어도 될텐데. 그리고 성적 쾌락을 위해서라면 움들과 같은 작은 돌기만 있으면 되고. 어째서 맨움은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생겼을까? 그리고 어째서 맨움이 우스꽝스럽게 생겼다는 사실이 늘 강조되는 것일까? 그렇게 혐오스럽게 보인다면 어째서 그 부분을 가리지도 못하는 걸까?
-p.160~161-
밖에는 바다가 있었고, 바람이 오두막의 담을 휘감았으며, 창문에는 조각난 어둠이 있었다.
-p.172-
그러나 문제는 단지 그들이 식물과 나무와 꽃이 어떻게 땅에서 자라는지를 모른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어떤 기술을 습득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에게 생명과 자연과의 친밀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생명, 자연과의 친화력이 손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자라나게 한다. 아무리 그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거치고 공부를 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월경을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월경이 없다면, 자연의 주기와 조화를 이루는 움들의 빛나는 힘이 없다면, 땅을 경작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들의 손안에서 시들어버릴 것이다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p.235-
아무것도 소위 '자연 질서'와 조화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인류의 간계였다. 어떤 종류의 인류는 억누르고 다른 종류의 인류는 그들을 착취하고 기생해서 번성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가진 체계적인 간계였다.
-p.246-
"저항은 여러 가지 형태를 띨 수 있지. 어떤 젊은이가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금지당했기 때문에 반항하고 화를 낸다면 그것 또한 저항이야."
-p.248-
"긴 말 필요 없어."
"페호를 벗어 던지자."
"맞아. 자연이 그녀의 지혜로 명하셨도다."
"아무것도 거역할 수는 없어!"
-p.270-
한 성(움)에 의해 통치되고 지배받는 사회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맨움의 본성' 혹은 '움의 본성'과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맨움들은 주장했다. 한 성이 다른 성에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한, 양성 간에 실제로 어떤 차이가 - 심리학적으로 - 존재하는지 규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p.294~295-
왜 소위 '자연'과 늘 비교를 해야 합니까?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다른 종도 똑같은 방식으로 적응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것은 초원에서 살고, 어떤 것은 가족을 이루어 살고, 어떤 것은 사회에서 살고, 어떤 것은 혼자 삽니다. 말과 고양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동물과 비교해야 합니까?
-p.317-
"페트로니우스! 만일 내가 너라면, 지금...... 만일 네 입장이라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거야. 가정과 아이에 대한 모든 꿈은 집어치우고 나 자신을 찾고 싶어."
-p.338-
"페트로니우스. 너도 알겠지만...... 맨움은 생명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단다. 그들은 자손과 육체적 연결을 가지고 있지 않아.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죽으면 세상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능력이 없단다. 맨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모든 땅의 생명이 죽어 없어질 거야. 만일 맨움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만일 맨움이 제지되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이 교화되지 않는다면, 만일 그들이 '그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생명을 소멸할 거다......"
-p.379-
"억울해.", "불쌍해." 라는 결론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회 질서에 대한 꿈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으로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p.384 옮기고 나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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