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손원평(창비)

by 소연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점에나, 어떤 상황에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숫자로 헤아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능성’에 퍼센티지를 적용해
<희망적 미래>과 <절망적 미래> 로 가른다.
50%의 가능은 또한 50%의 불가능이기도 하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느냐는 개인의 몫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가 감정을 찾을 가능성....
버림과 상실의 경험이 반복되어 삐뚤어져버린 곤이가
모범적인 아이로 변할 가능성.....
머리 한쪽이 함몰되어 숨 조차 기계에 의존하는 엄마가
다시 스스로 숨쉬고, 사고하고, 살아 날 가능성......
그들의 가능성은 과연 몇 %나 될까?
그 희박한 가능성을 불가능이라 규정짓고
‘희망’ 대신 ‘절망’을 품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나는 내 삶에서 무엇을 보는가?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미래를 이야기 하는가?

가능과 불가능,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우리.....
어느 순간 팡~ 하고 터진 것이 폭탄일지, 폭죽일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어쨌든 결정은 내 몫이니까.....



-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 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p.81-
계절은 어느덧 5월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다. 5월 정도면 많은 게 익숙해진다. 신학기의 낯섦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계절의 여왕이 5월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어려운 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거다. 언 땅이 녹고 움이 트고 죽어 있는 가지마다 총청연색 꽃이 피어나는 것. 힘겨운 건 그런 거다. 여름은 그저 봄의 동력을 받아 앞으로 몇 걸음 옮기기만 하면 온다.
그래서 나는 5월이 한 해 중 가장 나태한 달이라고 생각한다. 한 것에 비해 너무 값지다고 평가받는 달. 세상과 내가 가장 다르다고 생각되는 달이 5월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게 움직이고 빛난다. 나와 누워있는 엄마만이 영원한 1월처럼 딱딱하고 잿빛이었다.
-p.135~136-
- 마지막엔, 마지막에는 뭐라고 했냐.
- 마지막엔 날 안아주셨어. 꽉.
곤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간신히 속삭이듯 내뱉었다.
- 따뜻했냐, 그 품이.
- 응. 많이.
솟아올라 굳어 있던 곤이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듯 그 애의 얼굴이 쭈글쭈글해졌다. 그 얼굴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고 이어서 무릎이 툭 꺾였다. 고개를 푹 숙인 몸이 들썩였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곤이를 내려다보았다. 쓸데없이 키가 커진 느낌이었다.
-p.151~152-
- 자란다는 건, 변한다는 뜻인가요.
- 아마도 그렇겠지. 나쁜 방향으로든 좋은 방향으로든.
-p.224-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위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p.228~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