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김남주 역(민음사)

by 소연




‘인간성’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 기준이 되고,
무엇으로 규정되며,
누구에 의해 판정되는 것일까?

장기이식을 위해 복제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겐,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체를 통한 ‘탄생’이 아닌
선택과 배양을 통한 ‘창조’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죽는다.
하지만, ‘탄생’한 이들은 ‘창조’된 이들을
‘다르다’고 규정지었다.

<과학>이라는 이름 하에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탄생자’들......
그들의 창조에는 늘 ‘인류를 위한’이라는 단서와 목적이 붙는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그들은 알면서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도,
몇십년 후면 볼 수 없게 될 동물들이 느는 것도,
한 방이면 모두 끝낼 수 있는 무기들이 개발되는 것도
그런 예가 되겠지.)

그들은 알고 있다.
장기이식용 클론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하지만, 윤리를 적용하면 불치병을 앓는 내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다르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내 가족의 죽음과 클론의 권리 사이에서
이기심을 버리고 윤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아마, 나 역시 여느 ‘탄생자’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그래서 발전하고, 그래서 성장한다.
그래서 잔인하고, 그래서 무섭다.

어느 인종, 문화권을 막론하고 똑같이 지니고 있는
이 본연의 ‘이기적인 인간성’은
결코 달라질 수도, 사라질 수도 없다.
그저 이 조밀한 이기심의 그물 사이에
따뜻하고 촉촉한 마음들을 채워 넣는 수 밖에.....
그것이 윤리가 되고, 도덕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며.....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인간의 이식용 장기가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생기는 거라고, 진공실 같은 곳에서 배양되는 거라고 믿고 싶어 했단다. 그래, 그걸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그러니까.....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그 때 이르러서야. 그 무렵이 되자 그들은 너희가 어떻게 사육되는지, 너희 같은 존재가 꼭 있었어야 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렵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어. 그 과정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단다. 장기 교체로 암을 치유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어떻게 그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 없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겠니? 후퇴라는 건 있을 수 없었지. 사람들은 너희 존재를 거북하게 여겼지만, 그들의 더 큰 관심은 자기 자녀나 배우자, 부모 또는 친구를 암이나 심장병이나 운동 세포 질환에서 구하는 거였단다. 그래서 너희는 아주 오랫동안 어두운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었지.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 되도록 나희 존재를 생각하지 않으려 했단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너희가 우리와는 별개의 존재라고,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지.”
-p.360-
“한때 어떤 흐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지나가 버렸어. 세상일이 때때로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대중의 생각이나 감정은 이쪽으로 쏠렸다가 저쪽으로 가 버리지. 그 과정 중 한 지점이 너희의 성장기와 겹쳤던 거란다.”
“마치 왔다가 가 버리는 유행과도 같군요. 우리에겐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인데 말이에요.” 내가 말했다.
-p.365-
“내가 흐느꼈던 건 전혀 다른 이유에서였어. 그날 춤을 추는 너에게서 내가 본 건 좀 다른 거였다.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신세계를 보았지. 과거의 질병에 대한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그래, 더 많은 치료법을 말이야. 맞아.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과거의 세계, 더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자기도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걸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 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가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 거란다. 그건 실제 네 생각이나 행동은 아니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그렇게 해석했고 그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그걸 결코 잊을 수 없었지.”
-p.372~373-
“그렇게 달려갈 때 말이야, 캐시. 나는 물속을 첨벙거리며 걷고 있다고 상상했어. 깊은 물이 아니라 발목 정도까지 오는 물 말이야. 매번 나는 그렇게 걷는다고 상상했어. 첨벙, 첨벙, 첨벙.” 그는 다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정말이지 기분 좋은 일이었어. 골을 한 점 올리고 돌아서서 첨벙, 첨벙, 첨벙.” 그는 나를 바라보며 또다시 조그맣게 웃었다. “이 얘기는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어.”
나 역시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넌 정말이지 못 말리는 녀석이야, 토미.”
-p.390-






* 보탬 : 영어 원제의 영화 <네버 렛미 고>도 함께 보았다. 많이 함축되고, 조금 달랐지만 마음이 저릿하고 묵직한 것은 다르지 않았다. 뜬금없지만, 영화 속 키이라 나이틀리는 참 짜증나면서도 너무 예뻤다.

사실 나는 이 포스터가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