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카와 소스케/이선희 역(아르떼)
우리 아빠는 한때 종로에서 작은 서점을 하셨었다.
책으로 둘러싸여 주인 앉을 자리가 겨우 있었던
아주 작은 서점이었다.
윗쪽 거리에 종로서적이 생기면서
아빠의 작은 서점은 문을 닫았다.
만약, 아빠의 작은 서점이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 서점의 존폐를 2대인 우리가 결정해야 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책에는 분명 힘이 있다.
어떤 힘인지 세세하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분명, 나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어떤 큰 힘이 있다.
책 읽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책으로 인한 변화를 기적의 간증처럼 털어놓는다.
나 역시 사례는 다르지만,
그 느낌이 뭔지 안다.
책이
세상만사, 인간의 삶 전체를 움직이는 마법의 물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 집중케 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며,
나를 더욱 단단하고 공고하게 하는
주문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책을 통해 어떤 사람으로 다듬어져 나갈 것인가?
당신은 책을 통해 어떤 행복을 얻게 될 것인가?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본모습을 찾고, 사랑하고, 행복하기를....
아브라 카다브라......
"책에는 힘이 있지."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중략)....
"시대를 초월한 오래된 책에는 큰 힘이 담겨 있단다. 힘이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으면, 넌 마음 든든한 친구를 많이 얻게 될 거야."
-p.26-
"...이 세상에는 이치가 통하지 않거나 부조리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지. 고통으로 가득 찬 그런 세계를 살아갈 때 가장 좋은 무기는 이치도 완력도 아니야. 바로 유머지."
-p.37-
"여기는 소중한 책을 꽂아두는 책장이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과시하기 위한 쇼케이스에 불과하다고요."
린타로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덧붙였다.
"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아요."
린타로의 머릿속에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할아버지의 옆얼굴이 떠올랐다.
소중한 책이 닳을 때까지 몇 번이고 읽으며 책의 이야기 속에 편안히 몸을 누이면서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의 모습니다.
할아버지는 서점의 책을 매우 소중히 대했는데, 목적은 장식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만든 건 아름답고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조금은 낡고 오래되어도 손질이 잘된 책장,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고 싶어지는 책장이었다.
-p.63~64-
"책을 많이 읽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되는 게 있어"
린타로는 사내를 향해 할아버지의 말을 따라했다.
...(중략)....
"책에는 커다란 힘이 있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의 힘이지 네 힘은 아니야."
...(중략)...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
할아버지는 어려운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손자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책이 네 대신 인생을 걸어가 주지는 않는단다. 네 발로 걷는 걸 잊어버리면 네 머릿속에 쌓인 지식은 낡은 지식으로 가득 찬 백과사전이나 마찬가지야. 누군가가 펼쳐주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골동품에 불과하게 되지."
할아버지는 손자의 머리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덧붙였다.
"너는 단순히 머리만 큰 지식인이 되고 싶니?"
-p.64~66-
"책을 읽는 건 산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지."
"책과 산이 비슷하다고요?"
린타로는 그제야 겨우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차의 향기를 즐기듯 눈앞에서 천천히 찻잔을 돌렸다.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p.124-
"기왕 올라가려면 높은 산에 올라가거라. 아마 멋진 경치가 보일 게다."
-p.125-
"이 건물은 세계에서 가장 큰 출판사로, 매일 하늘의 별만큼 많은 책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저 밑에 있는 지상을 향해서요."
"제가 보기엔 아무 의미도 없이 종이다발을 토해내 쓰레기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게 현실이니까요."
-p.180-
"책은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그 소모품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소비하게 만들지 생각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고요. 이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p.181-
"그래요, 우리 출판사는 뭔가를 전하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원하는 책'을 만들고 있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후세에 전해야 할 철학, 잔혹한 진실이나 난해한 진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세상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출판사에 필요한 건 '세상에 무엇을 전하느냐'가 아닙니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 지 아는 것'이죠."
-p.185-
"진리도, 윤리도, 철학도, 그런 건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다들 삶에 지쳐서 자극과 치유만을 원하고 있죠. 그런 사회에서 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책 자체가 모습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히 말하죠.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팔리는 거라고! 아무리 걸작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사라지게 됩니다."
-p.188-
"책에는 마음이 있지 소중히 대한 책에는 마음이 깃들고, 마음을 가진 책은 주인이위기에 빠졌을 때 반드시 달려가서 힘이 되는 법이야."
-p.228-
"책은 지식이나 지혜, 가치관이나 세계관처럼 많은 걸 안겨줘요. 몰랐던 것을 아는 건 즐겁고, 새로운 견해를 만나는 건 굉장히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에요. 하지만 책에는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린타로는 가슴 안쪽에서 떨어지는 가루눈처럼 허무한 생각을 열심히 손으로 받아서 말로 바꾸었다.
...(중략)...
"어쩌면 책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르쳐주는 게 아닐까요?"
...(중략)...
"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려져 있어요. 괴로워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말과 이야기를 만나고 그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마음까지도요."
...(중략)...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걸 가르쳐주는 게 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거예요."
-p.260~262-
"책을 읽고 어렵게 느꼈다면 그건 네가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게 쓰여 있기 때문이야. 어려운 책을 만났다면 그거야말로 좋은 기회지"
-p.280-